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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민 Mar 30. 2022

정답이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방법

  정말 당혹스러웠다, 그 게임은. 뚜렷하게 주어진 목표가 있었던 다른 게임들과 다르게 그 게임은 정해진 목표가 없었다. 나는 게임을 시작하면 '어떻게 가장 효율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사람이었다. '일단 레벨 30까지 빠르게 성장시켜 가장 괜찮다고 평가받는 직업으로 전직을 하고...'같은 방법 말이다. 그런데 그 게임은 방법은 커녕 무엇을 위한 게임인지 조차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 게임은 바로 '심즈'였다.


  심즈를 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현실과 닮은 부분이 많은 게임이다. 보통의 게임은 나의 캐릭터를 만들고 성장시키는 데에 목적이 있다. 퀘스트를 수행하며 경험치를 쌓아 레벨업을 한다. 성장할수록 더욱 고가치의 아이템과 경험치를 습득할 수 있다.

  하지만 심즈는 그렇지 않았다. 일단 '나'가 없었다. 나는 누구든 될 수 있었고, 또 누구도 될 수 없었다. 나는 일종의 신처럼 모든 캐릭터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캐릭터를 만들고 없애고 어떤 행동을 하도록 지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캐릭터마다 '성장'의 여지는 있었지만 성장의 방향성이 정해져있지는 않았다. 행동을 하면 자연스럽게 행동에 따른 성장을 했다. 물건을 고치면 더 잘 고치게 되었고, 요리를 하면 더 잘 하게 되었다. 내가 수리공이나 요리사가 아니라도 말이다.

  직장을 구할 수 있었지만 꼭 구해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경제활동을 위해서라면 직장을 가는 것 외에도 방법이 많았다.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쓸 수도 있었다. 식물을 기르거나 물고기를 잡아 팔아도 돈을 벌 수 있었다. 부수입 정도가 아니었다. 궤도에 오르면 무슨 일을 하든 돈을 벌 수 있었다. 물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생존에는 결국 돈이 필요하긴 했지만.


  나는 다른 게임과는 다른 이 심즈의 시스템을 처음에는 파악하지 못했다. 뚜렷한 목적성이 없는 게임이라 이걸 무슨 재미로 하나 싶기도 했다. 가장 먼저 느낀 필요성은 역시 돈이라, 돈을 먼저 벌기로 했다. 직장에서 고속승진을 할 수 있도록 자기계발에 매진했다. 하루의 시간과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다. 상당수의 시간을 직장에 사용하고 나면 심은 너덜너덜한 상태로 돌아오곤 했다. 위생이 나빠지고 스트레스가 쌓이는 등 아주 상태창이 너덜거렸다. 그런 심을 데려다 먹이고 씻기고 휴식시간을 가진 다음, 승진을 위한 능력을 쌓게 했다. 하루가 아주 짧았다. 그렇게 내가 플레이하던 심은 나이가 들었고 결국 죽었다. 남은건 돈밖에 없었는데 그마저도 많지는 않았다. 그리고 쳇바퀴처럼 회사-집-회사-집만 굴리는 삶은 정말 재미가 없었다. 흥미가 떨어진 나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심을 플레이 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또 다시 당혹스러웠다. 대체 어떻게 플레이를 해야 할 지. 마치 처음 게임에 들어왔을 때의 그 당황스러움과 같았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그 당혹스러움. 돈을 번다는 목표가 사라지자 다시 심심해졌다. 무얼 해야 할지 모른채 심을 내버려두었다. 심은 자유의지가 있어서 내가 조작을 하지 않아도 알아서 움직였다.

  심은 생각보다 주체적으로 많은걸 했다. 스스로 음식을 만들어 먹고 망가진 물건을 고치고 친구에게 전화해서 집에 초대를 하기도 했다. 초대한 친구와 얘기를 나누며 낄낄거리기도 했다. 지루했지만 묘하게 재밌었다. 하나 하나 컨트롤 해주지 않아도 나름 알아서 잘 했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었고 화장실을 가고 싶으면 화장실을 갔다. 손을 많이 대지 않아도 되어서 한 명이 아닌 여러 명의 심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신기한 건 각자의 성격과 관심사가 달라서인지 같은 상황에서도 각자 다른 선택을 하는 걸 볼 수 있었다. 심심할 때 누구는 그림을 그렸지만 누구는 친구를 초대했다. 같은 행동을 해도 결과가 다르니 신기했다. 또 같은 상황에서 다른 행동을 하는 것도 신기했다. 하지 말라고 해도 틈만 나면 그림을 그리던 심은 결국 대작을 완성했다. 그런가 하면 한 집에 있어도 이젤에 손 한 번 안대던 심도 있었다. 그런가하면 정원에서 돌에 관심을 보이는 심도 있었다. 돌도 주울 수 있고 돌에도 종류가 있다는 사실을 그 때 처음 알았다. 줍다보니 우주 원석(?)을 주워 비싼 값에 팔기도 했다.


  심즈 속 세상은 생각보다 넓었고 할 것도 많았다. 돈을 벌어야 한다는 사고로 바라보았을 땐 너무 좁아보였는데, 색안경을 벗고 바라보니 세상은 정말 넓었다. 직장에만 매달렸던 과거의 내가 민망할 정도로 돈 버는 방법도 많았고 즐길 요소도 정말 많았다. 정해진 정답은 없었다. 모두의 관심사가 달랐고 각자의 정답도 달랐다. 누군가는 예술품을 만드는 데 시간을 썼고, 누군가는 연애를 하는데 집중했다. 시키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자신의 정답을 찾아가고 있었다.

  심즈든 현실이든 모두들 자신의 색깔과 사명이 담긴 별 조각 하나쯤은 마음속에 품고 있는 게 아닐까. 인지하지 못하지만 본능적으로 조각이 가리키는 대로 별의 방향을 따라가려는 게 아닐까. 마음의 소리를 듣고 끌리는 방향으로 행동하는 게 중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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