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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장 고무신

10화 머리 좋아지는 약

by 캔디쌤

윗마을 뒷산에 집채만 한 왕릉이 하나 있었다.

수많은 궁녀와 신하를 순장했던 왕인지라 무덤에서 까불다간 우리도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갈 거라는 두려움에 왕릉에 가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왕릉을 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딱 하나!


흙으로 덮은 둥근 모양의 무덤 아래에는 무덤을 보호하기 위한 둘레석이 있는데(12 지신상이 하나하나 새겨져 있었음) 숨을 참고 한 바퀴 돌면 천재가 된다는 말이 아이들 사이에 신앙처럼 자리 잡았다.


돌에 새겨진 12마리의 동물들이 총기를 심어준다나 어쨌다나....


그래서인지 윗동네는 우리보다 학생 수가 두 배나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월말고사에서 늘 1등을 했다.

진짜 왕의 보살핌과 기운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동네별 대항에서 늘 꼴찌 하던 우리도 상을 타고 싶었다. 자랑스럽게 동네 이름이 불리고, 6학년 오빠가 대표로 상 타는 모습이 영원히 상상 속에서만 가능하게 내버려 둘 순 없었다.


언니, 오빠 따라 왕릉에 도착한 우리는 두 명씩 짝을 지어 임무 수행에 들어갔다.


절대 숨을 쉬면 안 되고 전력 질주해서 냉큼 한 바퀴 돌기!


평소 막걸리를 많이 훔쳐먹던 옥이는 1학년답지 않게 쌩하니 잘도 달렸지만 5분의 1 남은 지점에서 난 숨이 차올라 죽을 것만 같았다.


'아, 힘들어, 조그만 숨 쉴까?'

'아니야, 나 때문에 우리 동네가 또 꼴찌 하면 어떻게 해'


마음속 두 자아가 갈등하는 사이, 나의 생존 본능이 무의식적으로 먼저 작동해 버렸다.


'말하는 것도 아닌데 알게 뭐람? 설마 아무도 눈치 못 챘겠지?'


나의 거짓 미션 수행 때문인지 우린 여전히 꼴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은 영구네를 의심했다.

글을 못 읽는 영구는 달리기도 느렸기 때문에 한동안 원망과 의심의 눈초리를 받았다.


" 분명 영구가 숨 쉬면서 달렸을 거야. 저 배신자, 거짓말쟁이...."

"......."

"우린 언제 윗마을 애들처럼 칭찬 받아보냐?

"그러게, 재들은 연필하고 공책도 한 권씩 받았다더라"

"좋겠다.... 우린 언제 그렇게 되노"


동네 아이들은 저마다 한 마디씩 부러움의 한탄을 자아내며 툴툴댔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놀러 온 아줌마와 엄마가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 살아있는 누에를 생 걸로(날 것으로) 먹으면 머리 좋아진대요"

" 그래요? "


두 어른의 대화에 귀가 솔깃했다. 서른 살의 새댁인 엄마도 과학적 근거는 알지 못했.


나는 6학년 언니들에게 쪼르르 달려가 소문을 냈고 주범인? 영구에게 누애를 어떻게 먹이느냐로 왈가왈부했다.


동네 서너 집에서 누에를 키우고 있어서 누에 구하는 건 문제가 니었다.

실제로 누가 무슨 이유에선지 몰라도 누에를 산 채로 먹었다는 이야기가 종종 있었으니(누에가 아니라 번데기를 먹지 않았나 추측함) 우린 영구가 어서 먹고 명석해지길 고대했다.


영구는 동네 아이들의 간사한 협박에 못 이겨 결국 누에를 먹었다고 한다.


내가 실제로 보진 못했으나 여하튼 영구가 먹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고 우린 그 정도의 성의를 당연시했다.


시골 아이들은 쫄깃한 개구리 뒷다리, 귀뚜라미 튀겨먹기, 뱀 껍질 벗겨 불에 구워 먹기 등 못 먹는 거 빼곤 다 주워 먹었으니 그까짓 누에쯤이야 식은 죽 먹기였다.


다만 약효가 있나 없나의 문제일 뿐.


하지만 그 이후에도 뒤에서 1,2등 하는 건 여전했고 딱히 괄목할 만한 효과는 없는 걸로 판명이 났다.


차라리 그때 구구단이라도 같이 외웠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칠칠이 뺑끼 칠(페인트칠), 팔팔이 곰배팔, 구구 달구(닭)똥..." 이러고 놀았으니 어찌 꼴찌를 면하리오?



*곰배는 기구인 고무래의 사투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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