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깜장 고무신
8화 거머리
by
캔디쌤
Dec 9. 2024
거머리는 시골에서 뱀과 동급으로 밉생이다.
농사철 외에도 얕은 도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존재.
하지만 거머리와의 본격적인 전쟁은 모내기하는 날!
경작 정리가 안 되어
삐
뚠 논에 동네 어른들이 모여 모를 심고 나와 옥이는 양쪽 논둑에서 줄을 잡았다.
하얀 줄 중간에 표시된 빨간 점에 아줌마, 아저씨들이 모를 꽂으면 재
빨리 기둥을 뽑아 다음 줄
로
옮기는 게 우리 임무였다.
너무 일찍 기둥을 뽑아도 안 되고 너무 느려서도 안 되었다. 어른들이 허리를 펴지 않고 연속해서 모를 심을 수 있도록 속도 조절과 노련미가 필요한 일이었다.
한눈팔다 타이밍을 놓치면 농 섞인 어른들의 타박을 들어야
했지만 한꺼번에 동네 어른들의 칭찬과 관심을 받는 그
역할이 싫
지
않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난관이 있었으니
바로 거머리.
줄이 닿지 않는 곳에 이르면 논둑에서 내려와
물속에
들어가야 했는데 그때가 가장 위험
한
순간이었다.
어른들처럼 움직이면 그나마 나은데 가만히 있으면 배고픈 거머리들이 떼거리로 '이게 웬 떡이냐?'며 달려들었다.
나는 뱀보다 거머리를 더
무
서워했다.
아니 다리에 들러붙는
게 너무 징그러웠다.
노란색, 갈색, 검은색, 가는
놈, 줄
이
있는
놈... 가지각색이다.
게다가
거머리는 순간적으로 마취를
하고 사람을 물기 때문에 밖으로 나와야 비로소 당했다는 걸 알아챌수 있으니 얼마나 사악한 놈인가.
수제비를 넣은 미역국과 국수가 단골 새참으로
배달되면 그제야 논두렁에 앉아 주렁주렁 토실토실 매달린 거머리
를
보고 소리를 빽
질
러댔다.
그쯤 되면 어른들이 나서야 겨우 뗄 수 있었고 피도 꽤 났던 것 같다.
모내기가 끝나면 바로 복수혈전!
가만있을 우리가 아니다. 특히 옥이.
"야, 니 다리 개안나?'
"아니, 너무 가려워"
여기저기 딱지가 들러붙은 다리를 보며 옥이가 물었다.
거머리가 심하게 문 곳은 딱지를 긁다가 상처가 덧나서 무릎 아래는 얼룩덜룩 상처투성이였다.
"우리 거머리 죽여볼래?"
"난 싫어"
"우리도 많이 물렸잖아. 죽여버리자!"
옥이가 면도
칼을 갖고 왔다. 그때는 수동으로 면도하던 시절이어서 집마다 면도칼이 흔했다.
가게 앞 좁은 도랑에서 건진 거머리를 옥이는 눈도 깜박하지 않고
두 동강 냈다.
"어머나! 거머리 피는 검은색인 줄 알았는데 아니네."
'그러게. 하도 사람 피 빨아먹어서 빨간색이 된 거다."
"맞나..."
정말 그럴싸한 옥이의 말에 신뢰가 갔다.
"우리 한 개씩 밟자. 나는 꼬리 밟을게 "
"응, 나는 머리 쪽.."
햇빛이 쨍쨍 내리쬐는 마른 흙바닥에 거머리 한 토막씩 고무신으로 비볐다. 아무리 비벼도 꿈틀댔다.
" 이거 와이래 질기노. 안 죽는갑다."
"
그러게"
옥이가 고무신으로 툭 차서 도랑에 넣으니, 거머리가 꼬불랑거리며 물에 떠내려가는 게 아닌가.
"봤제? 거머리는 자르면 한 마리가 두 마리 된다야"
"우와, 맞네!"
옥이가 거머리를 또 잡아서 두 동강 아니 세 동강 냈고 나는 또 밟았다.
지나가던 다른 아이들도 합세하여 도랑에 보이는 거머리를 모두
끄집어내어 토막 내어 밟았다.
그리고
신빙성 있는
결론을 얻었다.
거머리는 우리
피를 빨아서 빨간 피가 되었고 잘라도 계속 번식한다는 사실.
시골에 그 많던 거머리의 존재 중 일부는 우리가
번식시킨
거라는 사실.
믿거나 말거나.
ㅎㅎ
11
댓글
6
댓글
6
댓글 더보기
브런치에 로그인하고 댓글을 입력해보세요!
캔디쌤
직업
교사
검정고무신 만화를 재밌게 본 상담교사입니다. 나의 힐링공간인 어린시절 이야기를 힘들 때마다 하나씩 소환해서 재밌게 써 보려고 합니다..
구독자
11
제안하기
구독
작가의 이전글
깜장 고무신
깜장 고무신
작가의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