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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장 고무신

6화 뱀

by 캔디쌤

뱀은 징그럽다.


달콤한 말로 이브를 꾀어 인간의 영원한 안식과 평안을 앗아간 그 나쁜 놈을 유전적으로 싫어한다.


그래서 오늘은 뱀을 시원하게 처단한 우리 동네 꼬마들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돌이 섞여 울퉁불퉁 구멍이 숭숭 나 있는 흙담을 잽싸게 넘어가기란 아무리 '구렁이 담 넘어가는 솜씨'가 일등급인 뱀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구멍과 구멍 사이에 자기 몸을 턱 걸치고 낮잠을 자거나 잠시 쉬어가는 걸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감히 어디라고 그렇게 넋 놓고 쉬고 있었는지....


누군가 '뱀이다'라고 외치면 할 일 없는 시골 아이들은 갑자기 신이 났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짱돌을 양손에 챙겨 들고 우르르 몰려가 뱀을 향해 마구 던졌다. 생명체에 대한 소중함보다는 그저 뱀은 나쁘고 없애버려야 하는 존재였다.


" 야, 이 뱀 갖고 우리 뭐 하지?"


".... 그냥 풀숲에 던져."


옥이와 나의 대화를 듣고 있던 한 살 아래 완이가 갑자기 끼어들며 말했다.


"작대기 하나 갖고 올게."


"뭐하게?"


완이는 정말 쪼그마했는데 날쌔고 겁이 없었으며 옥이보다 훨씬 짓궂었다.


동네 식수인 우물에 침 뱉기, 두레박에 돌을 담아 우물 바닥에 가라앉히기는 나와 완이의 주요 합작품이었다.


고소공포증이 있던 나는 (상당히 깊은) 우물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쳤는데 완이는 우물 테두리를 밟고 뱅글뱅글 도는 게 주특기인 아이였다.


땔감 뭉태기에서 작대기 하나를 쑥 뽑아온 완이가 죽은 뱀을 칭칭 돌려 감았고, 동네 첫 집인 우리 집 담장 아래에 숨어 함께 작전을 짰다.


옥이와 나는 담장 구멍 사이로 누가 지나가는지 망을 보고 힘센 완이는 담장 옆 거름더미에 올라가 수그린 채로 던질 준비를 했다.


까만 교복을 입고 한 시간 이상 걸어 하교하던 불쌍한 윗동네 언니들이 그날의 희생양이었다.


"완아, 지금이야! 언니들 지나간다!"


"응, 던질게!"


하늘에서 갑툭튀 한 죽은 뱀이 서로 팔짱을 끼고 재잘거리는 대여섯 명의 언니들 위로 날아가 덮쳤다.


가방이고 뭐고 다 던져버리고, 그 자리에 얼어붙어 울고불고... 지나가던 어른들은 '아이고머니나' 하면서 뒤로 자빠지고... 우린 담벼락을 방패 삼아 옆집으로 도망을 갔고...


대환장의 광경이 펼쳐졌다.


그 사건 이후 언니들은 우리 동네를 통과하지 않고 더 먼 길을 둘러 다니는 수고를 했다.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한약을 지어먹었다는 이야기, 아랫동네 애들 유별나다는 윗동네 아줌마들의 수군거림이 한동안 들려왔지만 린 쫓겨나지 않고 무사했다.


다만 휙 날아가던 뱀과 놀란 비명 소리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뇌리에 선명하다.


언니들은 더 또렷하고 끔찍하게 이날을 기억하고 있을 테지...



그 이후로도 뱀은 겁 없이 계속해서 출몰했고, 우린 뱀을 죽이거나 생포해서 마리당 이백 원에 파는 일상을 반복했지만 더 이상 사람한테 던지지는 않았다.


아마도 죄인 3인방이 양심의 가책을 크게 느꼈으리라 믿고 싶다.


문지방에 널브러져 있다가 컴컴한 새벽에 밭일 나가는 아저씨 벨트가 될 뻔한 멍청한 뱀...


다라이(대야) 담긴 열무얼갈이배추를 풀숲인 양 돌진하다 아줌마한테 흠씬 두들겨 맞은 뱀....


우리의 무수한 구박에도 굴하지 않고 끊임없이 소심한 복수를 하던 보 같은 앰.


정말 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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