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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먼히 May 16. 2021

또 다른 타지로의 이동 (코나에서 오아후)

0515

어젯밤부터 마음이 분주했다. 나는 새로운 경험의 과제들이 있을 때 늘 신경이 곤두서는 편이다. 잠자리에 들면서 머릿속으로 할 일들의 목록을 대략 정리했다.


1번, 아침 8시까지 일어나서 씻고 준비한다.

2번, 아침 9:30까지 화장품 가방과 운동화 샌들까지 넣고, 반 정도 완성한 짐을 마저 싼다.

3번, 오전 10:30경 Safeway 약국으로 가서 백신 기록에 대해 문의를 한다.

4번, 오전 11시 Safeway에서 나오면서 주유소에 들러 차에 기름을 가득 넣는다.

5번, 낮 12시 까페에 갔다가 공항에 간다 or 공항으로 바로 가서 공항 까페를 간다.


물론 현실에서는 아무리 꼼꼼히 세운 계획도 늘 수정되기 마련이다. 유난히 향이 좋았던 낱개형의 액체 세제가 하나 남아, 아직 한 번도 세탁하지 않았던 흰 긴치마와 흰 반팔 블라우스를 세탁하기로 했다. 세탁기와 건조기가 돌아가는 짬을 활용해서 아침 차크라 명상을 다소 산만하게 완료했다. 다행히 아침 10 시인 줄 알았던 체크아웃 시간은 오전 11시였고 덕분에 계획보다 늦장을 부렸다. 한국의 리조트라면 으레 설거지나 분리수거 쓰레기 버리기는 필수이기도 하고 예의이기도 하지만, 이곳에서는 청소 비용을 $360(350불이 아니고 360불이었다)이나 지불했기 때문에, 조금 찝찝한 마음이 들긴 했지만 몇 가지 설거지를 남겨두고 주방에도 치울 거리를 다소 남겨두고 떠났다. 청소 비용을 지불했으니 어느 정도의 청소 거리는 남기고 떠나야 하는 것이 합리적이라 생각하며 찝찝한 기분을 위로한다.


코나 해변 거리가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괜히 아쉬워서 폰을 차 상단 틈새에 꽂고 동영상 촬영 버튼을 누른다. 눈에 담는 느낌이 전혀 아니라며 몇 분 되지 않아 꺼버렸다. 세이프웨이 약국에서는 내 백신 기록이 온라인에서 검색 가능하니 안심하라 하였고, 주유소에서 셀프 주유로 곤혹스러워하는 나를 보더니 맞은편에서 주유를 하던 한 부부가 친절히 나를 도와줬다. Full로 주유를 하려면, 주유할 때 고리를 손으로 계속 잡고 있다가 클릭 소리가 나면 손을 떼면 된다고 한다.


생각보다 시간이 꽤 남을 듯해서 공항으로 가려다 핸들을 돌려 어제 라떼 맛에 반했던 HiCo 까페에 한번 더 들르기로 했다. 실내 구석 자리가 딱 한자리 비었길래 아주 쾌적하진 않았지만 내 자리가 있음에 감사하며 앉았다. 시나몬롤 때문인지 온갖 파리와 날파리가 자꾸 주변을 날아다녔다. 손을 휘젓다가 라떼를 살짝 쏟고는 시나몬롤을 빨리 먹어버리는 게 낫겠다 생각하고, 시나몬롤을 손으로 집어서 요리조리 돌리며 열심히 먹었다. 포크가 없다는 것이 충격적이지만, 무스비를 손으로 먹는 한 손님을 보고는 나도 그들처럼 먹기로 한다.



책을 보다 유일한 하와이 친구 데이빗과 잠깐 통화를 하고 나니 12:15이다. 이쯤 공항에 가서 렌터카를 반납하고 에어버스를 타고 공항에 도착하면 그래도 여유롭겠다. 머릿속에 있던 모든 할 일들이 큰 차질 없이 부드럽게 쉽게 진행되니 안도감이 들었다. 코나 공항은 예상외의 많은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었지만(코나의 작은 공항 규모에 비해서) 출발 시간이 꽤나 여유로운 나는 좀 더 도시에 가까운 오아후로 떠난다는 기분을 느긋하게 즐겼다. 하와이는 상당수의 사람들이 백신 접종을 끝냈고, 특히나 타 섬에서 오아후로 들어갈 때는 격리나 코로나 테스트가 필요하지 않아 하와이 내에서 오아후로 여행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추세인 듯했다. 실제로 내가 탄 비행기는 full flight이라고 했다.


 

내가 탄 하와이안 비행기 안에는 아주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했다. 미국 군인들이 특히 눈에 뜨였고, 비즈니스 석에 앉은 일본인 그룹, 군데군데 보이는 아시아인 가족들, 그리고 대다수의 미국인들인데, 이들도 코나에 살지만 오아후로 여행 가는 이들, 오아후에 살다 코나로 여행을 왔다가 다시 돌아가는 이들, 미국 본토에서 코나로 여행을 왔다가 본토로 돌아가기 위해 오아후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이들 등등으로 아주 다양할 것이라고 혼자 생각했다. 내 앞 좌석에는 아주 수다쟁이인 미국인 커플이 앉았는데, 같은 미국 사람들이 봐도 너무 수다스러운지 더 앞좌석의 미국 남자분이 몇 번 힐끔힐끔 보는 게 느껴졌다. 나는 그저, 늘 붙어있을 텐데도 비행기 안에서까지 저렇게나 할 말이 많구나 하며 수다스러운 그들의 성격에 감탄할 뿐이었다.



코나에 올 때보다 오아후로 갈 때 이상하게 들뜨고 설레는 기분이 들었다. 시작의 모든 과정이 순조롭고 기분이 좋은 것도 사실이었다.


오늘 오전 카톡으로 급히 예약한 노팁택시 기사님과도 아주 쉽게 만났고, 기사님이 들려주신 80년대 하와이 이민 세대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내가 예약한 호텔의 위치는 아주 마음에 들었고, 혼밥에 대한 공포심이 있는 내가 완전한 이방인으로 아주 당당하게 혼밥을  경험 또한 짜릿했다.


어젯밤부터 긴장을 해서인지 아주 고단한 하루가 되었지만, 코나보다 훨씬 활기차고 사람들이 많은 오아후에 오니 누가 옆에 없어도 외로움에 대한 위안을 받는다. 생각이 나서 말인데 내일은 내가 느끼는 외로움의 정체에 대해  고민을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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