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지인 A와 통화를 했다.
지난번 통화에서 A는 남편의 퇴사 문제로 몹시 불안해했고, 나는 함께 걱정해 주었다. 나름대로 진지하게 들어주고 마음을 썼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냥 A의 불안이 만든 소동이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기분이 상하고 화가 났다.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니었다. 몇 년간 반복되어 온 패턴이어서인지 허무함이 컸다. 결국, 나만 감정적으로 휘말렸던 것 같아 억울하기도 했다. 소모된 기분도 들었었다.
하지만 오늘의 나는 전혀 달랐다.
통화 내내 마음이 편안했고, 오히려 “그때 걱정했던 일이 일어나지 않아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기하게도 A는 변한 게 없는데, 나만 이렇게 달라진 것이다.
결국, 상대방도 상황도 그대로 있는데 변하는 건 나의 감정 상태였다.
불과 한 달 사이의 감정 변화.
호르몬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마음의 여유 덕분이었을까. 스스로도 놀랍다. 물론, 그때 느꼈던 화는 이유 있는 감정이었다. 억지로 만든 기분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런 순간에는 따지고 싸우기보다는
‘거리를 두고 본다’는 태도가 필요하다.
여기서 말하는 ‘본다’는 건, 감정에 몰입해 계속 곱씹는 것이 아니다.
그냥 내 일상대로 살아가되, 그 사람과는 일정한 거리를 둔 채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내 감정이 돌아오기도 하고, 그대로 유지되기도 한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관계도 다시 가까워지거나, 조용히 멀어지게 된다.
나는 가족이 아닌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이런 방식으로 내 마음을 회복해 간다.
가족은 거리 두기가 쉽지 않은 관계이기에 좀 더 어렵지만, 가능한 한 적용하려고 한다.
결국 나는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누구와도 너무 가깝게 지내는 건, 오히려 서로에게 독이 될 수 있다.
기대가 커지면 실망도 커지고, 실망은 곧 분노와 억울함으로 이어진다.
이제는 안다.
관계에도, 감정에도 ‘너와 거리두기’와 '나에게 시간주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 시간과 거리만큼, 나의 감정을 더 잘 알게 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