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소이의 그림일기

나는 나에게 얼마나 친절한가

by 유소이



인복이 많다는 얘길 들어왔다

부탁을 하지 않아도 누군가는 생필품을 지원해 주었고 , 몇 번 입지 않은 명품옷을 기꺼이 철마다 내어주는 선배도 있었다

라이브가수로 다니던 수십 년 동안 일자리가 끊겨보질 않았다

선후배들이 밀어주고 끌어주어 타지의 험난한 일터 싸움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렇게 나열해 보니 나는 복이 많았구나 생각한다

헌데 한편으로 돌아보니 정말 끝없이 애를 썼겠구나 싶다

그들의 호의가 있기까지 내가 어떤 노력을 했을지가 짚였다

해마다 명절 때면 고향에 가는 동료들에게 그 휴가를 양보했다

넉넉하지 않아도 설명절 추석명 절 땐 해마다 직원 몇 사람의 양말세트를 준비했다

정작 업주들은 준비하지 않은 일거리에 주변에선 뭐 하러 힘들게 그러느냐는 타박도 있었다


나는 왜 그랬을까

칭찬받고 싶어 하는 아이처럼 기를 쓰고 그 번잡스러운 일들을 했다

누구와도 싸우지 않았으며 웬만한 일은 갈등이 싫어 타협했고 늘 나를 낮췄다

면전에서 위협하기 전엔 , 그 누구에게도 싫은 소릴 하지 않았다


손하나 까딱하기 힘든 몸상태에도 누군가 하소연을 해오면 내 시간을 내어줬다

사람들은 나를 좋은 사람이라고 얘기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슷한 평판을 했던 것 같다


나는 내게 얼마나 친절한 사람일까...

나는 나를 정말 힘들게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가던 사람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모든 이에게 친절하려 기를 쓰면서 혼자가 된 시간엔 나를 전쟁하는 용병처럼 부려댔다


인생의 여러 문제들을 모두 내 탓으로 여겼다

"굳 윌헌팅" 이란 영화에서 로빈윌리암스가 하던 대사 ㅡ네 잘못이 아냐ㅡ를 듣고 오열을 했었다

내 안에 그렇게 많은 눈물이 있었다는 게 의아했다

어린 나는 왜 모든 게 내 탓이라 여겼을까

성인이 된 후에도 기껏해야 스물서른의 사회초년병이 뭐 그리 명료한 인생을 만들 수 있었겠나... 실수를 , 시행착오를 실패로 규정지어 놓고 수많은 세월을 마치 감옥에 들어앉은 죄수처럼 살아온 듯싶다


사람들은 늘 내게 말했다

정말 마음 따뜻하고 친절하다고...

진짜 내 모습이 정반대란건 물론 아니다

그들에게 내주었던 내 소중한 시간을 내게 주지 않았다는 얘기다

나는 일단정지, 보류였다

나를 챙길 여유는 없었다

요즘 나는 누군가 부탁을 해오면 잠시 생각할 여유를 꼭 갖는다

그리고 내속의 내게 묻는다

기꺼이 해줄 수 있는 맘이 들어?

서운해하고 실망할 타인들은 일단정지, 보류하기로 한다

네가 행복하지 않은 일은 하지 말라고 내게 타이른다

나는 이제 그 누구보다 내게 친절한 사람이 되기로 한다

아름다운 말을 하려면 내 속에서 먼저 그 말이 자라나야 한다고 했으니 말이다

표류가 아닌 진정한 항해를 시작한다

나는 진짜 어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