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고양이 아롬이

by 유소이

내 이름은 1987년생 아롬이


얼마 전부터 난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습관이 생겼다

처음엔 소이 언니를 기다리는 일이 내 하루의 전부였다

골목을 벗어나 집 대문 앞에 언니가 도착한 소리가 들리면 날렵하게 창틀에 올라앉아 기어코 창문틈새를 비집고 밖을 내다본다

두 가구가 사는 집이라서 늘 대문은 열려 있었다

열린 대문 앞에서 언니는 뭔가 주춤거리는 몸짓을 했다 피곤한가 보다

언니의 삶은 무거운 걸까?

나는 맘이 급한데 언니는 왜 뜸을 들이는 걸까

내가 보고 싶지 않았나?

심술도 났다

스물이 갓 넘은 언니는 어깨가 무거워 보인다

가만히 보면 짊어지고 다니는 기타 통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얼른 저 어깨에 뛰어오르고 싶다

언니는 옷에 생긴 내 발톱자국에 질색하면서도 한없이 애정 어린 눈빛이다

" 아롬아 요 장난꾸러기야 "

하루 온종일 보고 싶었던 맘이 억울해서 난 몸을 뒤집고 젖히고 웅크려가며 야옹거렸다

수많은 얘길 쏟아냈는데 그냥 야옹이라니 이런 허무할 데가.....

언니는 옷을 갈아입고 집을 휘 둘러보고 이것저것 정리를 한다

모래도 갈아주고 거실을 치운다

나는 언니의 등에 올라타서 쉴 새 없이 내 심심했던 하루를 쏟아낸다

왜용~ 왜~ 왜 왜용~~ 야옹


그런 우리에게 비밀이 생겼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언니에게 말하지 못한 거다

옆집 고양이와 연애를 시작한 거다

그리고 뱃속에 꼬물거리는 새끼를 느꼈다

언니는 요즘 내가 얌전해졌다고 한다

몸이 무거워서 그런 건데 언닌 아무래도 눈치가 없는 것 같다

자꾸 졸음이 왔다

갑자기 언니네 거실에 새끼들을 낳아 놓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 나는 옆집 옥상 지붕 아래 자리를 잡고 새끼를 낳았다

영문도 모르고 나를 잃어버린 언니는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어느 밤에 슬그머니 언니네 집 앞 골목으로 내려가보니 언니가 울고 있는 소리가 들린다

내 맘도 한없이 아파져서는 그 자리에 돌처럼 굳어 서 있는데

골목으로 나있는 창문이 열렸다

눈물이 범벅이 된 언니 얼굴이 나타났다

놀라서 커다래진 눈으로 언니가 창문을 넘어올 듯 다가서는데 나는 뒷걸음질을 쳤다

오지 말라는 경고로 알아들었는지 언니는 멈칫한다

" 왜 그래 아롬아 왜...... 거기 있어 "

이런 게 슬픔이란 걸 알았다

가슴이 쿵쾅거리며 고동쳤고 조이는 듯 아프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정지 화면처럼 한동안 그대로 서있었다

내가 먼저 천천히 돌아섰는데 언니가 큰소리로 울었다

착한 언니는 떼쓰지도 않고 울기만 했다

말을 할 수 없으니 내 사정을 모르겠지만 어떤 사정이 있겠거니 여기는 것 같았다

언니는 늘 졸라대는 걸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언니가 날 보살펴 준 것처럼 나도 새끼들을 돌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어린 냥이로 갈 수 없는 나는 소이 언니를 추억하며 살아가기로 했다

언니는 자취방을 나와 골목을 벗어날 때쯤이면 내가 있는 옆집 지붕을 한동안 바라보곤 했다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나 온종일 야옹거리네.."

동네 아주머니들의 말을 들었을까

직감으로 내 처지를 느꼈을까

그 후로도 오랫동안 마음 아팠지만 나도 언니도 진짜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언니가 마음 외로울 때 최선을 다해 위로해 주던 나는 그 사랑을 새끼들에게 돌리기로 했다

쓰러져도 일어나는 소이언니는 또다시 자기 앞의 생을 살아갈 것이라고 믿는다

언니 진심으로 고마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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