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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장 고무신

4화 생쥐

by 캔디쌤

자지러질듯한 아기 울음소리에, 옆방에서 보릿짚을 땋고 있던 외할머니가 헐레벌떡 방으로 뛰어왔다.


"아이고, 애미야 큰일 났다"

"엄마! 무슨 일인데...."

"쥐가 애 발을 물었는갑다"

"어머! 발가락에 피가...."


오랜만에 친정에 다니러 온 엄마는 갓 돌을 지난 나를 사랑방에 재워두고 외할머니와 두런두런 안채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외갓집은 대나무로 마을 전체를 뒤덮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대나무가 많았고 또 집 앞 대추나무는 해마다 가지가 휘어질 정도로 주렁주렁 열매를 었다.


"이를 어쩌노... 피나는 거 봐 "

"아이고 야야 , 우선 헝겊으로 꽁꽁 싸매 놔라.

작은 발에 먹을 게 어딨다고....쯧쯧"


지금 같으면 파상풍 주사에, 소독에 난리가 났겠지만 그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엄지발가락 끝에 생생하게 나 있는 쥐의 이빨 자국을 보고 외할머니가 갑자기 분기탱천하여 말했다.


"이 요망한 것이 어디 귀한 손녀를 물어뜯고....내 가만있나 봐라."


그때 물린 자국이 선명하게 흉으로 남아 있는 걸 보면 생쥐가 작정하고 물었음에 틀림없다.


외할머니는 자식 열둘을 낳아 그중의 절반을 먼저 저세상으로 보내서 그런지 아이들을 키울 때 잘 웃지도, 칭찬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마흔에 낳은 아들을(나의 외삼촌) 편애한 외할머니를 엄마는 늘 '독한 노인네'라고 원망했.


자식을 앞세우고 슬프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자신의 감정을 둔화시키고 아픈 자식을 살리지 못했다는 자책감을 살아있는 자식에게 투사함으로써 할머니는 자신의 방식대로 견뎌내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여튼 외할머니는 그날 이후 사랑방에 혼자 잠을 자며 못된 생쥐를 기다렸다.


"엄마, 생쥐인 줄 어떻게 알았어요?"

"이빨 자국을 봐라. 큰 쥐는 저 마이 안 작다"

아마 천장으로 들어온 모양인데 저 구멍으로 큰 쥐는 못 들어온다."


사랑방 옆 창고에 훔쳐먹을 곡식이 있으니, 꾀가 있는 큰 쥐는 방안으로 잘 들어오지 않을뿐더러 본능적으로 사람을 두려워했기에 어지간히 간이 크지 않고서야(아니면 무지하거나) 감히 인간의 발을 깨물 수 없다는 게 할머니의 결론이었다.


몇 날 며칠을 기다린 후 외할머니는 드디어 생쥐를 포획했다.

'옳거니, 니가 겁도 없이 또 기어들어 왔단 말이제'


안 그래도 귀한 빨랫비누를 한 움큼 갉아먹어 화가 잔뜩 나 있던 할머니가 요놈을 가만둘 리 없었다.


고양이나 개한테 던져 버리겠거니 했다면 오산이다.


할머닌 성냥을 그어 촛불을 켰다. 생쥐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면서 저주를 퍼부었다. 그리곤....


무서움에 바들바들 떠는 생쥐 주둥이를 촛불에 오래오래 바싹 태워 죽였다!

ㅡ 역시 외할머니는 독했다. (feat 나의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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