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과 실패 경험의 재료는 완벽을 추구함이다.
완전한 완벽함
매사에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흔히 '완벽주의자'라고 이름 붙인다. 나 역시 완벽주의의 성향을 가지고 있는데, 과제 하나를 할 때에도 스스로가 완전히 만족할 수 있는 결과를 낼 때까지 반복 수정하는 버릇이 있다. 다만, 그 결과가 '스스로에게 만족스러움'을 목표했기 때문에 평가자에게는 100%의 만족감을 줄 수는 없다. 그래서 늘 내가 받은 평가에 서운함을 느꼈다. 완벽하게 해냈다고 느꼈던 일이 누군가에게는 70점짜리 과제물에 그치는 것이 불합리하다 생각했다. 평가자 기준 100%에 달하는 만족감을 주기 위해서는 더 완벽해져야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도 언제나 100점은 아니었다.
완전하게 완벽한 결과를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즉, 나와 같은 완벽주의자도 실패를 경험한다는 것이다. 무언가를 하는 과정에서 늘 '더'를 외치며 완벽함을 추구하지만 그 완벽함은 완전할 수 없다. 설령 완전히 완벽한 결과를 도출한다고 해도 이후 언제든지 흠집이 생길 수 있다. 애초 '완벽'이라는 단어는 "흠이 없는 구슬"이라는 뜻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얼마든지 파손될 수 있는 그 구슬 말이다.
건강한 완벽주의자
완벽을 추구했지만 그 결과가 좋지 않을 때, 주로 좌절감을 맛본다. 실패라는 경험 때문에 이후 같은 일을 겁내는 것이다. '나는 최선을 다 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으니 그건 내 적성에 안 맞아'라며 포기하는 것이다. 이는 짧은 맥락에서 과정과 결과를 따졌기 때문이다. 완벽을 추구해 결과물을 얻는 것을 과정으로 보고, 그에 대한 평가를 결과로 생각하면 결과론적으로 실패한 경험이 되어 버린다.
실패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완벽을 추구해야 하는 이유는 결과론이 아닌 과정론에 있다. 쉽게 말해서 실패적인 평가 역시 하나의 과정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완벽을 추구하였는가'이다. 이는 곧 경험에 쏟은 정성이 얼마나 되는가에 대한 물음과 같다. 성공과 실패를 뒤로 하고 정성을 쏟아 경험을 얻어내는 것은 단순히 우연적으로 경험을 얻는 것과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같은 철이라 해도 어찌 폐기장에서 얻은 고철 따위가 모루 위에서 수 백번의 망치질을 견뎌낸 칼을 이길 수 있겠는가. 정성 들여 얻어낸 경험과 그에 대한 평가는 삶 속에서 하나의 과정이 되어 훗날 의사결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완벽을 지향하는 완벽주의자라 하더라도 보다 건강한 완벽주의자가 되어 모든 것을 과정으로 봐야 한다.
무한도전
인간이 무결함의 존재였다면 신은 필요치 않았을 것이다. 완벽할 수 없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완벽에 집착하는 것 자체가 성장의 길이 된다. 지금은 추억으로 남은 MBC의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는 다양한 분야에 도전하지만 최고가 되지는 못 한다. 각 분야에 도전하며 그 분야의 선수가 될 수는 없었지만 그들 자신에게 다양한 측면에서의 성장을 가져다주었다. 선수처럼 준비하고 훈련해 결과를 도출한 경험이 그들에게는 과정으로서 작용되어 더 어려운 도전을 가능하게 했다. 그들이 방송인이고, 기능인이기 때문이 아니다. 완벽함에 집착했고, 그 안에서 성공과 실패의 경험을 성장의 발판으로 삼았기에 가능했다. 물론, 덤으로 그들은 시청자에게서 최고의 예능인이 되었다.
무한도전의 출연자 정형돈은 방송 초반 적응의 시기를 겪을 때 유재석에게 고민을 털어놨다고 한다. 이에 유재석은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었다.
"야 스타는 아무나 되는 줄 아냐"
그 말에 정형돈은 크게 서운함을 느꼈다고 한다. 그리고 유재석은 이후 이런 말을 한다.
"그런데 그 스타가 네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어"
정형돈은 아마 그 말 한마디에 완벽을 추구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