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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장 고무신
10화 머리 좋아지는 약
by
캔디쌤
Dec 13. 2024
윗마을 뒷산에 집채만
한 왕릉이 하나 있었다.
수많은 궁녀와 신하를 순장했던 왕인지라 무덤에서 까불다간 우리도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갈 거라는 두려움에 왕릉에 가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왕릉을 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딱
하나!
흙으로 덮은 둥근 모양의 무덤 아래에는 무덤을 보호하기 위한 둘레석이 있는데(12 지신상이 하나하나 새겨져 있었음)
숨을 참고 한
바퀴 돌면 천재가 된다는 말이 아이들 사이에 신앙처럼 자리
잡았다.
돌에 새겨진 12마리의 동물들이 총기를 심어준다나 어쨌다나....
그래서인지 윗동네는 우리보다 학생 수가 두
배나 많았
음에도 불구하고 월말고사에서 늘 1등을 했다.
진짜 왕의 보살핌과 기운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동네별 대항에서 늘 꼴찌
하던 우리도 상을 타고 싶었다. 자랑스럽게 동네 이름이 불리고, 6학년 오빠가 대표로 상 타는 모습이 영원히 상상 속에서만 가능하게
내버려 둘
순 없었다.
언니,
오빠 따라 왕릉에 도착한 우리는 두
명씩
짝을 지어
임무
수행에
들어갔다.
절대 숨을 쉬면 안
되고 전력
질주해서 냉큼 한
바퀴
돌기!
평소 막걸리를 많이 훔쳐먹던 옥이는 1학년답지 않게 쌩하니 잘도 달렸지만
5분의 1
남은 지점에서 난 숨이 차올라 죽을 것만 같았다.
'아, 힘들어, 조그만 숨 쉴까?
'
'아니야
,
나 때문에 우리
동네가 또 꼴찌
하면 어떻게 해'
마음속 두 자아가 갈등하는 사이,
나의 생존
본능이 무의식적으로 먼저 작동해
버렸다.
'말하는 것도 아닌데 알게 뭐람? 설마 아무도 눈치 못
챘겠지?'
나의 거짓 미션
수행
때문인지 우린 여전히 꼴찌에서 벗
어나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은 영구네를 의심했다.
글을 못 읽는 영구는 달리기도 느렸기 때문에 한동안 원망과 의심의 눈초리를 받았다.
" 분명 영구가 숨 쉬면서 달렸을
거야. 저 배신자, 거짓말쟁이...."
"......."
"우린 언제 윗마을 애들처럼 칭찬
받아보냐?
"그러게, 재들은 연필하고 공책도 한
권씩 받았다더라"
"좋겠다.... 우린 언제 그렇게 되노"
동네 아이들은 저마다 한 마디씩 부러움의 한탄을 자아내며 툴툴
댔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놀러 온 아줌마와 엄마가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 살아있는 누에를 생
걸로(날 것으로)
먹으면 머리 좋아진대요"
" 그래요? "
두 어른의 대화에 귀가 솔깃했다.
서른 살의 새댁인 엄마도 과학적 근거는 알지 못했
다
.
나는 6학년 언니들에게 쪼르르 달려가 소문을 냈고 주범인? 영구에게 누애를 어떻게 먹이느냐로 왈가왈부했다.
동네 서너 집에서 누에를 키우고 있어서 누에 구하는 건 문제가
아
니었다.
실제로 누가 무슨 이유에선지 몰라도 누에를 산
채로 먹었다는 이야기가 종종 있었으니(누에가 아니라 번데기를 먹지 않았나 추측함)
우린 영구
가 어서 먹고 명석해지길 고대했다.
영구는 동네 아이들의 간사한 협박에 못 이겨 결국 누에를 먹었다고 한다.
내가 실제로 보진 못했으나 여하튼 영구가 먹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고 우린 그
정도의 성의를 당연시했다.
시골
아이들은 쫄깃한 개구리 뒷다리, 귀뚜라미
튀겨먹기, 뱀 껍질 벗겨 불에 구워 먹기 등 못 먹는 거 빼곤 다 주워 먹었으니 그까짓 누에쯤이야 식은 죽 먹기였다.
다만 약효가 있나
없나의 문제일 뿐.
하지만 그 이후에도
뒤에서 1,2등 하는 건 여전했고 딱히 괄목할 만한
효과는 없는 걸로 판명이 났다.
차라리 그때 구구단이라도 같이 외웠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칠칠이 뺑끼 칠(페인트칠), 팔팔이 곰배팔, 구구 달구(닭)똥..." 이러고 놀았으니 어찌 꼴찌를 면하리오?
*곰배는
농
기구인 고무래의 사투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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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고무신 만화를 재밌게 본 상담교사입니다. 나의 힐링공간인 어린시절 이야기를 힘들 때마다 하나씩 소환해서 재밌게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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