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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민 Apr 16. 2016

대학병원을 사직해도 인생은 끝난게 아니더라

몸과 마음이 지쳤을 신규 간호사 선생님들을 위해

요즘들어 부쩍 하루에도 여러번 브런치 구독 알림이 뜬다. 아무래도 이제 처음 입사하는 신규간호사들이 많아졌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에도 여러번 자존감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고 있을 그녀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면 좋을까를 고민하다 다시 노트북을 켜게 되었다.     


내가 입사하고 한동안 힘든 시기를 견뎠을 때, 내가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은 ‘어쩌든지 견뎌야 한다’는 말이었다. 사직을 결심하기까지 가장 발목을 잡았던 말도 버릇처럼 들었던 그 말이었다.      


시간이 지나 이런저런 경험을 하고 난 지금 생각해보면, 어쩌든지 견뎌야 한다는 것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장 중요한건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잘 생각해보고 그에 맞는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조건 견디고 참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다. 내가 하는 말은 무조건 견디라는 말도 합리화하며 힘든 경험을 피하라는 말도 아니다. 가장 중요한 가치, 나에게 가장 맞는 것을 지키라는 뜻이다.    

 

나는 11월에 입사하고 1월 초에 퇴사했다. 그리고 한달 반 정도를 쉬며 재충전한 뒤 지금은 한방병원에서 일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나는 나의 일과 여가시간,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 아주 만족하고 있다.     


일을 그만두고 싶었던 건 ‘그렇게까지 독하게 견뎌내야 하는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원하는 삶과 방향이 조금 달랐기 때문이다. 때문에 첫 직장을 그만두고 나서는 직장을 잘못 골랐다는 생각을 넘어서서 직업을 잘못 골랐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마음이 너무나도 힘들었다.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자존심이 셌고 누구에게도 뒤지기 싫은 성향이었다. 적성은 교사나 강사 등 ‘누군가를 가르치고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일’이 더 맞았고 세부적인 관심사는 심리학, 상담이었다. 하지만 나는 심리학과로 진학하지 않았다. 내가 하려는 선택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의 부모님은 미래가 불투명한 문과 진로를 걱정하셨고 취업이 잘 되는 간호학과로 진학하기를 원하셨다. 그리고 나에 비해 성격이 강했던 어머니는 ‘간호학과만이 네가 살 길’이며 ‘다른 곳을 진학하려거든 네가 돈을 벌어 진학해라’고 말씀하셨다. 기어이 내가 심리학과에 진학하기를 원했다면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나의 강한 의지를 보였겠지만, 사실 나도 자신이 없었다. 서울 유명 대학교의 심리학과가 아닌 이상 취직도 어렵고 심리학과는 대학원까지 진학해야하는 과였기 때문이다. 거기서 두각을 드러낼 자신이 없어서 밀고나갈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타협했다. 경제력이 중요한 것도 사실이니 일단 간호대를 진학해서 면허증을 따기로. 그리고 면허증으로 얻은 나의 경제력으로 내가 진짜 원하는 일을 하기로 말이다. 대학에 진학했던 목표는 딱 그 정도였다. 그리고 경쟁률이 치열한 간호학과에 입학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들은 친척들과 부모님 친구들은 모두 나를 축하했다. 너는 정말 훌륭한 선택을 한거라고, 부모님 속 안썩이고 잘했다고 말이다. 학교가 지방대였지만 과가 커버해주는 좋은 이미지 덕분에 어디 가서도 당당하게 과를 밝히곤 했다. 학교생활을 하며 남들은 적은 월급과 낮은 취업률로 고생할 때 나는 그런 고민 안해도 되겠다며 내심 안심하기도 했다. 그렇게 간호학과의 장점을 누리며 대학생활을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부끄러운 과거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학년이 쌓여갔다. 자존심이 세고 완벽주의였던 내 성격상 공부는 어느정도 해냈었고 나름의 과내 경쟁체제에 살아남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갔다. 아예 공부에 관심이 없었거나 실습시간이 괴로웠다면 늦게라도 다른 길을 생각해보았을텐데, 또 그럭저럭 할만해서 계속 견뎌냈다. 전공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과 기쁨은 없었다. 그렇지만 또 그럭저럭 할만은 했다.     


도서관에서 여전히 심리학 관련 책을 찾아보고 또 나의 관심사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해보긴 했지만 이제와서 길을 돌리는건 무리라고 생각했다. 한편으론 이대로 묻어야 하는 내 관심사가 안타까웠고 심리학과 학생들이 부러웠다. 그렇지만 지금은 늦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것도 나쁘지 않다며 내심 스스로를 위로했다. 적성에 대해 계속해서 고민한 결과 나는 누군가를 지식적으로 도와주고 긍정적인 변화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에 큰 보람을 느낀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제와서 길을 돌릴 수는 없으니 간호학과를 끝내고 병원에도 몇 년 있다보면 또 다른 길이 눈에 보일거라고 생각했다. 나도 모르는 새에 경쟁체제에 빠져들어 남부끄럽지 않은 대학병원에 취직하기 위해 집중했다. 취업시즌도 끝났고 나름 괜찮은 성적을 낸 뒤 한동안은 행복감에 젖어 있었다. 부끄럽지 않은 결과였다. 원하던 일은 일이 적응되고 난 뒤에 시작해보도록 다시 잠시 미뤄두었다.     

그러다 입사했다. 그제서야 나의 욕구를 모른척하고 행복한 단꿈에 젖어있던 나에게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힘든 상황이 계속되자 내가 잠시 제쳐놓았던 꿈들이 다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러고보니 내가 간호대에 진학하면서 원했던 바는 돈을 벌어 내가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함이었는데 지금 상황은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었다. 나에게 필요한 강의가 있어도 들으러 갈 시간도 체력도 없었다.      


‘언젠가는 나아지겠지...’     


주위에선 3개월만 견뎌보라고 했다. 안타깝게도 나는 하루하루 나의 빛을 잃어가는 느낌이었다. 나에 대해 잘 알고 인생 방향을 잘 설정해오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때의 나는 모든 빛을 다 잃어버린 것만 같았다. 나는 고여있기보단 변화하기를 좋아했고, 호기심으로 가득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하나하나 새로운 것을 배우고 나의 색으로 주위를 물들이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여기에선 도저히 그렇게 할 힘이 없었다. 오히려 캄캄한 어둠에 나의 색마저 덮여 사그라드는 느낌이었다. 굳게 믿었던 계획에 차질이 생기기 시작했다. 모든게 다 어그러진 느낌,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되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과 마음이 지치기 시작하니 일에 대한 애정도 사그러들었다. 누군가 그때의 나를 지지해주었다면 좀더 붙어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는 계속해서 겉돌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무척이나 외로웠다. 적응하기가 참 힘들었다. 일이 느리다는 얘기만 계속해서 들었다. 나만 빼고 다들 잘 하는 것 같은데... 여기가 내가 있을 곳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다. 나는 그렇게 계속 빛을 잃어갔다.     


참 이상했다. 대학병원에 입사하긴 전 로컬 준종합병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적이 있다. 그곳에서 나는 참 잘 지냈었다. 사람들은 대체로 따뜻했고 나도 열심히 일했다. 잠깐이었지만 그 무리 안에 온전히 섞여 소속감을 느낄 수 있었다. 병원 시스템은 대학병원에 비하면 형편없었고 누군가는 ‘간호사가 왜 그런일까지 해야하지?’ 하고 문제제기를 하기도 했지만 나에게는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 부분은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때의 나는 행복했고 훨씬 더 나만의 색으로 반짝거렸다. 나는 그때의 내가 너무나도 그리웠다.     

‘적응을 하면 해결이 될 문제일까?’

‘1-2년 있으면 여기서도 그렇게 될까?’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고민했다. 확실히 대학병원은 진입장벽이 높다. 간호사들의 프라이드도 그렇지만 배워야 할 것도 많고 제몫을 다하려면 시간이 꽤 필요하다. 물론 여기에서 잘 버텨낸다면 나는 대학병원 간호사의 타이틀을 따낼 수 있다. 부끄러운 생각이지만 내 높은 자존심을 채우기에도 나쁘지 않은 타이틀이다. 시간이 지나면 오버타임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나는 부족함을 느끼지 못하게 될 것이다. 3년쯤 지나 여기에서 적응을 하고 나면, 그땐 나는 새로운 시작을 결심할 수 있을까? 몰랐다면 모를까,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지향점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다. 그걸 알면서 꾹 참고 적성과 다른 일을 할 수 있을까? 적응만 한다면 못할 것도 없지. 대학 4년이 그랬던 것처럼. 그렇지만 그러고 나면 나는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까? 그땐 결혼도 해야하고 더 안정적인 부분을 추구하게 될텐데...     


여태껏 성공하리라는 확신을 갖지 못해 유예해온 진로에 대한 선택을 또다시 미루려는 듯한 마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그리는 미래는 간호사가 아니었다. 간호사에 멈춰 커리어를 쌓는 게 목표가 아니었다. 냉정히 말하자면 내가 원하는 건 전문적 지식을 가진 간호사가 아니었다. 다른 길을 생각하는 것 보다 ‘지금 여기서 열심히 해야지’하는 게 덜 머리가 아프고 편안하기 때문에 고여 있었던 것 같았다. 내가 필요한 건 내가 원하는 수업을 듣기 위한 돈 그리고 자기계발을 위한 시간이었다. 여기서도 시간을 좀더 갖는다면 얻을 수 있는 부분이었지만 그보다 빨리 하고싶었다.     


대학병원과 비교했을 때 일반 로컬 병원에서 버는 돈은 적다. 그렇지만 차이가 크지 않았다. 대학병원 수술실에서 벌었던 돈은 로컬병원에서 3교대를 하면 벌 수 있었다. 업무 강도와 시간적 여유를 생각하면 그정도면 충분했다. 오래 병원을 다닌다면 월급의 격차나 누릴 수 있는 복지혜택의 차이가 커지겠지만 3년 후 이직을 고민하던 나에게는 그리 중요한 부분이 아니었다.      


결국 그만뒀다. 처음엔 쫓기듯 그만둔 나 자신이 너무 패배자처럼 느껴졌다. 그 정도도 견디지 못하고 그만둔 신규라니... 패기롭게 그만뒀지만 두려움이 밀려왔다. 이뤄놓은 게 없기 때문이다. 모두들 왜 그만뒀냐고 안타까워했지 잘했다고 칭찬해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간호학과에 들어갔다고 칭찬받았던 과거가 생각났다.      

‘여기부턴 실전이다. 더 이상의 후회는 없어야 해. 휩쓸리듯 입학하고 입사했던 과거는 어쩔 수 없지만, 이제부턴 내가 선택하는 길이니 온전히 내가 책임져야 한다.’     


취직은 어렵지 않겠지만 호기롭게 그만둔 이상 이번만큼은 내가 원하는 길로 가야했다. 나는 이제 온전히 ‘나’로 살아야 한다. 이제 누구도 책임져주지 않는다. 부모님 탓을 하는 것도 더 이상은 없어야 했다. 더 이상은. 누군가의 등 뒤에서 살 수 없다. 부모님의 선택을 대신하는 것도, 대학병원의 이름을 빌려 괜한 있는 척을 하는 것도. 더 이상은 없다. 남들은 어떻게든 대학병원 몇 년차라는 경력을 달겠지만, 나는 그런 기회를 포기하고 나왔으니 이제 더 이상 어딘가에 묻어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일을 그만두고 푹 쉬면서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다. 정말 괜찮아질 만큼. 자존심이 아닌 자신감을 키울 수 있을 정도로. 여행을 가서 새로운 경험도 해보고 내가 내 중심을 잡을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지를 고민했다.     


내가 하려는 일을 당장 할 순 없다. 차근차근 준비해야 하는 일이니까.

그렇지만 더 이상 남 눈치 보지 않고 남에게 좋아 보인다는 이유로 직장을 고르지 말아야지.

가장 중요한 건 적절한 보수와 여유시간이야.

또 일을 하고도 방전되지 않도록 마음에도 여유가 필요해.

병원 같지 않은 병원이 좋을 것 같아.

너무 심각해서 사람 생명이 달린 곳은 가고 싶지 않아.

사람관계가 편안한 곳으로 가고 싶어.

이왕이면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을 해보고 싶기도 해.

가장 중요한 건 내가 내 중심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는 거야.

나의 빛을 앗아가는 곳은 가지 말자.

...     


그리고 나는 집에서 가까운 한방병원으로 입사했다.

입퇴원이 많고 환자 수가 많아 일이 생각보다 많았다. 더욱이나 펑셔널이 아니라 팀널싱이라 배우는 데 시간이 좀 걸렸지만, 아픈 만큼 성장한다고 지금은 이전보다 훨씬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힘들어서 울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전보다 유연하게 내 마음에 대처할 수 있게 되었고 긍정적인 힘이 강해졌다. 상근직보다 3교대가 주는 장점에 집중할 수 있게 된 것도 과거와 다른 점이다. 죽어가듯 마지못해 출근하고 퇴근했던 과거에 비하면, 지금 나는 훨씬 생기있고 활기차다. 마음의 여유가 있고 에너지가 남아있다 보니 배우고 싶은 것도 차근차근 배우고 컨디션도 훨씬 좋다. 지금 나는 훨씬 행복하다. 고심 끝에 나에게 맞는 선택을 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지금 너무나 힘든 신규간호사 선생님이 이걸 보고 있다면, 너무 자책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시기가 원래 힘든 것도 있고, 그 집단이 자신과 맞지 않아서 일수도 있다. 지금까지도 참 잘해왔지만, 계속해서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 그만두고 직장을 옮겨보는 것도 나름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해서 행복해질 수 있다면 말이다. 나는 그만두면 인생이 끝나는 줄 알았다. 그렇지만 인생은 끝나지 않았다. 힘들어서 주저앉을 수도 있다. 그만둘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힘을 비축하고 회복해서 다시 일어나면 된다. 모두가 다 견디라고 어떻게든 견뎌야 한다고 말하기 때문에, 나는 견디지 못한 스스로를 자책했었다. 그렇지만 괜찮다. 다시 하면 된다. 이렇게 괜찮게 지내는 사람도 있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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