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습니다...진짠데?

회색분자의 변명

by 정진

소위 '먹물 화법' 이라는 게 있다. 어떤 사안에 대해 의견을 말 할 때 '그럴 가능성이 높다'거나 '확실치 않다' 는 식으로 신중함을 강조하고 판단을 유보하는 방식이다. 물론 강한 어조로 의견을 펴는 전문가도 많지만 패널 인터뷰, 사회문제에 대한 장편 다큐멘터리 등에서 이런 화법을 자주 접할 수 있다.


문제가 너무 명백할 경우엔 또 모르지만 이런 보류 전략은 꽤 합리적이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은 보통 매우 복잡하다. 빈부 격차는 그래서 왜 생길까? 내 피부는 왜 건조할까? 환율은 왜 이럴까? 여기에 시원한 판단을 내리기에 근거와 자료, 시간, 혹은 인지 능력이 부족할 수 있다. 즉, 뭔가를 잘 모른다고 할 때 실제로 모르니까 그럴 가능성이 꽤 있다.


또한 판단은 새로운 주장이나 증거가 나타남에 따라 변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전문가 집단의 합의가 바뀌기도 한다. 서양과 동양(동아시아)의 문화적 차이가 어디서 왔는지에 대한 설명 중 쌀과 밀의 작물 특성, 인구 부양력의 차이가 문화적 차이를 만들었다는 이론이 있다고 한다. 쌀은 밀에 비해 경작에 집단적 노동이 더욱 필요하며 인구 부양력이 높기 때문에 서양에 비해 동아시아의 문화가 집단적이며 인구도 많다는 식의 설명이다.


그런데 최근에 개인적으로 사학을 전공하신 분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는데 의외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 분에 따르면 이런 (약한) 결정론적 해석이 대세였던 때도 있으나, 지금은 다소 낡은 이론이 되었다고 한다. 함께 고려해야 할 요소가 너무 많기도 하고 각 작물의 부양력도 역사적으로 변화했기 때문이라 한다. 물론 나는 사학을 전혀 모르니까 뭐라 판단하기 어렵지만, 이론적 합의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각 분야에 이런 일이 도대체 얼마나 많을까? 이처럼 지식은 어느정도 항상 잠정적이고 각자의 능력은 제한적이다. 따라서 발언에 책임이 주어지는 경우 개인이 지식을 많이 쌓았다고 한들 쉽게 단언하기 어렵다.


남산. 눈을 잠시 쉬어가자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2020년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조 바이든에게 패배하고 정권을 넘겨줬다. 이때 많은 트럼프 지지자들은 우편 투표를 중심으로 대선이 조작되었으며 민주당에게 정권을 도둑맞았다는 음모론을 펼쳤다. 한 전문가 패널이 이 사건을 통해 극단적 트럼프 지지자들은 정치적 현실을 왜곡하고 민주적 절차를 무시한다고 평했다고 쳐보자. 그럼 그러한 평을 내놓은 사람은 2024년 미 대선에서는 민주당 해리스 후보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선거 불복론, 조작 음모론이 불거졌다는 소식에 상당한 곤혹을 겪을 수도 있다.


(트럼프-해리스 대선 음모론 관련 기사 : https://www.wired.com/story/election-denial-conspiracy-theories-x-left-blueanon/)


이런 저런 이유로 인해 확실히 그렇다, 아니다를 말 할 수 없다 보니 신중한 의견일수록 매력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또한 개인에 따라 눈앞의 일이 당장 급해서 사안을 자세히 살펴보는 여유를 부리지 못 할 수도 있고, 단순화한 구도로 세상을 이해하는 것이 감정적으로 편안하기도 하다. 우리편 착한편, 저쪽편 나쁜편 이러는게 어떤 의미에선 매력적이다. 이런 말을 하는 나도 그러지 않으리란 자신은 없다.


결국 변화하는 세상과 이해 속에서 뭔가를 확실하다고 말하기는 매우 부담스럽다. 이런 태도는 정치적, 사회적으로 지나치게 우유부단하다 할 수도 있다. 회색분자 소리 듣기도 딱 좋다. 물론 그런 측면이 있다. 다만 확실한게 별로 없는 세상 안에서 다양한 관점이 존재한다는 점을 안다는 것은 중요하다. 세대 갈등이든, 직능 갈등이든, 아니면 뜨거운 젠더 갈등이든 내가 동조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도 한 번 들어보자는 태도는 개인에게 그다지 손해가 되진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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