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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장 고무신
7화 고데기
by
캔디쌤
Dec 9. 2024
한
살 많은 동숙 언니의 부모님은 흡사 할머니, 할아버지 같았다.
아버지는 치아가 거의 없었으며 머리는 새하얗게 서리가 내려있고 몸이 구부정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열다섯 살 많은 맏언니가 시집을
갔으니, 부모님이 족히 환갑에 가까
웠
음에 틀림없었다.
학교 운동회나 부모님이 오셔야 하는 날엔 맏언니가 부모님을 대신했고 다른 친구들이 부모님의 존재를 알까
노심초사했다.
우리도 언니와 말싸움 끝에 늘 늙은 부모님을 운운하며 약을 올렸으니
,
언니가 속상해하는 건 당연했다.
여름이 가까워지면 아카시아 잎이 흐드러진 동숙이 언니 담장에 붙어 앉아 가위바위보로 이파리 따기 게임을 하거나, 아카시아잎 줄기를 머리에 꼬아서 파마
놀이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숙 언니가 신기한 이야기를 했다.
"있잖아, 이번에 우리 언니가 놀러 왔는데 머리가 구불구불 진짜 이쁘더라"
"
어떻게?'
" 고데기로 한 거래"
" 고데기가 뭐야?"
티비도 없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은 시골아이들에게 고데기가 얼마나 낯선 단어였을까?
하지만 신문물의 간접 영향을 받은 동숙언니가 잘난
체하며 설명했다.
" 응 그거는 연탄불에 쇠를 달궈서 머리카락
을 지지는 거야."
" 엥? 머리카락
을 지진다고?"
" 그러면 아카시아
로 한 것보다 훨씬 뽀글뽀글하게 나오거든...
.
"
그랬다. 아카시아잎을 떼고 남은 줄기로 머리카락을 땋아봤자 이쁘게 되지도 않을뿐더러 금방 풀렸다.
" 언니, 연탄이 뭐야?
아카시아로 자연펌을 하고 있던 옥이가 물었다.
집집마다 굴뚝에 연기가
하나둘
피어오르면
,
시간을 미뤄 짐작하고 저마다 아궁이에 불을 지펴 밥을 짓던 시절이니 연탄이 뭔지 알아들을 리 만무했다.
" 응,
그거는.... 그냥
구멍에 불이 붙어있는 그런 거다...."
그 당시 읍내 미용실에선 실제로 연탄불에 고데기를 데워 사용했으나,
구경
한번 못
해 본 연탄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았다.
" 언니, 근데 우린 연탄이 없는데 어데서 구하
노"
아궁이에 쇠꼬챙이를 달구는 상상을 하던 내게 언니가 웃으며 말했다.
" 다
준비해 놨지."
"...
."
언니를 따라 아무도 없는 부모님 방에 들어간 우리는 깜짝 놀랐다.
동숙이 아버지가 늘 담뱃잎을 말아 불을 붙이던 작은 화로에 이미 숯댕이가 벌겋게 타고 있었다.
" 오늘 장날이잖아. 부모님 오시려면 아직
멀었다. 우리끼리 고데해 보자"
부엌에서 쇠젓가락을 여러 개 갖고 와 화로에 턱 걸
치며 언니가 말했다.
" 쪼매 뜨거워지면 머리카락에 말면 된다
.
"
좀 있으면 정말 이쁘게 뽀글뽀글 웨이브가 생기고 예뻐진다니 가슴이 두근두근 설레었다.
옥이는 그새 아카시아
줄기를
머리에서 떼며 제일 먼저 화로에 다가와
앉았다.
그리고 우리는 달궈진 젓가락
에 손 델까 봐 장갑을 끼고 각자의 머리를 달군 쇠로 셀프 고데를 했다.
그러나 얼마 뒤,
"어머? 내 머리..."
뚝 잘린 머리카락을 쥐고 옥이가 멍하니 우리를 쳐다보았다.
" 언니, 이거 타는 냄새 아냐? 힝"
철사처럼 파삭하게 타서 심지어 펄펄 날리는 머리카락을 보고 내가 울먹이며 말했다.
사실 언니 머리카락도 마찬가지였다. 불에 달군 젓가락으로 머리를 지져댔으니
, 웨이브는커녕 타거나 끊어져 버리거나 둘 중 하나였다.
솜씨를 뽐내고 싶었던 언니는
젓가락을 잘못 움직이는 바람에 귀에 화상도 입었다.
방안은 고기 타는 냄새와 연기로 가득했
고 머리는 사뭇 쥐 파먹은 듯 더벅머리로 변해 있었다.
행여 누가 볼세라 머리를 감싸 쥐고 잽싸게 달려온 나를 보고 엄마가 깜짝 놀라셨다.
"머리가 그게 머고? 누가 이랬노?"
"그게 아니고..."
이야기를 다 들은 엄마가 혀를 차며 나의 등짝을 때렸다.
"내가 뭐라했노. 허구한 날 사고만 치고... 쯧쯧"
안 그래
도 짧은 머리를 엄마가 시커먼 가위로 귀 위 5센티로 다듬어주면서 난 온전한 '간난이'가 되었다.
아무리 어려도 더 못 생겨진 얼굴을 감당하기 어려웠던지 거울 한번 보고 울고 또다시 보고 울
었
다.
매일 길목에서 시끄럽던 꼬맹이가 보이지 않자, 동네 아주머니들이 급기야 집까지 찾아왔다.
"둘째 딸 요새 안 보이네요. 외갓집에 보냈어요?"
"그러게. 동네가 조용하니 이상하구먼"
"젓가락으로 저지래를(잘못)해서...."
자초지종을 듣고 아주머니들이 박장대소를 했고, 난 혹시
누
가 나를 보기 위해 문을 열까 봐 두 손으로 문고리를 꼭 잡
고
버텼다.
물론 나의 방황과 은둔은 얼마 안 가 끝이 났다.
바가지 머리에 곧 익숙해졌고 쥐 파 먹은 머리카락은 금세 자랐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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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고무신 만화를 재밌게 본 상담교사입니다. 나의 힐링공간인 어린시절 이야기를 힘들 때마다 하나씩 소환해서 재밌게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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