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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민 Jul 21. 2022

정신은 중국에 몸은 영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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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을 경유해오며 머물렀던 중국 호텔에 너무 중요한 렌즈를 두고 온 상황이었어요. 자세한 건 이전글을 참고 해주세요.


  일단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렌즈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었어요.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분명히 알고 있으니 분명 찾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거든요. 여행 중반이라도 렌즈를 찾아 남은 여행을 무사히 완수해야 한다는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호텔은 연락이 닿지 않았어요. 항공사 측으로 메일을 보내도 메일 발송이 안되었고, 호텔도 메일을 읽지 않았어요.


  "일을 왜 이런식으로 하지? 이미 지나간 손님이라고 그러나?"


  찾을 수 있을거라는 믿음이 한 풀 꺾일 때 쯤, 새로운 방법을 하나 찾았어요. 아고다를 통해 호텔측과 연락하는 방법이었어요. 아고다는 각 숙박업소에 문의를 할 수 있는 메신저 기능이 있었는데 이 기능을 이용한 것이죠. 다행히 호텔측은 메신저에 답변을 해주었어요.


  "안녕하세요. 저는 O월 O일에 OOOO호에 투숙한 사람입니다. 제 렌즈를 호텔에 두고 온 것 같아서 연락 드립니다. 분실물 확인해볼 수 있을까요?"

  "네, 안녕하세요. 분실물 확인되었습니다. 저희가 보관하고 있습니다."


  좋아! 드디어 연락이 닿았어요! 분실물도 보관하고 있다고 하고요! 무언가 진행이 되고 있는 것 같아 뛸듯이 기뻤어요. 그런데 그 다음으로 답변을 보내고 나니 그 이후로 답이 안오는거에요. 다음날이 되어도, 또 다음날이 되어도요. 


  "와 정말요? 확인 감사합니다! 저는 지금 런던에 있는데, 제가 그걸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


  이렇게 말이지요. 너무 재촉하나 싶어 몇 일 기다리며 또 답장을 보냈지만 여전히 답이 없었어요. 또 머리속엔 오만가지 생각이 지나갑니다. 분실물에 문제가 생겼나? 돌려주기 싫은가? 쉽지 않을 것 같으니 그냥 모르는척 하는건가?


  또 머리를 한참 싸매쥐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아고다 메신저를 다시 켜봅니다. 창을 새로 띄워 다시 말을 걸어보니 또 답변이 바로 오는게 아니겠어요?


  "저 이전에 메신저로 문의드렸던 사람인데요. O월 O일에 투숙했고, 분실물이 있어 연락드렸어요. 호텔에서 보관하고 있다고 답변을 받았는데, 그 이후로 다른 답변을 받지 못했어요."

  "네, 분실물은 잘 보관하고 있습니다. 답변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연락이 오지 않아서 저희도 기다리고 있었어요."


  엥, 이건 무슨 일??? 호텔에선 내 메신저를 받지 못했다고 응대를 하더라고요.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판단이 서지 않았지만 그 말대로면 아고다 메신저는 답변을 받는 횟수를 1회로 제한하는 듯 했어요. 그래서 대화를 할 때마다 계속 새로 창을 켜서 말을 하는 방식으로 대화를 했어요. 굉장히 번거로운 방식이었지만 답장이 오지 않아 몇 일간 바닥으로 꺼지는 기분을 느꼈던 저로서는 그나마 아주 감사한 방법이었지요.


  이후로도 메신저 소통은 쉽지 않았어요. 아고다에 불편함을 느껴 다른 메일 주소를 요청했지만 메신저 상으로 자동으로 블락 처리가 되었거든요. 전화번호도 마찬가지였고요.


  그 때부터 였을까요. 중국 호텔 직원과의 퀴즈가 시작된 게...


  "아고다 메신저 상으로 숫자는 모두 블락 처리 되는 것 같아요. 이걸 이해하실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제 메일 주소를 풀어서 설명을 해볼게요. 제 메일 주소는 seven, eight, nine, ..."


  개떡같은 설명도 찰떡같이 이해해준 호텔 직원 덕분에 무사히 호텔측과 따로 메일을 주고 받을 수 있었어요. 분실물도 찾았고 이제 여행지로 돌려받는 일만 남았다고, 다 끝났다고 생각했어요. 런던 일정은 거의 끝나가던 중이어서 다음 일정인 파리나 스위스로 받아야겠다 생각했어요. 그런데 웬걸, 끝난게 끝난게 아니더라고요.


  파리 숙소는 두 군데였는데 디즈니랜드 근처 호텔에서 1박, 이후엔 파리 시내 한인민박이었어요. 그 중 호텔은 연락이 닿지 않았고요. 파리 한인민박 사장님께 물어보니 '물건을 받을 수는 있지만 추천하지 않는다. 나는 내 일정이 있어 하루종일 기다리며 물건을 받아줄 수 없고 투숙객이 직접 받아야 한다.'는 답변을 받았어요. 프랑스의 경우 배송이 느리기도 하고 분실도 잦아 직접 받기는 어려울 듯 싶었어요. 우체국으로 찾으러 가는 방법도 있었지만 본인임을 증명하기가 쉽지 않다는 후기를 보았어요. (현지 개통된 휴대폰과 휴대전화 번호가 있어야 한다고...) 여러모로 난항이 예상되던 터라 일단 한국으로 먼저 렌즈를 받는 게 좋겠다 싶었어요.


  이만큼 진행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렌즈를 돌려받기까지는 이후 더 많은 일들이 있었어요. 렌즈 보존액의 성분 문제 때문에 성분 검사를 해야하는데 이게 2주 정도가 걸리고 검사가 끝나고 나면 렌즈가 망가질 것 같아서 안되겠다고 한 적도 있었고요. 이제 끝났나 했는데 우편업무에 대한 비용을 송금하는 과정이 또 쉽지 않았고요. 이건 결국 위챗으로 중국에 송금해주는 업체를 찾아 해결했고요. 이것까지 끝내고 나니 저의 6박 7일 영국 일정이 끝났더라고요.


  결국 렌즈는 여행 중반 즈음, 스위스에서의 마지막 날에 제 손에 다시 들어왔습니다. 중국에서 한국으로, 한국에서 도하(경유지)를 거쳐 스위스로 왔더라고요. 저는 이 사건을 '렌즈의 세계여행'이라고 불러요. 돌려받는 과정이 쉽진 않았지만 그동안 제가 많이 성장한 기분이에요. 영국에서의 하루하루는 매 순간 시험대에 오르고 깨부숴지는 느낌이었어요. 스스로가 너무 원망스럽고,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야속하고, 무척이나 속상했죠. 잠깐 해결되는 듯 하다가도 다음 날 새로운 문제가 생기고, 또 그걸 해결하기 위해 열심히 알아보고 또 알아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 순간 제가 영국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했어요. 나는 그토록 원했던 여행을 왔고 렌즈를 찾는 것과는 별개로 내 선에서 최대한의 여행을 즐길거라는 생각도요. 다행히 챙겨간 안경과 함께하니 시력이 떨어져 불편하긴 해도 일상생활은 가능하더라고요. 중국 호텔과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런던 근교의 멋진 마을을 다녀왔고 그 투어에서 친구도 사귀었지요. 가고싶었던 식당도 방문했고, 플리마켓도 구경했고요. 기념품으로 살 티를 함께 고르며 즐거운 시간도 보냈어요. 어느 날은 라이온킹 뮤지컬의 남은 좌석을 구하러 아침 일찍 줄을 서기도 했고요. 덕분에 아주 좋은 자리에서 저렴하게 보았어요. 해리포터 스튜디오도 빼놓을 수 없고요. 이따금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땐 너무 속상해서 엉엉 울기도 했지만요. 맘껏 속상해 하고 또 털어내고요. 그래도 어떻게든 제 마음을 달래고 일을 마무리 지으며 여행에 집중하려 애썼어요. 지금 생각하면 제가 참 기특하게 느껴지네요. 당시엔 힘듦이 가장 크게 느껴졌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저를 도와주는 사람들도 참 많았구나 싶어요. 정말 다행이고 감사하죠.


  어쨌든 영국에서의 일정 동안 정신적으로 아주 피로했고, 이 여행이 그저 편안하게 순항하는 방향은 아닐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고 보면 '많은 깨달음과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해달라'던 나의 기도가 이루어 진 것 같기도 하고요. 이 여행에서 고생은 어쩌면 숙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영국에서의 마지막 밤을 마무리했어요.


  그리고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파리로 넘어가는 기차를 타러 갔다가 아주 깜짝 놀랐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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