온천(Banff upper hot springs)
[원정] 밴프, 겨울 왕국을 느끼다 8
8일차 : 온천(Banff upper hot springs)
이제 마지막 일정만 남았다. 오늘 휴식과 온천으로 마무리한 뒤 내일 귀국길에 오르면 된다. 피로가 누적이 되어 피곤하지만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힘을 내 보기로 한다.
원래 등반 일정은 없었지만, 빙벽에 한참 재미를 들이고 계신 우리 키르기스스탄 형님은 레이크루이스 쪽 빙벽을 희망하셨다. 마침 호수의 안쪽 트레킹 코스가 궁금하던 차였는데, 잘 되었다 싶어 멀대 아들한테 물어보니 시내 구경보다는 역시 산행을 택했다. 어제 집에서 뒹굴뒹굴했을 것이기에 휴식은 충분했고 또다시 에너지를 발산하고 싶었을 듯.
레이크루이스 방면으로 한 팀을 꾸려 대차 받은 크라이슬러로 이동을 했다. 나머지 멤버들은 휴식을 취하거나 시내 구경을 하다가 오후에 온천(Banff upper hot springs)에서 만나기로 했다.
레이크루이스는 이제 아주 익숙한 동네가 되어 버렸다. 3번째 방문이니. 레이크루이스를 길게 가로질러 빙벽 장소로 향했다. 빙벽팀과 산행팀으로 나누어 마지막 밴프에서의 일정을 시작했다.
빙벽팀 사진을 찍어 주고 우린 레이크루이스 안쪽의 트레킹 코스를 찾아 나섰다. 눈이 풍성하게 쌓여 겨울 왕국을 새삼 느끼게 했다. 길을 따라 무리하지 않기로 하고 천천히 밴프의 마지막을 즐겼다.
눈 쌓인 언덕을 걸어가는데 아들은 점점 미끄러운 등산화가 걱정인 모양이다. “어떻게 내려와요..?”
내가 갖고 있는 등산화는 ‘캠프라인’과 ‘마인들’인데, 무거운 등산화가 부담될까 봐 ‘캠프라인’ 등산화를 아들에게 주고 이번 원정에 나섰다. 문제는 눈에 취약하다는 것. 이미 Haling Peak에서 산행 마지막에 아이젠을 풀자마자 몇 번을 미끄러졌고, 레이크루이스 시작점에서도 대자로 미끄러진 게 두어 번 된다. 그러니 아이젠 없이 오르는 눈길이 슬슬 걱정되었던 것.
오르막은 괜찮고 내려올 때가 걱정이라니 내려올 때 내가 신던 ‘마인들’로 바꿔 신기로 한다.
Highline이라 불리는 등산로를 따라 오르는데 건너편 경치도 오르는 경치도 그만이다. 눈 덮인 침엽수림 속의 우리들. 산행에 나서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늦으면 안 되기에 중간쯤에서 간식을 먹고 하산하기로 한다.
신발을 바꿔 신고 내려오는데 진짜 미끄러웠다. 나 역시 엉덩방아 찧기를 몇 번. 반면 아들은 씩 웃으며 신난 듯 잘도 간다. 이건 마치 일반 타이어와 윈터 타이어의 차이랄까. 늦게 바꿔 준 게 미안하다가도, 미끄러운 경험 없이 좋은 신발의 가치를 알겠냐고 애써 합리화를 한다.
내려오니 빙벽팀도 등반을 마치고 정리를 하고 있다. 타이밍이 딱 맞아 다 같이 사진 찍고 레이크루이스를 가로질러 차로 복귀.
정말 탈탈 털어서 밴프도 레이크루이스도 만끽하고 간다. 겨울 왕국과 이젠 작별을 준비해야 한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보이는, 이제는 흔하게 보이는 로키산맥을 우리는 다시 한번 눈에 담았다. 얼마 안 있어 그게 또 그리워질 테니.
온천에 도착하니 마침 멤버들이 와 있다. 평소에 안 하던 온천을 캐나다에서 해본다. 회계 담당 누나의 안내에 따라 신발을 벗고 입장을 한 뒤, 온천에 들어가는데.. 온몸을 감싸는 따뜻함이.. 세상 편하다.
모든 피로가 싹 풀리는 것 같이 느껴지는 게 하루 종일도 있을 거 같다. 온천에 배정한 시간이 부족하게 느껴졌다.
저 건너 로키산맥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눈을 감고 따뜻한 자유를 만끽하기도 했다. 온천은 할 만한 가치가 있다. 다만 30분 정도까지만.
몸이 따뜻한 온천에 들어갈 때는 그렇게 편하던 것이 점점 익숙해지고 나서는 힘든 시간으로 변했다. 아들도 언제 나가냐고 벌써 물어본다. 배도 엄청 고프다. 반면 시니어 형님들은 잠수 놀이까지 해가며 지칠 줄 모르며 온천을 즐기신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풍경. 결국 멀대 부자는 더 견디지 못하고 나와 버렸다.
나와서 사람들을 기다리는 동안 기념품 가게를 구경하는데 희한하게 여기도 한국 분이 장사를 하신다. 아들에게 사고 싶은 물건을 고르게 하는데, 뜻밖에 모자를 고른다. 기꺼이 계산.
나와서 또 왔다 갔다 하는데 다들 반응이 좋아 내 것도 구입.
사람들이 나와 식당으로 향하는데 같이 탄 미국 시민 형님이 왜 ‘마미’ 건 안 샀냐고 아들을 무지 구박하신다. 본인이 사시는 아메리카 문화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며. 나까지 가부장적 아빠로 한참 혼이 난 후 엄마 거도 구입하기로 한다. (결국 밥 먹고 나서 사람들이 기념품 쇼핑을 하는 동안 제일 먼저 온천으로 돌아가 모자를 샀다. 맘이 편해졌다.)
저녁은 휠체어를 타고 공항에 나타나셨던 형님이 거하게 사셨다. 식당을 얼마나 잘 골랐는지 음식 맛에 전원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휠체어를 타고 오셨던 형님은 거짓말처럼 산행을 거듭하면 할수록 표정도 밝아지고 몸도 활발해지셨다. 무리다 싶을 정도의 산행 후에도 거뜬해 보이는 모습이 놀라웠다. 손자 손녀와 같이 참석하시어 우리 산악회의 새로운 문화를 만드신 셈이 되었다.
기념품까지 사고 숙소로 돌아와 밴프의 마지막 일정을 마쳤다. (악필, 2025.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