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간호사였다. 병원을 퇴사한지 벌써 5년차다. 꿈과 현실의 중간 지점을 찾아 열심히 움직이고 있는 간호사다. 그러다 우연히 요양보호사 교육원에서 강의를 할 기회를 얻었다. 살면서 강의는 처음이라 설레면서도 두려웠다. 오늘은 나의 첫 강의 준비기에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한다.
내 시급은 2만원이었다. 모르는 사람은 “2만원이나 준다고? 우와!”하지만 사실 강사의 업무시간은 강의시간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뭘 알아야 가르치니까. 그래서 준비시간이 분명히 있다. 스케줄을 받아보니 내 파트는 ‘배설’과 ‘개인위생’이었다. 첫 강의라 그래도 쉬운 부분을 배려해서 주신게 아닐까 싶었다. 이 파트는 이론과 함께 실습을 해야 하는 파트였다. 그래서 강의를 시작하기 전에 교육원에서 보유하고 있는 실습도구의 종류와 위치, 갯수를 미리 확인했다. 그런 다음 본격적인 강의 준비에 돌입했다. 그런데 첫 강의에 대한 막막함이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대체 이걸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어떤 식으로 강의를 해야 하는지 참 어려웠다. 임상 간호사랑 정말 다르구나. 그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내가 간호사로 일을 배울 때 가장 주의해야 할 것들 중 하나는 ‘내 마음대로 하지 않기’였다. 병동에 뚝 떨어진 신규 간호사는 배울게 참 많다. 병동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주변 인력과 어떻게 협력하고 소통해야 하는지, 또 간호사들끼리는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간호사들끼리 하는 인계도 어떤 순서로 어떤 항목을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지 정해진 형태가 있으니 말이다. 이 과정에서 나의 프리셉터의 방식을 많이 따라가게 된다. 일을 배울 때 만큼은 프리셉터의 방식을 온전히 흡수해야 한다. 그 방식이 효율적으로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방식을 바꾸면 안된다. 신규의 입장에서는 미처 짐작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이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당장 배경지식 없이 누군가를 가르쳐야 하는 일을 시작하는 입장에서는 그 트레이닝 기간이 그립기도 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프리랜서 강사에게 트레이닝 기간이란 없었다. 선배 강사의 조언과 스스로 끊임없는 질문과 탐구만이 있을 뿐이다. 다른 강사님의 강의를 한 번 들어보면 훨씬 감을 잡기 쉬울 것 같았지만, 그것도 조금 실례될 수 있을 것 같아 굉장히 조심스러웠다. 강의에 대해 정보를 수집했다. 유튜브와 블로그를 막론하고 ‘가르치는 일’에 대한 정보를 모았다. ‘이렇게 하면 된다’는 뾰족한 정답은 없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 사실이 희망적이었다. 이건 정답이 없는 분야니까. 내가 만들기 나름이다.
자, 그럼 강의를 한번 해보자. 나는 주 2회, 하루 4시간의 강의를 맡았다. 내가 맡은 분량과 전체 시수를 나누어 하루에 해내야 하는 진도를 나눈다. 기본적인 틀을 잡고 머리속으로 강의를 구상한다. 그리고 앞에 사람이 있다고 상상하고 실제로 강의를 해보았다. 그리고 치명적인 문제를 깨달았다.
나는 말을 너무 못한다. 그리고 너무 짧다.
적당한 단어를 찾지 못해 어버버 얼버무리거나 당황하는 일이 잦았다. 현장에서 이런다면 너무 아찔하다. 설명과 설명의 연결고리가 너무 약하다. 그냥 줄줄 읽기만 하는 구간도 있었다. 그래도 이런건 더 다듬으면 된다. 무엇보다 걱정스러운건 시간이었다. 50분간 진행해야 하는 분량이 10분만에 끝나버렸다. 더 천천히 말해보았다. 10분이 13분으로 늘었다. 영상자료를 조금 더 추가했다. 13분이 17분으로 늘었다. 아무리 질질 끌어도 채워야 할 분량의 1/3밖에 되질 않았다. 오, 망했다.
어떻게 설명을 더 매끄럽게 할 수 있을까?
그런데 버벅거리는 말을 매끄럽게 다듬으면 시간은 더 줄어드는 것 같다.
이 시간은 어떻게 더 채워야 하나?
실습 도구를 확인하러 교육원에 방문했을 때 만났던 동료 강사에게 연락을 했다. 나처럼 아기를 키우며 파트타임 강사로 들어오신 분이었는데, 이 분도 강의가 처음이라 공감대가 맞았던 분이었다.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그 분도 같은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희망적인건 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다들 비슷한 문제로 고민한다면 해결책도 분명히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한창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교육생들의 연령대가 높으니 내용을 더 쉽게 풀어서 설명하고, 영상자료를 더 많이 찾아보자고 결론을 냈다.
이 대화를 통해 깨달은 게 있다.
나의 청중. 내 이야기를 듣는 사람.
그동안 내가 무슨 말을 할 지만 생각했지 들을 사람에 대한 생각은 깊게 해보지 않았던 것이다.
요양보호사 교육생들은 어떤 사람일까?
이 분들은 무엇을 원할까?
만약에 나라면, 나는 어떤 강의를 가장 선호할까?
먼저 요양보호사 교육 강의는 ‘자격증 시험’을 염두에 둔 강의다. 이 수업을 듣는 사람들은 모두 자격증을 따기 위해 모였으니까.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자격증 시험을 잘 치를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다.
그렇다면 이 교육생들은 왜 자격증을 따려고 하는걸까? 가족 요양을 위해 따거나, 추후에 일을 하기 위함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미 돌봄 활동을 하고 있거나 이후에 기관에서 돌봄 활동을 할 예정인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단순히 이론적인 내용만 다루는 것 보다 돌봄 활동에 도움이 되는 팁을 좋아하시지 않을까? 다른 요양보호사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흥미로워하실 것 같다. 이 부분을 놓치지 말아야겠다.
그리고 요양보호사 교육생들의 특징이 하나 더 있다. 대체로 연령이 높다는 것. 매 기수마다 차이가 있지만 평균 60세 전후라고 했다. 그리고 이 분들의 수업 스케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아주 빡빡하다. 한 기수가 대략 한 달정도 수업하는 걸 고려하면 더욱 빠듯한 스케줄이라는 생각이 든다. 공부를 계속 해오셨던 분들도 아니고 나이도 있으신 분들이 하루 약 8시간의 긴 수업에 참여하신다. 듣기만 해도 힘들다. 당연히 집중력이 떨어지기 쉽다.
이쯤 되니 대강 가닥이 잡힌다. 나는 아주 쉬운 내용의 강의를 준비해야 한다. 이해하기가 무척 쉽고 재밌어서 시간이 술술 지나가는 그런 강의 말이다. 그러면서도 자격증 시험에 합격할 수 있도록 빈출 내용은 특히 강조해서 다뤄야 한다. 돌봄 활동에 도움이 되는 팁과 현직 요양보호사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도 좋겠다. 영상 자료를 많이 활용하는 게 좋겠다. 돋보기 쓰시는 분들이 많을테니, 글자를 띄울 일이 있다면 최대한 크고 분명하게 띄우자. 가장 중요한 건 무조건 ‘쉽고 재미있는’ 강의를 구성하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나도 그랬다. 대학생일때 가장 좋아했던 강의는 ‘현장의 이야기를 많이 해주는 강의’였고, 제일 싫어했던 강의는 ‘그저 책을 줄줄 읽어주기만 하는 강의’였다. 그냥 책만 읽을거면 내가 혼자 읽지 뭐하러 강의실에서 들을까? 책 내용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 이상의 것, 교수님만이 해줄 수 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강의가 제일 재밌었던 기억이 났다.
아침엔 아이의 어린이집 등원과 함께 나도 카페로 출근했다. 저녁엔 잠든 아이를 남편에게 맡긴 뒤, 또 카페로 출근했다. 카페 구석에 앉아 강의를 만들었다. 내용을 이해하고 숙지한 다음 설명을 다듬었다. 시작은 비루했지만 살을 붙이고 또 붙였다. 그리고 계속 다듬었다. 첫 날 진행할 4시간의 강의를 위해 고민한 시간은 40시간이 넘을 것이다.
너무 많은 시간이 들어가는 것 아니냐고, 그 시간에 그냥 임상에서 일하는 게 낫지 않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돈을 벌기엔 그게 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강의를 준비하는 시간이 좋았다. 힘들긴 해도 잘 하고 싶은 마음 덕분에 지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게 나의 천직일까? 아직은 속단할 수 없지만 그래도 즐겁다. 힘들지만 잘 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큰 일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이 일도 하다보면 싫은점이 나올지도 모른다. 그래도 아직은 재밌다. 첫 강의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