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상주시 외서면(봉강공동체)
'여성, 엄마의 입장에서 지역을 바라보다.'
목표: 여성농민들이 스스로 세상에 다가서려는 노력,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기에 지금의 봉강공동체가 존재한다.
봉강공동체는 꾸러미사업으로 알려져있다. 꾸러미 사업이란 마을에서 생산된 친환경 식재료들을 도시 소비자에게 제공하며 농촌과 도시, 생산자와 소비자가 교류할 수 있는 사업이다.
많은 지역에서 이러한 꾸러미 사업을 시도하고 있지만 번번히 실패하고 있다.
봉강공동체가 꾸러미 사업을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이들이 추구하는 가치가 다른 곳과는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1. 식량주권운동: 꾸러미를 통해 도시소비자 소통하며 농업의 가치와 중요성을 모두 공감한다.
2. 여성농업인의 사회적 지위향상: 농업 분야에서는 아직 여성농업인들이 농업 생산자로서 사회적 지위를 확보하지 못해 꾸러미 사업을 통해 여성농업인들이 사업주체가 되어 주체성을 높인다.
3. 공동체 복원: 개별농가에서도 꾸러미 사업을 하지만 농가 소득 증대만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이 아니기 때문에 공동체를 지향한다.
4. 세상을 아름답게 하기 위한 활동 추구: 여성농업인을 위한 교육, 농민회 활동, 지역 먹거리 활동, 어려운 사람들에게 꾸러미 보내기 활동을 진행한다.
위의 사진을 보면 모든 분들이 환하게 웃고 있는다. 농가 소득 증대에만 목적을 두었더라면 사업성이 없던 초창기를 버틸 수 없었을 것이고, 봉강공동체가 추구하는 가치들을 지켜내기 위해서 모두 즐겁게 일하기 때문에 꾸러미 사업이 지속적으로 이어져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도시-농촌 / 생산자-소비자/ 여성농업인-여성농업인
서로간의 상생과 협동이 있었기에 지속가능한 마을공동체 사업을 이룰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현대사회에서는 도시와 농촌이 서로 교류가 없고, 상당히 단절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봉강공동체의 가치를 토대로 다른 많은 농촌 마을이 이러한 공동체 사업을 진행한다면 마을의 발전이 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전라남도 함평군 월야면(월야마을)
'누구나 선생님이 되고 학생이 되는 순환형 교육 시스템을 실행하다'
목표: 소외계층, 역차별 받는 계층 없이 교육과 복지 혜택이 평등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한다.
마을의 발전과 행복은 구성원의 발전과 행복이 전제되어야 한다.
기존 사업은 선소득증대 후행복추구라면, 월야마을은 선행복추구 후소득증대 기회이다. 마을에서 생산되는 농작물 뿐만 아니라 사람이 곧 마을의 자원이 된다.
-Anyone Edu-System 구축
에니원 에듀 시스템이란 월야마을에서 진행되는 모든 교육형 프로그램에서 누구나 선생님이 될 수도, 학생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어르신들은 한글을 배우게 되고, 어르신들은 아이들에게 예의범절과 전통문화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된다.
우리나라 문화를 공부하던 해외이주 여성은 영어를 가르치기도 한다.
이처럼 남녀노소 누구나 주제에 관계없이 선생님 혹은 학생이 되어서 서로를 존중하며 가르치고 배워나간다.
이러한 순환형 교육, 체험 프로그램은 참여자의 자존감을 높이고 그들의 사회적인 역할을 부여함으로써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그동안의 마을공동체 사업은 보통 각 마을마다 특색있는 소득사업을 진행하여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거나, 전통문화를 계승한 지역축제, 혹은 경관을 개선하는 등의 사업을 진행해왔다.
월야마을은 이와 다르게 교육과 복지를 통해 마을을 활성화시켰다. 주민대학을 통한 교육, 문화, 복지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며 개개인의 삶의 질을 향상시켜주었다.
동시에 마을 공동체 내의 세대간의 갈등, 해외 이주민들의 부적응 등에 대한 기존의 사회적인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공동체 사업이라고 생각한다.
마을 내의 소외계층을 외면하지 않고 마을 주민 모두에게 의료, 복지, 교육 혜택이 제공되기 때문에 앞서 말한 월야마을의 목표이기도 한 마을의 발전과 행복은 구성원들의 발전과 행복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말 그대로 이루어지기도 한것 같다.
-충청남도 부여군 은산면(백제인동마을)
'공동자산, 공동생산, 공동정산으로 공동체정신을 키우다.'
1900년대 초반 마을에 살았던 부부가 세상을 떠나기 전 "내 소유의 밭을 마을에 내놓고 갈테니 농토가 없는 이웃들이 돌아가면서 농사를 지어 양식을 얻게 하시게"라는 유언을 남겼다. 이러한 노부부의 기증을 시작으로하여 다른 마을 주민들과 출향인사들이 부지를 기증하기 시작했다. 이 부지에 각종 체험관이나 센터를 건립하며 마을공동체 사업을 이끌어나갈 중심 시설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마을을 한 번에 바꾸는 거창한 사업보다
자체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사업을 우선시했다.
주민들이 함께 함으로써 덜 힘들고, 덜 외롭고, 같이 있어 더 즐겁고, 더 보람 있고, 작은 소득이지만 큰 기쁨이 될 수 있는 일들을 진행하였다.
백제인동마을에서는 마을 주민들 공동으로 산채와 약초를 캐서 소득을 얻거나, 작물을 집단 재배하여 공동출하하고 공동정산하여 마을 주민들의 소득이 향상되고, 마을공동체가 활성화되고, 87개의 농가가 마을기업으로 성장하였다.
처음에는 작목반에서 시작된 공동체는 점차 성장하여 도농교류영농조합법인이 되고, 팜스테이마을로 지정되며 도시민의 방문이 늘어나 도농교류가 활발해지면서 그 누구에게도 재정적으로 의지하지 않고, 마을공동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게 되었다.
백제인동마을의 사례를 통해서 마을공동체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제3자의 지원에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스스로도 자립할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점에서 거창한 사업을 진행하지 않고 규모와 소득은 작지만 자체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사업을 우선시했다는 점이 백제인동마을 발전시키는데 큰 기여를 한 것 같다.
-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화동마을)
'주민 주연의 마을영화 제작이 주민의 행동을 변화시키다.'
농어촌 수자원 관리에 대한 인식변화와 생활자 중심의 물환경 인식 전환이 요구되며 정부에서는 주민 참여를 중심으로 비점오염을 저감하는 방안에 대해 모색하게 되었다.
이를 위해 마을 수민들은 화동영농위원회를 결성하여 주민 전부가 자발적으로 마을환경 정비사업을 시작했다. 더 나아가 특히 농번기에 있는 농민들이 환경문제를 인지하고,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마을 주민들의 관심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이 필요했다.
마을주민들의 참여 독려를 위해서 주민들은 화동마을 노래자랑을 시작으로 마을환경영화 시사회를 열면서 자연스럽게 마을 주민들에게 환경문제에 대해 인식시킬 수 있었다. 이러한 주민들의 활동이 대출매체에 노출되며 죽산면의 행정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우리 마을 영화 만들기 동아리'가 꾸려졌고, 화동마을 만의 환경독립영화가 탄생할 수 있었다.
이후에도 스스로 마을가꾸기 활동, 마을노래자랑, 마을환경운동의 날을 기획하여 공동체 활동을 꾸준히 이어나가고, 마을 자체 규약이 만들어 졌다.
화동마을의 사례를 통해서 '환경'이라는 주제를 갖고 마을 공동체가 협력하여 환경 인식을 변화시키고, 일상속에서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 스스로 고민하고, 실천하였다. 특히 비점오염원은 용어도 생소하고, 눈에 보이는 큰 변화도 없는 터라 주민의 참여를 독려하는 과정이 많이 힘들었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환경'과 '문화'를 결합하여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놀이 등으로 참여율을 높여서 우려와는 달리 사업의 파급효과를 확대할 수 있었음을 살펴볼 수 있다.
전라남도 나주시 노안면(이슬촌)
'초등학생부터 어르신까지 합심하여 축제를 만들다.'
이슬촌은 전체 주민의 80%가 60~80대 노인으로 마을이 고령화해가고, 인구가 감소하며 존립에 대한 불안감이 컸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주민들은 소득도 지속적으로 창출할 수 있는 방안으로 체험 프로그램과 체험마을을 운영하게 되었다.
이슬촌은 '새벽에 맻히는 이슬을 맞고 열심히 일한다'는 의미를 가진 마을이다. 언제나 근면성실한 주민들의 근면성이 곧 마을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이러한 정체성을 바탕으로 즉, 이러한 근면성이 소득창출로 이어지도록 목표를 세웠다.
이슬촌 사람들은 마을 축제를 열기 위해서 이슬촌의 원동력이 되는 노안성당을 중심으로 축제의 장을 꾸렸다. 초반에 축제를 개최할 때는 전문가의 조언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주민들의 힘으로만 운영되기 때문에 모두 마을 축제에 대한 책임의식을 갖고 축제에 참여한다. 이러한 마을 축제로 이슬촌의 인지도가 급격하게 상승하면서 귀농, 귀촌하는 가구가 증가하면서 초기 마을 쇠퇴의 문제에 대해서도 해소할 수 있었다.
마을 축제를 통해서 마을의 인지도를 높여서 관광객들의 증가로 농한기 때에도 소득을 증가시킬 수 있었고, 뿐만 아니라 마을 축제를 준비하는 과정속에서 주민들간의 협동과 단결, 즐거운 분위기를 함께 공유하고 즐기면서 조용하고 정체된 농촌마을에서 역동적인 생기를 띄는 마을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농촌마을을 재생시킨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서 마을을 재생하는 방법에는 정말 수백가지가 있다고 생각했다. 마을재생은 규약대로, 정해진대로만 틀안에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마을 주민 스스로 참여하고 그 안에서 탄생되는 마을을 살리는 방법은 정말 무긍무진하다고 생각했다.
마을이 발전하고, 지속적으로 존립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그 안에서 살아가는 구성원을 고려해야 한다. 아무리 마을의 물리적인 환경이 개선되더라도 마을 구성원들이 행복하지 않다면 알맹이 없는 재생사업일 뿐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마을재생은 무엇보다도 주민들의 의견을 듣고, 수렴하고, 소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앞서 소개한 다양한 사례들처럼 대한민국의 많은 농촌마을이 더이상 마을의 존립위기로 걱정하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