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적 에너지가 소진되었습니다.
요즘 가족 간의 일들과 지인들과의 관계들을 되돌아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이렇게 모든 관계를 끊고 싶을까.
왜 이렇게 주변을 신경 쓰고 싶지 않을까.
왜 이렇게 내 안에만 머물고 싶을까.’
몇 년 전부터 누군가에게 마음을 쓰는 일이 점점 줄어들었고,
타인에게 깊이 공감하지 않게 되었으며,
내가 점점 무관심한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다는 걸 느낀다.
처음엔 그저 나이 들며 자연스럽게 겪는 갱년기 증상인가 싶었다.
그러다 문득,
‘혹시 내가 괴팍하게 늙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심술 맞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곰곰이 돌이켜보니, 지금의 나는 그저
정서적 에너지가 바닥난 상태인 것 같다.
경제적 여유가 있을 때는 부모님께 용돈도 자주 드릴 수 있고,
지인들에게도 따뜻한 관심을 줄 수 있다.
하지만 내 코가 석 자일 땐 “나 먹고살기도 힘든데…”
라는 솔직한 현실과 마찬가지다.
정서적 에너지 또한 충만했을 땐,
지인에게 자연스레 마음이 쓰이고,
안부도 자주 묻고,
부모님께 세심하게 신경 쓸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sold out.
쓸래야 쓸 수도 없이 고갈되어,
그 부작용으로 짜증과 화만 터져 나온다.
없는 에너지를 억지로 짜내려다 보니,
무관심, 거리감, 냉소 같은 감정으로 드러나고 말았다.
예전의 나는 부지런히 안부 전화를 하고,
시부모님께도 자주 연락하며,
지인들과의 관계도 성실히 이어갔다.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아이의 사춘기까지 겹치면서,
그동안 나를 버텨주던 정서의 끈 하나가 툭 끊어진 기분이었다.
더 이상 끌어 쓸 여유도 없고,
고갈된 마음에는 누구도 오래 머물 수 없다는 걸 알게 됐다.
누군가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겠지?”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나는 한때 정이 많고, 사랑을 아낌없이 표현하던 사람이었다.
어른들에게 예쁨도 많이 받으며,
정서적으로 불안할 때에도
상대에 따라 진심을 다해 마음을 내어줄 줄 알았다.
그때는 진짜 정서적 에너지가 충분했기 때문이다.
요즘은 내 주변 사람들이 나로 인해 지칠까 봐
상처받을까 봐 도망치고 싶을 정도로,
‘내가 없으면 다들 평화로워지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스며든다.
그런 내 모습이 문제인 것 같기도 하고,
현실은 도망칠 수도 없으니 해야 할 일들은 매일같이 이어지고,
최소한의 에너지를 써서 이 시간을 견뎌내야 한다는 사실이
때때로 너무 버겁고, 가끔은 많이 슬프다.
누군가에게 공감받고 위로받는 것도,
지금의 나에겐 오히려 더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나 지금 정서적으로 이런 상태야, 좀 알아줘. 나한테 맞춰줘.’
라고 말할 수도 없으니, 결국
없다면 없는 대로 둬야 할 것 같다.
억지로 노력한다고 채워지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지금은 고갈된 상태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언젠가 다시 서서히 차오르면 좋겠지만,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동안 정말 많이, 정말 열심히 누군가에게 마음을 쏟았으니까.
이제는,
없으면 없는 대로
그냥 살아보려고 한다.
나를, 나 자신을 사랑하도록
노력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