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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먼히 Dec 05. 2021

아픈 11월

2021년의 회고 

하루 걸러 헤어짐과 재회를 반복하며 그렇게 전쟁 같은 11월을 보냈다. 


이제야 사랑이라는 것을 알 것도 같고 지나 보면 여전히 어렸었다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처음 하와이의 오아후 섬에서 만난 그는 나를 다시 보기 위해 한번 더 휴가를 내어 당시 내가 있던 마우이 섬으로 돌아왔다. 하와이가 사랑의 섬이라고는 하지만 장소가 주는 특별함 때문은 아니었다. 그는 마우이에서 2주간을 새벽 6시마다 내가 다니던 요가원으로 데려다주며 사랑해주던 그런 사람이었다. 우리는 서로를 운명이라 생각하고 참 많이 사랑했다. 하와이에서의 달콤하기만 했던 연애가 우리 관계의 첫 단락이었다. 


하지만 각자 서울과 캘리포니아로 돌아가면서 장거리 연애가 시작되었다. 서로 만날 수 없었던 우리는 하루에 세 시간이 넘는 음성통화를 하고 주말에는 날을 잡아 8시간이 넘는 영상통화를 하며 애정을 키워갔다. 하지만 연애의 황금기인 딱 3달이 지나고부터 우리는 다투기 시작했다. 다툼이 있었지만 서로가 예민한 부분에 대해서 배워가는 시기이기도 했다. 또 다투더라도 이성적인 대화로 서로 배려하고 맞춰가는 노력을 했다. 처음의 애정이 분명 남아있지만 함께 할 수 없어서 답답했던 우리 관계의 두 번째 단락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장거리 연애를 끝내고 미국에서 함께 보낸 두 달, 우리 관계의 절정기였다. 오랜만에 보는 그가 어색했지만 캘리포니아에서 그의 가족을 만나고 그에 대해서 더 깊이 알게 되었다. 내내 붙어 다니는 생활을 하며 조금이라도 남아있었던 타인이기에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그 어색함의 공간마저 좁혀갔다. 우리의 세 번째 시기에는 서로에 대한 애정이 한층 더 깊어졌고 그런 만큼 크게 다투는 상황들도 발생했다. 서로에 대해 용납할 수 없는 정도의 단점을 보기도 했고 그 이유로 그도 나에게 먼저 이별을 말할 만큼 서로에 대한 고민도 절정을 이루던 시기였다. 


절정기의 연장선은 그가 나의 가족이 있는 텍사스로 오면서 이어졌다. 우리의 두 번째 절정기는 첫 번째와는 조금은 달랐다. 그와의 이별에 대해 여전히 고민했던 시기이기도 했지만 그의 사랑을 확신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는 나의 용납할 수 없었던 단점까지도 자신이 감싸고 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성적으로는 헤어지는 것이 현명하지만 우리는 쉽게 이별할 수 없는 사이라는 것을 서로 받아들였던 날들이었다.  


다시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던 날 눈물을 보이는 그에게 내가 말했다. 

"공항에서 지금의 우리가 마지막이라고 상상하니까 정말 슬프다. 그런데 그게 아닐 거라서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어." 

그리고 나는 웃으면서 그에게 손을 흔들었다. 


11월 초. 그가 한국에 오기 위해 회사 매니저와 상담을 하려 했던 바로 전날 나는 다시 이 관계에 대한 확신이 흔들렸고 우리는 다시 헤어졌다. 그의 한국행이 그 하루 동안의 나의 변덕으로 무산되었다. 그리고 다음날이 되어서야 그 이별도 역시나 다음날이면 다시 서로가 그리워 돌아가는 그런 의미 없는 에너지 낭비였다는 것을 깨닫고 나는 후회했다. 


그렇게 언제 볼 수 있을지 기약도 없는 장거리 연애를 하는 11월은 끔찍했다. 서로에 대한 감정과 소유욕이 고조된 상태에서 만날 수도 없다 보니 다툴 때에도 불같이 싸우며 서로에게 바닥을 보였고 커다란 상처들을 남겼다. 하지만 서로를 놓지 못해 다시 돌아가는 멍청한 도돌이표의 반복이었다. 그는 나에게 말했다. "우리 헤어져도 결국 또 붙을 건데 이제 그만 헤어지자. 그냥 서로 단점 다 받아들이고 조심하면서 싸우지 말자. 그냥 내년에 미국 와서 서로 구속하면서 같이 살자." 


하지만 그렇게 헤어지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고 약속한 다음날 우리는 결국 완전한 이별을 했다.  


감정적인 이별 끝에 서로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지만, 그와의 좋았던 시간을 돌아보며 그에게 준 상처가 너무 미안했다. 상대가 나와 연인 관계에 있었다고 해서 내가 그 사람에게 상처를 줄 권리는 없는데 말이다. 뒤늦게 이성을 차린 나는 다시 그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하며 우리의 마침표를 수정했다. 그는 나를 정말 사랑했기 때문에 지금이 너무 힘든 거라고 말했고 나는 알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나도 그를 참 많이 사랑했다. 


우리가 헤어지고, 나는 헤어짐은 사랑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서로의 감정을 최대한 건드리지 않는 사람을 만날 때 덜 싸우고 오래 만날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다. 그와는 전 사람과의 이별의 상처가 아물 때쯤 만났지만 그 전의 연애보다 더 깊고 뜨거웠다. 나는 한 사람의 영혼을 사랑한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그와 사랑에 빠지며 처음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연애라는 것의 끝은 결국 이별 아니면 결혼이기에, 더 이상의 헤어짐이 싫다면 서로 덜 싸우고 편안할 수 있는 성격을 만나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모든 사람이 완벽할 수는 없기에 어느 정도의 단점은 받아들여야 하지만, 누구 한 사람이라도 다른 한 사람의 감정을 자꾸 거슬리게 하는 생활 패턴이나 직업을 갖고 있다면 아무래도 다툴 확률이 아주 높아진다는 교훈을 얻었다. 한번 정을 주면 그것을 거둬들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기에 다음 연애는 시작부터 정말 신중해야겠다는 다짐마저 했다.


오늘은 점심으로 버거를 먹으려는데 선택할 수 있는 음료 중에 닥터 페퍼가 보인다. 그는 루트 비어를 포함해 닥터 페퍼 류의 음료를 좋아했다. 나는 그를 추억하고 싶어 스프라이트가 마시고 싶지만 닥터 페퍼를 마신다. 


전쟁 같았던 11월이 지나고, 그에 대한 잔여 기억들로 조금은 우울한 12월이 지나가고 있다. 우리의 마지막 단락은 함께 늙어가는 노년은 아니었지만, 나의 일 년을 사랑으로 물들여준 그가 나는 이제 진심으로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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