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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장 고무신

8화 거머리

by 캔디쌤

거머리는 시골에서 뱀과 동급으로 밉생이다.


농사철 외에도 얕은 도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존재.


하지만 거머리와의 본격적인 전쟁은 모내기하는 날!


경작 정리가 안 되어 뚠 논에 동네 어른들이 모여 모를 심고 나와 옥이는 양쪽 논둑에서 줄을 잡았다.


하얀 줄 중간에 표시된 빨간 점에 아줌마, 아저씨들이 모를 꽂으면 재빨리 기둥을 뽑아 다음 줄 옮기는 게 우리 임무였다.

너무 일찍 기둥을 뽑아도 안 되고 너무 느려서도 안 되었다. 어른들이 허리를 펴지 않고 연속해서 모를 심을 수 있도록 속도 조절과 노련미가 필요한 일이었다.


한눈팔다 타이밍을 놓치면 농 섞인 어른들의 타박을 들어야 했지만 한꺼번에 동네 어른들의 칭찬과 관심을 받는 그 역할이 싫 않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난관이 있었으니 바로 거머리.


줄이 닿지 않는 곳에 이르면 논둑에서 내려와 물속에 들어가야 했는데 그때가 가장 위험 순간이었다.


어른들처럼 움직이면 그나마 나은데 가만히 있으면 배고픈 거머리들이 떼거리로 '이게 웬 떡이냐?'며 달려들었다.


나는 뱀보다 거머리를 더 서워했다.

아니 다리에 들러붙는 게 너무 징그러웠다. 노란색, 갈색, 검은색, 가는 놈, 줄 있는 놈... 가지각색이다.


게다가 거머리는 순간적으로 마취를 하고 사람을 물기 때문에 밖으로 나와야 비로소 당했다는 걸 알아챌수 있으니 얼마나 사악한 놈인가.


수제비를 넣은 미역국과 국수가 단골 새참으로 배달되면 그제야 논두렁에 앉아 주렁주렁 토실토실 매달린 거머리 보고 소리를 빽 러댔다.


그쯤 되면 어른들이 나서야 겨우 뗄 수 있었고 피도 꽤 났던 것 같다.


모내기가 끝나면 바로 복수혈전!

가만있을 우리가 아니다. 특히 옥이.


"야, 니 다리 개안나?'

"아니, 너무 가려워"

여기저기 딱지가 들러붙은 다리를 보며 옥이가 물었다.


거머리가 심하게 문 곳은 딱지를 긁다가 상처가 덧나서 무릎 아래는 얼룩덜룩 상처투성이였다.


"우리 거머리 죽여볼래?"

"난 싫어"

"우리도 많이 물렸잖아. 죽여버리자!"


옥이가 면도칼을 갖고 왔다. 그때는 수동으로 면도하던 시절이어서 집마다 면도칼이 흔했다.


가게 앞 좁은 도랑에서 건진 거머리를 옥이는 눈도 깜박하지 않고 두 동강 냈다.


"어머나! 거머리 피는 검은색인 줄 알았는데 아니네."

'그러게. 하도 사람 피 빨아먹어서 빨간색이 된 거다."

"맞나..."


정말 그럴싸한 옥이의 말에 신뢰가 갔다.


"우리 한 개씩 밟자. 나는 꼬리 밟을게 "

"응, 나는 머리 쪽.."


햇빛이 쨍쨍 내리쬐는 마른 흙바닥에 거머리 한 토막씩 고무신으로 비볐다. 아무리 비벼도 꿈틀댔다.


" 이거 와이래 질기노. 안 죽는갑다."

" 그러게"


옥이가 고무신으로 툭 차서 도랑에 넣으니, 거머리가 꼬불랑거리며 물에 떠내려가는 게 아닌가.


"봤제? 거머리는 자르면 한 마리가 두 마리 된다야"

"우와, 맞네!"


옥이가 거머리를 또 잡아서 두 동강 아니 세 동강 냈고 나는 또 밟았다.

지나가던 다른 아이들도 합세하여 도랑에 보이는 거머리를 모두 끄집어내어 토막 내어 밟았다.


그리고 신빙성 있는 결론을 얻었다.


거머리는 우리 피를 빨아서 빨간 피가 되었고 잘라도 계속 번식한다는 사실.


시골에 그 많던 거머리의 존재 중 일부는 우리가 번식시킨 거라는 사실.


믿거나 말거나.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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