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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너무 즐겁고 설레는 장거리 비행이었어요. 비록 중국 경유 2회가 포함되어 있긴 했지만요. 광저우에서 깔끔한 호텔에 묵고 다음날 아침, 항공사에서 제공하는 버스를 탔어요. 우려했던 숨은 경유(싼야)는 생각보다 괜찮았어요. 몰랐다면 당황스러웠겠지만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저 안내에 따라 내려 비행기의 연료를 채우고 재정비 하는 동안 경유 절차를 밟고 돌아왔어요. 아주 놀라웠던 건 그 숨은 경유 덕분에 두 번째 경유지(싼야)부터 목적지(런던)까지는 비행기가 거의 비어서 갔다는 점이에요. 광저우에서 탄 비행기는 아주 가득이었는데 모두 싼야에서 내리는 손님들이었나봐요. 덕분에 싼야부터 런던까지의 비행은 아주 편안했어요.
'시작이 좋은데?'
장거리 비행이었지만 양 옆 좌석 모두 비어 있어서 너무 편안하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머리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지요.
'내 렌즈 어디갔지...?'
그렇습니다. 렌즈가 없었어요. 가장 중요한 물건인 렌즈가요! 앞으로 곁들이는 부연 설명을 잘 들어주세요. 그 렌즈는 저에게 정말 중요한 렌즈였거든요.
저는 초초초초초고도 난시에요. 덕분에 안경을 아주 어릴때부터 끼고 살았어요. 이 안경을 너무 벗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어요. 남들은 쉽게 하는 라식, 라섹인데, 저는 할 수가 없었거든요. 난시가 너무 심해서 할 수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렌즈 삽입술만이 가능한데 그것도 별로 권장하진 않는다고 했어요. 이 눈은 가급적 안경 끼고 사는게 낫다고. 그 때부터 지금까지 저는 안경과 거의 한 몸처럼 살았어요. 하지만 이 안경이 워낙 강렬한 아이템인 덕분에 화장을 해도 하나도 보이지가 않았어요. 뭘 입고 어떻게 꾸며도 이 안경의 벽을 넘기가 참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외모를 가꾸는 일에 몇 번 좌절한 뒤에는 크게 애를 쓰지 않았답니다. 하지만 항상 그 부분이 아쉬웠어요.
렌즈요, 물론 렌즈도 좋은 방법이에요. 하지만 안구 건조가 심한 탓에 렌즈를 착용하자 눈이 급격히 피로해졌어요. 어쩌다 먼지라도 들어가면 눈이 난리가 났고요. 심지어 그 렌즈조차도 눈의 곡면과 잘 맞지 않아 시력 교정이 완전하진 않을 거라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래도 안경을 벗고 싶어 렌즈 착용도 몇 번 시도했는데 착용한 채로 일상 생활을 하는 게 너무 불편해서 지속하기가 어려웠어요.
그래서 대안을 찾은게 바로 '드림렌즈'였어요. 드림렌즈는 잘 때 착용하고 아침에 제거하는 렌즈에요. 잠자는 동안 렌즈가 눈을 눌러 다음날 렌즈를 제거해도 일시적으로 교정된 시력으로 생활을 할 수 있게 도와줘요. 물론 드림렌즈를 착용해도 완전한 교정은 되지 않을거라 만족도는 떨어질 수 있다고 했지만 저에게는 딱 맞는 대안이었어요. 단점이 있다면 한 쪽에 60만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가격과 적응기간이었어요.
드림렌즈는 적응기간이 꼭 필요해요. 첫 날의 시력과 1주일 착용후의 시력이 다르거든요. 첫 삼일간 정말 안경을 낄 수도 없고 렌즈를 쓸 수도 없는 불편한 경험을 했어요. 맞지 않는 시력으로 사는 게 이렇게 힘들구나 싶을 정도로요. 렌즈를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가장 걱정되었던 점이 바로 이거에요. 여행을 떠날 당시에는 한 달간의 적응이 모두 끝난 상태여서 제법 만족스러운 시력 상태였지만, 그 날부터 착용하지 않는다면 시력이 점점 떨어지게 될 거에요. 혹시 몰라 안경을 챙겨가긴 했지만 안경과 맞지 않는 시력이 얼마나 불편한 지를 한 번 겪어봐서 더 걱정이 되었어요. 시력이 계속 변동되니 안경을 맞출수도 없었고요. 모든게 갖춰진 상황에서도 소매치기니 뭐니 조심할 일이 천지인데, 앞이 흐린 상황에서 저는 여행을 지속할 수 있을까요?
정말 큰 맘 먹고 여행을 결심하고 간건데, 이제 예쁘고 좋은거 많이 보려고 왔는데, 렌즈가 없다니요. 눈을 잃어버린거죠.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싶었는데 제 실수라 할 말도 없었고요. 그 사실을 비행기 착륙 30분 전에 알게 되었고요. 정말 헉 소리가 절로 나오는 상황이었어요.
런던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지만 정말 너무 당황스러웠어요. 대체 뭐부터 어떻게 뭘 해야하는건지 판단도 서지 않았고요. 일단은 유심을 먼저 끼우고 숙소로 가야겠다 싶었어요. 이미 시간은 저녁이 가까워져 가고 있었거든요. 그렇지만 유심을 끼워도 마음처럼 작동이 잘 되지 않았어요. 아이폰은 다른가 싶어 한참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지우고 설정을 바꾸다 마침내 성공하고 나니 이미 저녁이더라고요.
유난히 추운 저녁이었어요. 모두 목도리를 하고 가벼운 패딩을 입은 차림이더라고요. 시력을 잃었다는 생각과 시작부터 난항을 겪으며 머리는 복잡하지, 바람은 또 어찌나 부는지 옷을 잔뜩 여민 채로, 어느새 컴컴해진 거리를 걸었어요. 이쯤 되면 나와야 하는데 원하는 목적지는 아무리 돌아도 나오지 않았고요. 간신히 한인민박 직원분과 만났는데 정말 눈물이 핑 돌더라고요. 이제 안전한 곳이라는 안도감과 앞으로의 막막함이 모두 뒤엉켜 복잡한 마음이 되었어요. 마침내 배정받은 자리에 짐을 풀고 나니 눈물이 쏟아지더라고요. 그렇게 고민하며 골랐던 민박이었는데 침대는 또 왜이리 삐걱거리는지. 샤워부스는 또 왜이리 좁은건지. 밤에는 아랫집 컴플레인 때문에 물을 내리면 안된다는 안내를 받으면서 마음이 텅 비어가더라고요. 예상과 달라지는 일들이 계속해서 생기자 덜컥 겁이 났어요. 컴컴한 곳에 혼자 서있는 기분이었지요. 내가 이 여행을 너무 만만하게 봤구나 싶었어요.
'이거 생각보다 더 험난하구나...'
그럼요.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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