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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현 Jul 20. 2021

그여름


  사랑없는 시대를 살아 나가는 것은 참을 수 없게 괴로운 일이다. 혐오의 목소리에 가려진 공존과 사랑이 그리워지는 오늘, 그렇기 때문에 ‘지금’, ‘여기'에서,  ‘퀴어’문학을 읽어 내림이 가지는 의미는 독서 그 이상일 테다. <그여름> 속 ‘이경'과 ‘수이'는 여느 연인처럼 서로를 애틋하게 사랑하고, 권태를 느끼고, 이별한다. 시대와 신념을 가로질러 존재하는 사랑이라는 보편감정이 어떻게 촉발되고 다시 휘발되는지, 이를 문학적으로 소명하기 위하여 최은영은 <퀴어 서사>를 그 방법론으로 채택한다. 나는 작품 속 ‘이경'과 ‘수이'가 느끼는 사랑이 ‘퀴어'의 제목을 달고 등장하였을 때 가지는 의미와 함께 21세기 문학의 퀴어적 소명 방식에 관하여 논하고자 한다.

  축구선수를 준비하던 ‘수이'가 찬 공에 ‘이경’이 맞으며 둘의 인연은 시작된다. ‘수이'는 매일 딸기우유를 사들고 ‘이경'의 반으로 와 그를 찾았다. ‘이경’은 흙먼지 날리는 운동장을 바라보며 훈련에 열중하는 ‘수이'를 머릿속으로 그리고 또 그린다. 생에 한 번 쯤 찾아오는 운명같은 사랑이 ‘이경'과 ‘수이'에게는 서로였고, ‘수이'가 부상으로 인해 축구를 관두고 ‘이경'이 진학한 학교가 있는 서울로 올라와 더 많은 일상을 함께할 때의 삶의 동력 역시 서로였다. 그러나 그들도 다른 연인처럼 권태를 느끼고, 결국 ‘이경'이 ‘은지'를 마음에 들이며 ‘이경'과 ‘수이'의 관계는 끝이 난다. 사랑과 이별이라는 선형적 이야기가 보편성을 뛰어 넘는 의의를 지니기 위해서는 특정한 서사를 부여 받아야 한다. <그여름>은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전개 혹은 이국적이고 신비한 배경 보다는 그 변형 지점을 이야기의 가장 중심, 인물으로 특정한다. 남성-여성의 전통적 구성을 전복시키고 오직 ‘여성'으로 사랑의 주체를 설정한 것이다.

  <퀴어 서사>는 그가 방법론으로 취해짐에도 불구하고 자체가 목적으로 행위된다. ‘이경'과 ‘수이'의 사랑은 그들이 동성이라는 이유로, 동성애에 관대하지 못한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이유로-작품 속 사회에서 역시 성소수자에 대한 배척 문화가 드러난다-, 더욱 애틋해진다. 독자는 사랑의 보편성 보다는 ‘동성애'라는 특수성에 초점을 맞추어 작품을 읽어 나간다. 이는 문학이 마주하는 필연적인 권태,  이야기가 인간의 “보편감정-사랑, 질투, 증오 등-"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타개하게 할 뿐만 아니라 독자로 하여금 사회 변화의 최전선을 인식하게끔 한다. 이는 <퀴어 서사>가 문학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자체가 변화를 주도하는 방아쇠가 될 수 있음을 역설한다. 실제로 김봉곤, 박상영 등의 젊은 작가들은 ‘퀴어'를 소품적 요소로 취급하기 보다는 서사의 중심부로 끌고 왔고, 그들의 책은 수 만 부를 찍어내며 한국 문학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의 변화를 견인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지점은 이러한 <퀴어 서사>가 낙관만을 지닐 수는 없다는 것이다. 최근의 한국 문학을 지지하고 있는 교각 중 하나인 <퀴어 서사>는 첫째 그가 독자로 하여금 특수성과 낭만을 그리게 한다는 점, 둘째 실험적 시도가 부재하다는 점에서 지적이 필요하다. 우선 ‘퀴어'가 가지는 특수성은 위의 문단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문학의 권태를 탈피하게 한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의를 가질 수 있으며, 퀴어 문학이 등장한 이래로 많은 평론가들이 그를 ‘한국 문학의 새로운 동력'이라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이는 <퀴어 서사>에 대한 특수성에 기인한 것이어야 하지 ‘퀴어' 존재의 특수성을 강조하여서는 안 된다. 보편적 인간 군상에 의거하되 전통적인 성별 구별-및 사랑-을 거부하는 것, 그리하여 역설적으로 퀴어의 실존과 보편성을 주장하는 것이 <퀴어 서사>의 사회문화적 의의이기 때문이다. 둘째, ‘실험적 시도'라 함은 다양한 양태를 띌 수 있겠으나, 나는 이야기의 구성 방법-자전적 이야기를 소설로서 편입시키는 것 등- 보다는 <퀴어 서사>의 전개에 있어 그가 어떠한 규칙과 일관성을 띄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퀴어 서사>의 중심에는 늘 ‘이별'이 있다. 기쁨으로 충만한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이들의 이야기 보다는 지나간 사랑에 가슴 아파하는 이들의 절절한 이야기가 더 많이 등장한다. 성소수자에 비판적인 사회적 분위기 역시 한 몫 했겠으나, 많은 독자들이 기대했던 바와 같이 정말 ‘실험적'이고 ‘역동적'인 문학을 선도하기 위해서는, 문학으로서 변화를 그려내기 위해서는 <퀴어 서사>가 이와 같이 보수적인 틀에 갇혀서는 안 된다.

  ‘수이'가 알려줬던 새의 이름을 되뇌는 ‘이경'의 모습을 보면 어떤 사랑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지난 기억이 너무 애틋해서 되돌아 보는 것도 죄스러운 사랑, 세상에 새로운 문을 열어준 감사한 사랑. ‘이경'과 ‘수이'는 이별하여 다시는 가까워질 수 없게 되었지만 서로를 열렬하게 사랑하였던 그 때의 감정은 영원토록 남아 그들의 삶을 지탱할 것이다. 사랑이란 그토록 위대한 것이니까. 지금, 여기, 우리가 읽는 <퀴어 서사>는 위대한 사랑의 힘을 알려준다. 이들이 가져온 변화를 토대로 더 많은 소수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힘껏 외칠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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