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버른에서 20년 전 나를 만나다
갑자기 4일 연휴가 생겼다.
그렇게 즉흥적으로 내일 출발 멜버른행 비행기표를 결제하고 12시간 뒤에 공항으로 향했다.
아, 이건 정말 워홀러만 느낄 수 있는 낭만이구나.
공항에서 대기하며 무료하게 휴대폰만 만지고 있다가, 사진첩에서 손가락이 잘못 눌려 촬영일 순서대로 사진 정렬이 됐다. 갑자기 앳된 얼굴의 내가 보였다. 2004년 10월 5일. 놀랍게도 정확히 20년 전 오늘 사진이었다.
6학년 때 경주로 수학여행 갔을 때다. 담임선생님이 디카로 찍어준 사진에 촬영일자 정보가 저장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20년 전이라니... 사진을 쭉 둘러보니 지금의 얼굴이 보이는 게 신기하면서도 묘했다. 저때의 나도 나이고, 지금의 나도 나인데 그 사이의 20년이란 시간이 너무 말도 안 되게 느껴졌다.
나는 늘 나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민달팽이의 형상이 떠오른다. 단단한 보호막 없이 연한 살갗이 그대로 드러난 민달팽이. 그만큼 취약했고 나를 보호할 수단 없이 세상에 그대로 내어졌다는 느낌이 지배적이다. 예전에는 이런 생각이 지나치게 자기연민적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상담을 공부하면서 비로소 알게 됐다. 실제 객관적인 상황이 어땠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이 지각하는 자신의 모습이라는 것. 왜 그런 감정이 드는가를 따라가며 미해결된 감정과 마주하는 것이 모든 어른에게 남겨진 숙제이다.
그렇게 멜버른을 혼자 여행하며 어린 시절의 나와 조심스레 대화를 시작해 나갔다. 쓸쓸하고 어딘가 축축한 멜버른이었기에 어쩌면 더 자연스러웠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늘 어른이 되고 싶었다.
어른이 된 내 모습을 그리려 부단히 애쓰던 어린 날의 내가 떠오른다. 이런 모습일까? 머리는 이렇게 하고 있으려나? 직업은 무엇일까? 나는 정말이지 하루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러면 세상에 맞설 보호막이 자연스레 생길 거라고 믿었기 때문일까. 스스로가 너무 취약했던 걸 본능적으로 알았기에 막연히 어른이 되면 지금보다는 나으려니 하는 믿음이 굳건히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다. 그때쯤이면 난 단단한 사람이 되어 있겠지.
사실 어른은 어떤 관념적 상태에 불과하다는 걸 이제는 안다. 단순히 법적 성인연령에 도달한다고 모두가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 그치만 신기한 것은, 내가 어릴 적 그토록 그리던 나의 어른 모습에 조금은 가까워져 간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내가 그리던 내 모습은 사실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어릴 적 난 답답함을 많이 느꼈던 것 같다. 어딘가 속박되어 있고, 내 자유의지를 제대로 행하지 못하고, 나를 표현하는 방법을 잃은 느낌.
아직도 내 마음속엔 어린 내가 산다. 그 애를 어르고 달래며 잘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렇게 예기치 못한 때에 문득 어린 나를 만나게 되면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안녕? 너는 그토록 바라던 그 어른이 되었니? 아니어도 괜찮아. 우리에겐 아직 시간이 많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