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na가다 Jun 03. 2021

웃음과 눈물의 역사

내 물건 중 가장 오래된 것

이사를 할 때마다 처분을 고민했다. 고교, 대학시절에 썼던 일기장들이 한 박스 가득이다. 줄 노트와 스프링 노트를 포함해 번호 매겨진 일기장들은 가끔 감정의 쓰레기들 같지만 버리기엔 너무나 소중해서 보관해 두었다. 노년이 되면 나의 어리고 젊은 날들을 들여다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였다. 언젠가 딸아이가 몰래 일기을 읽어 보았다 해서 얼굴을 붉힌 적이 있다. 큰 비밀들은 없지만 그래도 부끄러운 나의 마음들을 들킨 것 같아 민망했다. 아마도 딸아이에게는 신비롭고 재미있는 엄마의 세계가 아니었을까 싶다.   


여고 시절에는 공부하며 힘들고 불만스러웠던 일들을 일기장에 거침없이 풀었었다. 때로는 친구와의 다툼과 진로에 대한 고민을 몇 장씩 써 내렸었다. 대학 시절에는 첫사랑의 설레는 마음들까지도 은유적으로 기록했었다. 결혼 후 임신을 해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즐거운 일과 슬픈 일들도 글로 적어 내렸다. 세 아이들이 사춘기에 접어들었을 때에는 아이들에 대한 슬픔과 나의 신세를 한탄하는 글도 참 많이 썼다. 글을 쓰고 나면 후련해지는 마음의 변화 때문에 일기 쓰기를 이어나갔다. 덕분에 일기를 쓰는 습관들은 지금까지도 이어오고 있다. 여전히 슬프고 답답한 날에는 일기장을 슬쩍 꺼내게 된다.



<2013. 3.13, 화이트데이 이브>

와~! 진짜 수다쟁이들이다. 큰소리를 내어 아이들을 진정시키고 입을 다물게 했다. 이렇게 멈추게 하는 게 잘하는 것이라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행동과 시간을 잘 조절할 줄 아는 아이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재잘재잘 수다 속에 웃고 떠드는 모습이 감사하다. 학교에서 일어난 일들, 자신의 기분, 유머... 즐겁단다.

화이트데이라며 사탕바구니를 들고서 퇴근한 남편... Y의 환호가 신나게 한다. 책상에서 졸고 있던 E도 잠이 깨어 일어난다. 모두들 사탕, 젤리, 초콜릿을 입에 물고서 수다를 떨고, 사진을 찍고, 나눠준다. 좋은 것을 함께 나누는 우리 가족이 참 좋다.



<2019. 3.21, am 1:30, 밤 11시 40분, 더 행복해지는 시간>

밤 11시, 기도시간을 시작하면 11시 30분 출발 알람이 울린다. 5분간 운전을 해서 독서실 앞에 도착하면 11시 40분, 우리가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1월부터 지금까지 아이는 약속을 지켜왔다. 아프거나 아주 힘든 며칠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언제부터인가 J가 다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집에 천천히 돌아오는 10분 동안 아이의 하루 그리고 그날의 공부 내용을 들려준다. 가끔은 나의 진심 어린 짧은 충고를 나눌 수 있는 시간, 아... 행복하다. 난 이 시간을 '더 행복한 시간'이라고 부르리라. 이런 시간, 이러한 대화가 이뤄지기까지 수많은 눈물과 기도 그리고 기다림이 있었다....



지금은 일기장을 보관하는 이유들이 조금은 달라졌다. 가끔씩 글을 쓸 때 펼쳐보게 되는 일기장 속 나의 감정과 추억들은 새로운 글감이 되어 내게로 온다. 아이들의 예뻤던 말들, 남편의 감동된 행동들 그리고 극한 어려움에 있을 때 나의 마음들도 들여다볼 수 있다. 나중에 자서전을 써낼 수 있는 때가 온다면 나는 다시 일기장을 펼칠 것이다. 나의 역사가 되어준 글들을 말이다. 안네의 일기장이 보관되어 멋진 책으로 탄생되었듯이 언젠가는 나의 역사를 담은 책이 출판되기를 기대하며 좀 더 내 곁에 두려 한다. 그리고 지속해서 나를 기록하련다. 혹시 모른다. 유명 작가가 되어 나의 자전적인 역사기록이 필요한 날이 올지도...



디자인을 고르게 된 최근 일기장들...
매거진의 이전글 나를 사랑하고 지키기 위해 글을 씁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