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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민 Mar 16. 2022

너무나도 소심했던 과거의 나야

 동생아, 언니 얘기 한 번 들어봐. 너가 나랑 비슷하다면 내 얘기가 도움이 될 지도 몰라. 


 나도 그랬어. 친구들 사이에서 미움받지 않으려 애쓰고 고민하는거 말이야. 나는 누구한테 미움받는게 제일 두렵더라고. 지금도 그래. 내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하고 내 색깔을 드러내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론 이 말을 해서 또 다른 미움을 받게 되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되거든. 예전부터 그렇더라. 나는 누군가에게 싫은 소리를 듣는 게 죽기보다 싫었어. 숙제를 안하면 혼나는 게 싫어서 학원을 빠진 적도 있었다니까? 그리고 나에게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더라도, 혹시나 내 얘기가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까봐 걱정이 됐어. 의도치 않게 한 말이 자랑처럼 느껴질 수도 있고 그게 누군가를 아프게 할 수도 있잖아. 그래서 더 말을 조심하게 되더라고. 그래서 그런지 학창시절에도 나를 수식하던 말들은 보통 '조용한, 내성적, 소심한, 내향적인' 아이였지.


 예전엔 그 말이 참 싫었다? 내성적이고 소심하다는 표현이 사실 별로 좋게 들리진 않잖아.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기분이 썩 좋지 않더라. 그런 표현들이 나를 깎아내리는 꼬리표같았지. 나는 내가 어딘가 결함이 있는 사람처럼 느껴지더라고.

 아,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어. 초6 때였나, 친구가 중학교 진학 대신 필리핀으로 유학을 간다고 했어. 외국에 간다니 신기하기도 했지만 나는 뜻이 없는 길이라 그냥 그런가보다 했지. 아빠한테 그 얘기를 했더니 아빠가 그러시는거야. "너도 보내주면 갈래? 못가겠지?" 나는 사실 가고싶지 않았어. 갈 이유도 없었고. 하지만 외국생활이 겁이 났던 것도 사실이야. 아빠가 나에게 하신 질문은 사실 질문이 아니었을거야. 어렸지만 묘한 뉘앙스를 느꼈고, 자존심도 무척 상했던 기억이 나. 어쨌든 그래서 나는 더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었어. 이건 다들 공감하더라. 인터넷 검색창에 '성격 고치는 법' 검색해본 경험, 너도 있었니?


 난 있었어. 나는 내 성격을 너무 고치고 싶었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하나 매일 고민했어. 어땠을까? 성격을 고칠 수 있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반반이야. 반은 성공하고 반은 실패했어. 타고난 성향은 고칠 수 없지만 세상을 살아가며 필요한 몇몇 부분은 개선할 수 있어. 낯선 사람과 함께 있는 걸 불편해 하던 아이는 제법 자연스럽게 인사도 할 수 있게 됐어. 묻는 말에만 대답하는 걸로 그치지 않고 먼저 말을 걸 수도 있게 되었지. 그렇게 애를 쓴 덕분에 나는 원만한 교우관계와 무난한 성적을 지닌 평범한 아이가 될 수 있었어. 누가 봐도 그냥 무난했을거야. 잘 지내는 것처럼 보였겠지.


 하지만 내면은 계속 불안했던 것 같아. 겉으론 평온하고 아무 문제 없어 보이는 아이인데, 내면에서는 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했어. 사춘기가 다가오자 더 심해졌지. 나는 밝고 대범한 친구들이 참 부럽더라. 큰 고민 없이 웃으며 넘기고, 속상할만한 상황도 금방 잊어버리는 친구들이 참 부러웠어. 나는 작은 일도 마음에 오래 묻어두고 내가 잘못했던걸까 곱씹는 타입이었거든. 누군가에게 얘기하면 끝에 꼭 '넌 의외로 소심하구나'가 붙어서 얘기하기도 불편했고. 그래서 내가 참 이상하구나 하고 생각했었어. 그런 내가 아무리 따라해도 그 친구들처럼 될 수는 없더라. 흉내를 낼 수는 있었지. 하지만 스스로가 알잖아. 마음이 참 불편하다는 걸. 아무리 따라해도 속이 바뀌지는 않더라고. 타고난 성향은 바꿀수 없다는게 이거구나 싶더라.


 그런데 말이야. 소심한 게 진짜 나쁜걸까? 나는 은연중에 계속 소심한 성격은 썩 좋지 않은 성격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 내 성격에 대해서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고. 주변에서 계속 '너는 참 유난스럽구나'하는 태도로 이야기를 해서 그런지, 나도 나를 은연중에 깎아내리고 있었나봐. 그러다 어느날 번뜩 깨달은거지. '나는 그렇게 잘못한 게 없는데? 내가 진짜 이상한 사람이야?' 하고 말이야. 그래서 내 성격이 이상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봤어. 그 때 내 성격에 대해 부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 나는 필사적으로 내가 괜찮은 사람임을 증명하고 싶었어. 소심해도 괜찮은 사람일 수 있잖아. 그렇지 않니?


 그렇게 고민한 결과 내린 결론이 두 가지야. 첫 번째는 '모든 특성은 양면적이며, 장점과 단점을 모두 가지고 있다'이고, 두 번째는 '가장 중요한 건 자존감이다'야.


 세상에 절대적으로 좋고 나쁜 게 있을까? 나는 없다고 봐. 모든 것은 다 장단점을 함께 가지고 있어. 조금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을거야. 예를 한 번 들어볼게. 나는 작은 일에도 슬퍼하는 소심한 사람이야. 그리고 그와 동시에 작은 일에도 기뻐할 수 있지. 이거 얼마나 큰 장점이니? 나는 작은 일에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은 인생을 재밌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해. 인생은 크고 멋진 일만 일어날 수 없거든. 다른 특성들도 마찬가지야. 모두 다 장단점을 함께 지니고 있어. 절대적으로 좋고 나쁜 것은 없지.


 그리고 자존감 말인데. 지금 생각해보면 제일 중요한건 소심하니 대범하니 하는 성격이 아니라 '자존감'이 제일 중요했구나 싶어. 내가 자랐던 세대는 소심하고 내향적인 특성을 그리 좋게 평가하지 않았어. 소심한게 나쁘다고 생각하니 자존감이 떨어지고, 그러니 자신감이 없어지는거지. 내가 겪은 대부분의 문제는 거기서부터 시작이었을거야. 하지만 나쁜게 아니라 다른거고, 모두 다른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봐. 소심한 성격은 나쁜게 아냐. 오히려 좋은거지. 인생을 더 다채롭게 살 수 있는 멋진 성격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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