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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민 Jul 11. 2022

내 인생 가장 힘들었던 순간

  누군가 나에게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묻는다면, 주저없이 첫 직장에 들어가서 적응하고 또 퇴사했던 때를 떠올릴 거에요. 그때 저는 간호사였어요. 대학병원에 신규 간호사로 입사했고, 3개월만에 퇴사했지요. 그때의 힘듦은... 정말 모든 힘듦의 총 집합 그 자체였어요. 몸도 힘들고 마음도 힘들고. 근무 환경도 고된데 사람 사이에서 받는 스트레스도 컸어요. 그와 동시에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과 혐오감이 너무 커서 정말 견디기 힘들었어요. 그와 동시에 이 길이 맞나 하는 의구심도 많이 들었고요. 솔직한 마음으론 그 때 느꼈어요.

  '이건 아니구나!'

  뭔가 아니라는 신호는 오는데 그 신호를 신뢰할 수가 없었어요. 이 직업이 아닌건지, 이 직장이 아닌건지, 내가 아닌건지.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건지. 그래서 더 혼란스러운 시기였어요. 결국엔 점점 직무 자체에 대해 흥미가 떨어지고 더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 퇴사를 결심하게 되었지요. 그런 마음으로 다니는건 모두에게 좋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그 때쯤 더 견딜 수가 없었어요. 지나가는 모든 사람이 다 나를 보고 수군대는 것 같았어요. 텅 빈 눈을 하고 걸어다니다가도 지나가는 거울에 내가 보이면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았어요. 견딜 수가 없더라고요.

  그런데 퇴사를 하고 나와보니 웬걸, 더 혼란스럽고 괴로웠어요. 뒷 일을 생각하지 않고 도망쳤기 때문이었죠. 도망친 자에게 낙원은 없다는 말이 있죠. 제가 딱 그런 느낌이었어요. 저희 아버지는 그 날부터 저와 한 달간 말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어요. 중도에 포기한 저에게 너무 실망스러우시다고요. 그 순간이 아마, 부모님의 말씀을 거스른 첫 번째 순간이었을거에요. 아무도 나에게 괜찮다고 말해주지 않았어요. 그래서 더 힘들었고, 더 진지한 고민을 하며 시간을 보낸 것 같아요. 다시 돌아가도 그만뒀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후회는 덜해지더라고요.

  사실은 제 정신으로 살기가 힘들었어요. 저는 온종일 이불 속에 있었어요. '이불 속이 제일 안전해'하는 말 있잖아요. 정말 진심으로 그렇게 느껴졌어요. 밖에 나가면 모두 나를 욕할 것 같았어요. 나 스스로도 나를 욕하는 소리가 마음에서 들려오곤 했고요. 스스로 너무 못나고 보잘것 없는 사람같이 느껴져서 정말 괴로웠어요. 침대와 이불만이 안전하게 느껴져서 그 안에서 울다 자곤 했어요.

  인생이 망했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제 인생에서 얼마 안되는 실패라 그런 것 같아요. 첫사랑이 유난히 쓰리고 아프듯이 말이에요. 지금 생각하면 귀엽죠. 또 너무 안쓰럽고. 그 때의 저는 인정욕구가 아주 컸어요. 뭐든 내가 가치있는 인간임을 증명해보이려고 애썼죠. 그 이후로도 한동안 계속 그랬지만. 어쨌든 그때는 저의 인정욕구가 처음으로 박살나버린 순간이었어요.

  나를 괴롭히고 또 괴롭히고 다시 괴롭혔어요. 슬퍼하고 또 자조하고, 그러다 또 분노하고요. 그 때 배운게 있는데요. 감정은 충분히 느끼고 빠져들면 빠르게 원점으로 돌아온다는 거에요. 감정이 바닥을 치자, 비로소 다시 올라오기 시작했어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가득했는데, 이젠 무언가 다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신은 없었지만요.

  그 때 제일 먼저 했던 게 글쓰기였어요. 이전에도 해소하기 위한 글쓰기를 노트에 하곤 했지만, 이제는 그것보다 좀 더 정제된 글쓰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 때 느낀 감정과 생각들을 해소하고 싶기도 했고요.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마음도 들었고요. 그렇게 글쓰기를 시작했어요. 그 때 썼던 글이 브런치에 남겨져 있는 글이에요.

  그 글을 보고 많은 분들이 메일을 주셨어요. 비슷한 처지의 신규 간호사 선생님들이 제일 많았죠. 제 글이 많은 위로가 되었다고 해서 참 신기했어요. 공감이 되어서 그렇구나 하고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참 답답하더라고요. 저의 경험이 너무 제한적이라 메일을 주시는 분들께 해드릴 수 있는 말이 별로 없더라고요. 힘들었겠다는 토닥임, 그리고 '조금 더 견뎌보시고, 그래도 너무 힘들면 퇴사하셔라. 퇴사해도 괜찮고 도망쳐도 괜찮다'는 메세지 정도 였지요. 이 말이 잘못된 건 아니지만, 진정 이 말을 전하려면 제가 먼저 괜찮은 경험을 해야겠더라고요. 정말로 괜찮아진 사람이 괜찮다고 말을 해야 설득력이 있잖아요. '다른데 취업해도 된다, 맞는 곳이 있다'는 말도 제가 경험해봐야 할 수 있는 말이고요. 그래서 어딘가로 취업을 해서 이번엔 좀 더 오래 버텨보자 결심했어요. 맞지 않다면 빨리 그만두고 또 다시 찾아보고, 맞다고 판단이 들면 3년은 다녀보기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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