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려니 마치 ‘숨은 그림 찾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장의 그림처럼 떠오르는 기억이 여럿 있고, 그 그림 속의 이미지 중에 작은 소품 하나를 끄집어내서 기억해 본다. 나이 탓인지 그 기억에 딸려오는 생각들은 실제인지 해석인지 점점 더 아련해진다.
예전에 중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만나서 함께 경험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서로 기억하고 있는 부분이 조금씩 달라서 놀랐다. 결국에는 서로가 맞다고 우기며 생기부를 떼어 보자는 얘기까지 나왔다.
이 글을 쓰면서 과거의 어느 사진 한 장을 꺼내올까 잠시 고민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우리 집에 빨간딱지가 붙던 날, 아니면 선머슴처럼 전쟁놀이를 하고, 지붕 위나 나무 높은 곳에 기어 올라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앉아 있던 유년기! 동네 아이들과 늦은 저녁까지 ‘이어달리기’를 하며 놀았던 초등 저학년 시절! 그때는 왜 그렇게 달리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소꿉놀이 하자는 친구들을 설득해 기어이 바통을 쥐어 주었다. 그 아이들은 내 덕분에 키가 5센티는 더 자랐을 것이다.
집안 환경으로 봤을 때 자존감이 낮을 이유가 더 많았는데, 다행히 난 자존감이 높았다. 아이들은 저절로 자란다고 믿었던 부모님의 무관심과 학교에서 원하는 것들을 두루두루 잘 해냈던 것이 도움이 된 것 같다.
초등 5학년 때 탄광촌 마을로 전학을 갔었다. 온통 까만 세상에서 하얗고, 키 크고, 긴 머리에 또래보다 성숙해 보였던 나는 바로 아이들의 타깃이 되었다. 여자 아이들이 나를 따돌리고 있었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누군가를 미워할 의지도 없었고, 질투하는 마음이 느껴져서 미워하고 싶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 아이들은 해맑은 나의 반응에 오래지 않아 전의를 잃었고 결국 친구가 되었다.
생각해 보면 그때쯤부터 지금의 나로 바뀌어 간 것 같다. 선머슴 같았던 아이에게 ‘천상 여자’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MBTI로 말하자면, E에서 I로 바뀌어 지금까지 내향적인 성격으로 살고 있다.
어린 시절의 경험과 추억은 한 장의 그림 속에 깊숙이 숨어 있다. 입으로 내뱉지 않으면 과거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어차피 기억이 미화되고 과장되는 것이라면, 나의 삶을 희망적으로 바꿀 수 있도록 해석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