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도에 따라 달라지는 풍경처럼

명화 <대사들>을 보고 생각해보는 삶의 태도

by 황인찬

어제 서울에서 친구들과 볼 일이 있었다.

거의 7개월 만에 가지는 모임이었다.

우리는 너무 반가웠던 나머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열심히 놀았다.

그러다가 흘깃 보았던 손목시계의 시침이 11을 가리킬 때 즈음,

친구 두 명이 시간이 늦었다며 이만 가보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제서야 집을 가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라는 것을 인지했다.

원래도 대책없이 시간감각이 부족해서 항상 막차를 타던 나였지만,

이번에는 막차조차 타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엄습해왔다.

20년을 살며 처음 겪어보는 일이었고, 신촌 근처에서 나를 재워줄 친구도 없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2호선을 탄 후, 4호선으로 환승 하려고 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시간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고, 서울대 입구 역에 도착한 나는 다른 경로를 찾아야만 했다.

다행히 역 근처 한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한 번 환승하여 기숙사에 가는 루트가 있었다.

안도의 한숨을 쉬려던 순간, 나는 버스가 3분 뒤에 온다는 사실을 뒤늦게 확인해버리고 말았다.

옆에서 막 나를 추월하고 저 앞에서 가고 있는 버스를 타기 위해 허겁지겁 달렸다.

무사히 버스에 탔다.

그렇게 생각했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는 속담이 있었던가.

다음 버스로 환승하기 위해 버스에서 내린 나는 두 가지 사실을 깨닫는다.

첫 번째는 다음 타야할 버스가 1분 전에 가버려서 오전 6시가 돼서야 온다는 사실이었고,

두 번째는 지갑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이었다.


대략 10분 간을 당황해 하던 나는 초조한 마음을 달래고 차분하게 생각해보았다.

노래방에서 나올 때에는 분명히 지갑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버스를 타기 위해 달리던 도중 주머니에서 빠졌음이 확실했다.

어찌 되었건 이미 돌이킬 수 없었기 때문에, 후회와 자책을 반복하며 주변 PC방을 찾아 해맸다.

PC방으로 가던 길에서 뿐만 아니라 PC방에 도착해서도 계속해서 생각이 지워지지 않았다.


'왜 이렇게 책임감이 없지?'

'친구들과 적당히 놀다가 빠르게 헤어졌어야 했는데.'

'아무리 재밌더라도 미리 교통 편을 알아봐야 하지 않았을까?'

'그나저나 어떻게 단 한 번도 잃어버리지 않았던 지갑을 떨어뜨릴 수 있지?'


하지만, 그동안의 생각조절 훈련 덕에 일단 쓸 데 없는 생각들을 한쪽으로 제쳐두고 해야 할 일부터 차근차근 쳐낼 수 있었다.

먼저, 체크카드 4장과 어머니의 신용카드 한 장이 도용될 수 있으니, 빠르게 정지 및 재발급 신청을 했다.

그리고 주민등록증 도난 신고와 재발급 신청을 마쳤다.

굉장히 피곤했던 나는 바로 잠에 들었고, 3시간 후에 일어나서 첫 차를 타고 무사히 집에 도착한 지금 글을 쓰고 있다.


아래에 명화 하나가 있다.

《한스 홀바인, 대사들, 1533》

당신은 이 그림에서 무엇이 보이는가?

이 그림은 보는 각도에 따라서 다른 형상을 볼 수 있다.

즉, 극한의 원근법을 사용하여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그림인 것이다.


그림을 정면에서 감상해보자.

귀족처럼 보이는 남자 두 명이 서있고, 그들 사이에는 2단 탁자가 있다.

문양이 있는 바닥과 화려한 커튼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바닥 가운데 쪽에 길게 늘어진 흰색 형체를 볼 수 있지만, 그림자인지, 혹은 다른 무언가인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다.

탁자 하단부에는 찬송가 책 한 권, 지구본, 피리 몇 개가 있다.

마지막으로, 탁자 상단부에는 여러 종류의 천체시계들이 있다.

여기서 특이하게 짚고 넘어갈 점은 이 시계들이 가르키는 시간이 각기 다르다는 것이다.

원주형 해시계는 4월 10일 오전 9시를 가리키고 있고,

다면체 해시계와 천구의는 각각 오전 10시 30분과 오후 2시 40분을 가리키고 있다.


이번에는 그림을 오른쪽에서 봐보자.

그림을 오른쪽 끝에서 각도를 달리하여 보면 해골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정면에서 볼 수 있었던 모든 요소들을 이 각도에서는 볼 수 없다.


버스를 타고 오는 길에 인스타그램을 보다가 우연하게 명화 《대사들》을 보았다.

처음에는 각도에 따라 다른 그림이 보인다는 것이 그저 신기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어제 오늘 겪었던 일을 다시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는 가끔 이전에 했던 실수들을 후회하고 괴로워한다.

혹은 힘들고 귀찮은 일에 불평과 불만을 늘어놓기도 한다.

자신을, 상대를, 상황을 원망하고 아파한다.

꼭 그래야만 하는가?


과거는 이미 지나간 일이다.

힘들고, 귀찮고, 실수했던 모든 순간은 이미 지나간 일이다.

이는 내가 경험했던 것들이나 행동했던 것들을 합리화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저, 부정적 감정만이 남는 프로이트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긍정적인 성장을 도모하는 사고방식을 가지자는 이야기이다.


세상에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때로는 우리 스스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마음대로 이 일은 좋은 일, 저 일은 나쁜 일이라며 정해버리곤 한다.

그렇지만, 사실은 상황이나 사건이 그 자체로 좋은건지 나쁜건지 우리로서는 알 수가 없다.

좋게 보고자 하면 좋게 보이고, 나쁘게 보고자 하면 나쁘게 보이기 마련이다.


나는 어제 오늘 나의 큰 실수로 인해 평소에 비해 굉장히 불편한 잠자리를 가졌고, 잃어버린 지갑때문에 초조해하며 몇 시간을 보냈다.

이것은 과연 나쁜 일일까?

나쁠 수도 있고, 좋을 수도 있다.

결국 생각하기 나름이기 때문이다.


비록 하루 불편했고, 앞으로 1주일 간 카드 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불편함도 남겠지만, 앞으로 똑같은 불편함을 겪지 않기 위해 미리 교통편을 확인할 것이며, 항상 30분 일찍 행동할 것이다.

만약 이 나쁜 습관을 신용카드를 사용할 10년 뒤까지 고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될까?

이 습관으로 인해 큰 돈이 들어있는 지갑을 잃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하지만, 나는 실제로 아직 많은 돈을 가지고 있지 않은 대학교 1학년 때 이 일을 겪었다.

미래에 겪게 될 막대한 손해를 생각한다면 굉장히 싼 값으로 나쁜 습관을 고친 것이다.

그래서 감사하다.



앞으로는 좋다고 생각되는 일을 나쁘게도 생각해보고,

나쁘다고 생각되는 일도 좋게 생각해보도록 하자.

그리하면 우리는 분명 삶을 하나의 놀이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또한, 틀에서 벗어난 사고방식은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우리는 자유롭다.

이 글은 요새의 나태하고 교만했던 나에 대한 반성문이자 하나의 선언문이며,

나와 당신과 우리가 추구할 위버멘쉬적 태도이기도 하다.


+ (이후 추가)

세상은 아직 따뜻한가 봅니다.

각박한 줄만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어떤 분께서 제 지갑을 주워 연락을 주셨습니다.

그냥 가져가셔도 아무도 모를 일이었을 텐데, 번거로움을 감수하고 연락까지 주신 점이 정말 감사했습니다.

감사의 뜻으로 안에 있는 현금을 가져가시라고 말씀드렸지만 끝까지 사양하시더군요.

잊고 지내려던 상황에서 느닷없이 연락을 받으니 더욱 기분이 좋았습니다.

문득 작년, 한양대 약학과 수시에서 불합격 통보를 받았을 때가 떠올랐습니다.

추가 합격을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기적처럼 합격 소식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무엇이든 긍정적으로 바라보면 예상치 못한 좋은 일이 찾아오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도 모두 행복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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