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와 관련한 가장 기본적인 개념으로 품사가 있다. 단어를 성격에 따라 분류한 것을 품사(part of speech)라고 하며 통사범주나 단어부류라고 부르기도 한다. 각 품사를 설명할 때 가장 흔한 방법은 특정한 의미와 품사를 연결시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동사(verb)는 움직임이나 동작을, 명사(noun)는 사물이나 사람의 이름을, 형용사(adjective)는 속성이나 성격을 나타낸다는 식으로 설명하곤 한다. 하지만 의미에 기반한 전통적 정의에는 너무 많은 반례가 있기 때문에 곧 다른 방식이 필요해진다.
의미에 기반한 정의가 통하지 않는 사례를 살펴보자. 첫째로 다음 예시처럼 소유주가 구문의 주어처럼 행동하는 경우 명사가 명백하게 동작이나 움직임을 나타낸다. 의미에 기반한 전통적 정의를 따르면 해당하는 단어는 동사가 되어야 할 것이다.
a. 다영이의 도둑질
b. Kevin's robbery (케빈의 강도행위)
예문 a에서 '도둑질'은 의미상 소유주인 '다영이의'에 의해 수식되는 명사이다. 그런데 '도둑질'은 행위나 동작이 아닌가? 만약 의미에 기반해서 품사를 정해야 한다면 a의 '도둑질'은 동사여야 한다. b도 마찬가지다. 강도행위(robbery)는 kevin이 수행한 행동이다. 그렇지만 여기서도 해당 단어는 kevin's에 의해 수식받는 명사이다. 이처럼 움직임이나 동작을 나타내면 동사라는 식의 의미 기반 품사 규정은 잘 작동하지 않는다.
또다른 예시를 살펴보자. 앞서 형용사를 의미에 기반하여 설명할 때 속성이나 성격을 나타내는 품사라 말한다고 했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명사를 보면 이 정의 또한 적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a. 수줍음
b. kindness (친절함)
'수줍음'은 명사이다. '다영이의 수줍음'과 같은 수식구조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단어는 어떤 속성이나 성격을 나타내기 때문에 앞서 규정한 의미 기반의 형용사에 부합하는 것 처럼 보인다. 'kindness' 또한 마찬가지이다. 친절함이란 어떤 사람의 성격과 속성임에 틀림없지만 실제 문장에서는 명사로 작동한다.
게다가 전혀 의미적 설명이 불가능한 품사도 많다. 예를 들어 관사 'the'나 직시적 지시사 'that'같은 단어를 한번에 포착할 수 있는 의미적 속성은 쉽게 규정할 수 없다. 이를 통해 품사를 의미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불충분하며 부정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품사는 원래 알기 어려우며 존재가 모호한 개념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원어민은 실재하지 않는 단어를 보고도 품사를 쉽게 알 수 있다. 여기에는 재미있는 실험적 증거도 있다. 'Wug (워그) 테스트'가 그것이다. 보스턴대학교의 진 버코 글리슨은 어린아이들에게 가상의 새인 'Wug'를 소개했다. 연구는 아이들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가상의 새 'Wug'가 두 마리 일 때 복수형으로, 즉 복수표지 '-s'를 붙여 말하는지 관찰했다. 실험 결과, 아이들은 문제 없이 'Wug'의 복수형을 'Wugs'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Wug'가 명사라는 것을 인지하고 그에 합당한 규칙을 성공적으로 적용한 것이다. 당시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은 아이들이 언어를 배우는 원리는 부모의 말을 모방하는 것이지 선천적인 언어 능력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만약 행동주의가 맞다면 아이들은 이 과제를 수행할 수 없어야 했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Wug'가 명사인 것을, 다시 말해 단어의 품사를 어떻게 알아봤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품사는 의미보다는 문장에서의 위치나 단어의 형태적 특성에 의해 결정된다. 이를 각각 통사적 분포(syntactic distribution)와 형태적 분포(morphological distribution)이라고 한다. (물론 Wug 테스트의 경우 형태적 분포 보다는 통사적 분포가 사용된 사례일 것이다.) 이것은 의미에 기반한 전통적 설명에 비해 품사를 훨씬 구조적으로 설명하는 방식이다. 참고로 언어학에서는 보통 단어나 형태소의 작용을 두고 '형태적이다' 라고 말한다.
통사적 분포와 형태적 분포에 따라 품사를 명확히 정리해보자. 뒤에서 주요 품사의 분포적 조건을 자세히 제시하겠지만 여기서 그런 세부사항을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다. 그보다 중요한 점은 품사가 의미가 아닌 분포, 형태적으로 규정된다는 것이다. 우선 명사를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여기에서는 우선 영어에 집중하고 대체로 Carnie (2013)를 따랐음을 밝혀둔다.
명사의 분포
형태적 분포
a. 파생 접미사: (base)ment, (dark)ness, (sincer)ity, (certain)ty, (devo)tion, ...
: 괄호 뒤에 붙은 접미사는 명사를 만드는 접미사이다.
b. 활용 접미사: cats, glasses, oxen, children,
: 복수가 되면 -s, -es, en 등으로 표시된다.
통사적 분포
a. the, these, a와 같은 한정사 뒤에 분포: [D_]
예: the cat, these trees
b. 형용사 뒤에 분포: [Adj _]
예: Red cats, Tall trees
c. 한정사 형용사와 함께 분포 [D Adj _]
예: The red cat, The tall tree
d. 문장의 주어와 직접목적어로 사용 가능
예: Kevin is running(주어,), She ate the apple(직접목적어)
*밑줄 친 공간에 해당 단어가 위치한다는 의미이다.
이를 보면 명사는 의미가 아닌 철저히 구조적으로 정의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선 '-ment', '-ness'등 명사를 만드는 명사 파생 접사류가 붙은 단어와 복수를 표기할 때 복수표지가 붙는 단어를 명사라고 규정한다. 참고로 복수가 표기되는 것은 문장에서 시제, 수, 인칭 등의 문법관계를 표기하는 작용인 '굴절(inflection)'의 일종이며 의미 차이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따라서 새로운 단어가 만들어지는 접사 파생과 구별해 제시되었다.
통사적 분포를 고려하면 명사는 [D_], [Adj _], [D Adj _] 에 분포하며 문장에서 주어나 직접목적어로 사용 가능하다. 이에 따르면 'The cats', 'Red cats', 'The red cats'에 공통적으로 분포하는 'cats'는 명사이다. 'cats are running', 'They love cats'와 같이 주어와 직접목적어로 사용 가능하다는 것도 추가적 증거가 된다. 즉, 명사는 어떤 환경과 조건에 해당 단어가 나타나는지를 기준으로 정의된다. 동사의 경우도 비슷하다.
동사의 분포
형태적 분포
a. 파생 접미사: - ate , - ize / - ise 등 동사화 접미사
예: formalize (형식화하다)
b. 활용 접미사: 과거시제상에서 -ed 혹은 -t , 3인칭 단수 현재시제에서 - s 어 미, 수동화 구문에서 -ed , 일부 상 구문에서 - ing
통사적 분포
a. 동사는 조동사와 서법조동사 뒤에 위치할 수 있다: [Aux _]
예: They can go, Shelly must dance.
b. 부정사표지to 뒤에도 온다: [to _]
예: It is easy to eat.
c. 동사는 주어 뒤에 오며 부사 뒤로올 수 있다: [Sub adv _]
예: Kevin beautifully played the piano.
여기서도 명사처럼 특정 파생 접미사가 붙어서 동사를 만드는 형태적 특징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형식적인' 이라는 의미의 형용사 어근 'formal'에 동사화 접미사 'ize'가 붙어 '형식화하다' 라는 동사가 파생되었다. 이것은 어근에 접사가 붙는 작용을 통해 특정한 품사의 단어가 만들어진다는 원리에 기반하고 있다. 이 작용을 접사 파생(affixal derivation) 이라고 하며 뒤에서 별도로 설명한다.
동사는 굴절과 관련한 작용이 훨씬 많이 일어난다. 우선 과거시제가 되면 -ed나 -t가 붙어서 'call (부르다, 전화하다)'이 'called'가 되고 'send (보내다)'는 'sent'가 된다. 물론 'gave (give의 과거형)'처럼 단어에 따라 -ed나 -t를 벗어난 형태가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주어가 화자인 1인칭, 청자인 2인칭을 벗어난 3인칭 단수이며 시제가 현재일 때 -s를 동반하여 'give'를 'gives'처럼 실현시킨다. 'The ball was passed (그 공이 패스됐다)' 의 -ed, 'He is running (그가 달리는 중이다)' 처럼 수동 구문과 진행상 구문에서 형태적 변화도 해당 단어가 동사라는 증거이다.
통사적 분포를 보면 더 명확해진다. 우선 동사는 조동사 뒤에 올 수 있어 [Aux _]의 분포를 가진다.(조동사는 흔히 보조적이라는 의미의 'Auxiliary' 라고 부르며 'Aux'로 줄여 쓰곤 한다) 따라서 'He can go (그는 갈 수 있어)', 'Teachers may run for now (선생님들은 지금 달리고 있을 수도 있어)'처럼 쓰일 수 있다. 동사는 부정사를 나타내는 to 뒤에 위치하는 것 또한 가능하다. 가령 'I want to go to school (나는 학교에 가고 싶어)'를 보면 to 뒤에 위치하는 go가 분포상 동사로 판명되는 식이다. 따라서 동사는 [to _]의 분포를 가진다. 마지막으로 동사는 주어 뒤에 오며 그 사이에 부사가 위치할 수도 있다. [Sub adv _]의 분포가 된다는 말로 'Shelly sadly cried (셸리가 슬프게 울었다)'와 같은 예문에서 이 배열을 관찰할 수 있다.
이처럼 품사는 단어 자체의 의미적 속성이 아닌 분포나 형태같은 형식적인 방식으로 더 정확히 규정된다. 물론 명사는 사람이나 사물의 이름, 동사는 동작과 움직임이라는 식의 의미적 설명에는 분명 유용성이 있다. 가령 품사의 분류를 처음 배우는 어린이에게 품사의 의미적 특성을 배제하고 구조적 정의만 제시한다면 문법을 포기할 가능성만 키울 것이다. 다만 학습 수준이 조금만 높아지거나 원래 언어에 민감한 사람인 경우 흐릿한 의미적 정의가 곧 한계를 드러낸다. 이럴 때는 해당하는 품사의 구조적 분포를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끝으로 논의에 직접 사용하지는 않았으나 다른 주요 품사인 부사와 형용사의 형태, 분포적 특성을 덧붙여 둔다.
형용사의 분포
형태적 분포
a. 파생접미사: -ing,-ive,-able등의파생어미로끝난다.
예: loving, sensitive, lovable
b. 활용접미사: -er을이용한비교급형태, est를사용한최상급형태, un을 사용한 부정
예: clear-clearer-clearlest, unclear
통사적 분포
a. 한정사와 명사 사이에 나타날 수 있다: [D _ N]
예: The red rose, His clean home
b. 조동사 be 뒤에 나타날 수 있다.
예: He can be tall, Kevin is smart
c. 부사 very에 의한 수식이 가능하다.
예: Suzy is very famous, Kevin is very smart
부사의 분포
형태적 분포
a. 파생접미사: 많은 부사는 -ly로 끝난다
예: briefly, sadly, quickly
b. 활용접미사: 부사는 일반적으로 활용접미사를 갖지 않는다.
*다만 근원이 되는 형용사가 un을 가지는 경우 함께 un을 가질 수 있다
예: unclear-unclearly
통사적 분포
: 부사는 통사적으로 비교적 자유롭게 배치되기 때문에 부사가 나타날 수 없는 곳을 살펴보는 것이 유용하다.
a. 부사는 한정사와 명사 사이에 올 수 없다: *[D _ N]
예: *The sadly cry, *His briefly presentation
b. 동사 is와 변이형 뒤에 올 수 없다.
예: * He is sadly, They are clearly
참고문헌
Berko Gleason, Jean. (1958). The Child's Learning of English Morphology. Word. 14. 10.1080/00437956.1958.11659661.
Carnie, A. (2013). Syntax: A generative introduction (3rd ed.). Wiley-Blackw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