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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민 Jan 08. 2016

도망치듯 사직서를 제출하다

말그대로 도피

아주 거한 사고를 쳤다.

바로 이틀 전, 나는 사직서를 냈다.

바로 입사한지 두 달만에, 두 번의 면담을 했고 결국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렇게 1년을 버텨보자 했지만 결국 그만두게 되었다.

지금은 자유의 몸(?)이 된지 이틀째인데 정말 많은 생각이 든다.     


정말 힘들었던 때는 입사한지 한달쯤부터 한달 반 사이였던 것 같다. 그때는 내가 과연 이 일을 정말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고 너무나 버겁게 느껴져서 포기하고 싶었다. 아무리 공부를 해도 일이 늘지 않는 것 같았고 느린 성장속도에 비해 더없이 높아지기만 하는 주위의 기대치가 너무나 괴로웠다. 너무 힘들어서 퇴근길에 통화하다가 울고, 한참 괴로워하다가 그래도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힘내서 공부했다. 그러고 다음날 또 공부 안하는거 아니냐며 혼났다. 그게 또 서러워서 힘들었고.. 그렇게 어떻게든 버티며 다녔지만 그때는 그래도 그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래도 병동일보다는 나에게 맞았고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지금 당장 못하는거야 어떻게든 시간이 지나고 계속 공부를 한다면 해결되리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일이 꽤 늘어서 반복되는 수술들에 대해서는 익숙해진 감도 있었고 여전히 완벽하진 않지만 서큐는 혼자서 종종 해내기도 했다. 하지만 스크럽에 대해서는 여전히 부담이 있었고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가장 나에게 치명적이었던 것은 슬럼프가 찾아왔다는 것이다.     


참 웃긴 일이다.

일도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2달차 신규에게 슬럼프라니.

그렇지만 그 단어 말고는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없는 듯하다.

그때의 나는 정말로 아무것도 재미가 없었다.

정말이지 아무것도 더 알고 싶지 않았다.

말 그대로 너무너무 하기가 싫고 재미도 없고 모르는 것을 봐도 공부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공부를 하지 않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더 우울해졌다.

당장 하루 이틀 공부하지 않아도 티가 나진 않았다. 하지만 어떤 결과를 낳을지가 뻔히 보였다. 힘들어도 밝은 미래를 기대할 수 있다면 참을 수 있지만, 일에 대한 애정이 식어 하기가 싫어진 상태라면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상태로는 한달이든 두달이든 더 버티는게 그다지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여전히 나는 도망가고 싶은 마음일 것이고 오히려 그땐 주위의 압박이 더 심해져 마음이 더 괴로울 것 같았다.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내가 왜 이걸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자 마음은 더욱 흔들렸다.

정말로 만족하는 직장에서 만족하는 보수를 받고 스스로의 일에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며 멋지게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 공허함이 더욱 심해졌다.     


결국 나는 그렇게 첫 직장을 그만두었다.

다시 말하면, 나는 나에게 찾아온 시련에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처럼 아스라지듯 도망쳐버렸다.     


그만두면 참 좋을 줄 알았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계속해서 눈물이 흘렀던 이유는 무엇일까?     

마지막 출근 퇴근 시간 30분 전, 함께 일했던 선생님들께 인사를 드렸다.

“하고 싶은 일이 있어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내 인사를 바라보는 선생님들 눈빛은 안타까우면서도 섭섭한 표정이었다.

이제껏 가르쳐놨는데 떠난다니 서운한 기색을 드러내는 선생님도 계셨고, 어디든 가서도 잘 살라며 토닥여주시는 선생님도 계셨다. 잘하더니 왜 가냐고 다시 생각해보라는 말씀도 들렸다. 예의상 해주시는 말씀이겠지만 그래도 내가 여기서 그렇게 내 이미지를 나쁘게 만들어두지는 않았구나 싶어 약간의 위안이 되었다. 

그 모습을 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직장에서 울면 안된다는 생각에 참아왔던 눈물이 이제 더 이상 눈치 볼 필요 없다고 느껴서일까 끊임없이 계속 흘렀다.     


그만두면 정말 좋을 줄 알았다.

그렇지만 병원을 나서는 내 모습은 심히 불안정했다.

계획에 없던 감정적인 퇴사. 대책 없는 퇴사. 견디지 못하고 도망치는 나.

내가 이번 상황에 대해 내린 결론은 ‘그저 감정적인 도피’였다.

내가 정말 못난 실패자같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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