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저편은 이른 새벽시간인데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어제 아들과 나눈 대화가 마음에 걸려 제대로 잠들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들의 마음 상태를 물었다. 군생활 중인 아들과 진로에 대한 고민을 전화로 나누는 중에 말로 자존감을 떨어뜨린 것은 아닐까 걱정된단다. 정작 아들은 현실적인 조언을 듣고서 가지치기가 된 것 같은데 말이다. 남편을 달래고, 현실을 직시할 수 있게 도움 주어서 잘했다고 격려했다. 그제야 마음 편해진 남편은 출근을 준비한다며 전화를 끊었다.
전라도 시골 장남으로 태어난 남편은 빈말도 유머도 없다. 대부분의 가정들이 그랬듯 가부장적이고 엄한 아버지 아래서 자라났기에 표현이 서툴다. 세월이 흐르면서 많이 변했지만 여전히 따뜻한 마음을 충분히 표현 못하는 남자다. 딸아이와는 친구같이 잘 지내면서도, 둘째 아이와는 사춘기 이후로 거리감이 여전히 남아있다. 엄마의 중간 역할이 때로 필요하다. 시간이 흐르고 아들 마음이 더 커진다면 아빠의 애달픈 마음을 이해하는 날이 올 거라 믿는다.
요즘은 길을 걷다가도 바보 아빠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아내 앞에서보다 더 애교스러운 목소리로 딸아이를 달래는 딸 바보 아빠, 차근차근 설명해 주고 구연동화로 책을 읽어주는 아빠, 아기 띠를 앞으로 매기도 하고 요리해 주는 아빠들의 모습을 보면 신기하다. 모성에 비해 부성이 작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아빠들의 묵직한 사랑도 좋지만 따뜻하게 표현되는 햇살 같은 아빠들의 모습이 아이들에게 많이 비쳤으면 좋겠다.
아버지의 생각과 감정을 공유하고, 아버지의 행동을 배우면서 지식과 지혜를 얻은 아이들은 안정적으로 잘 성장할 수 있다고 한다. 식량만 공급했던 옛날의 아버지가 아니라, 부성을 잘 전달하고 가족들과 소통이 풍성한 가정이 증가하기를 소망해 본다. 최근 뮤지컬 배우이면서 오뚜기 3세의 유튜브 채널에서 행복한 부녀 모습을 보고 함께 즐거웠다. 오뚜기 회사 대표인 함 회장은 유머와 진지함 가득한 어투로 딸과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는 딸에게 축하 선물뿐 아니라 좋은 책들을 가끔 선물했다. 봉사활동에 참여하도록 딸에게 권하고, 말과 편지로 칭찬과 사랑을 전달했다. 많은 팔로워들이 함 회장 딸이 되고 싶어 한다는 우스갯소리를 전달하기도 했다. 부녀의 케미 좋은 행복한 모습을 보며 우리 가정에도 옮겨본다. 아이들에게 바라기 보다, 함 회장 부부의 사랑이 묻어나는 어투와 표현들을 배우고 그들의 태도를 마음에 남긴다.
세 자녀를 키워오는 동안 남편의 자식사랑에 감격한 적이 여러 차례다. 운동신경이 부족해도 아이들과 어울려 보려고 야구용 글러브를 구입하고, 더운 날에도 축구공을 굴리며 잔디구장을 달려 다녔다. 반항하는 사춘기 아들의 버릇을 잡으려 매를 들었다가 나중에는 상처받은 아들에게 무릎을 꿇고 사과했다. 지금 생각해도 가슴 아프다. 아이들 자소서를 돕기 위해 온갖 자료를 조사하고, 대학입시 위해 성적과 대학들을 분석했다. 회사일로 빈번히 이주했던 환경이 아이들을 힘들게 한 것은 아닌지 탄식하던 순간들도 생각난다. 해외에 머물면서도 흩어져 대학생활을 하는 아이들에게 자주 연락을 주고받는 따뜻한 남편의 모습을 떠오른다. 어쩌면 그이는 나보다 아이들을 더 사랑하는지도 모른다. 표현은 엄마들처럼 세세히 못할지라도, 자식 향한 아빠들 마음은 동일하거나 때로는 더 깊은 경우도 있다.
동물의 세계에도 최고 아빠들이 있다. 수컷 배에 알을 낳아 5주간 임신기간을 갖는 해마 경우는 특별하다. 가마우지는 암컷이 알을 낳으면 수컷이 보름 동안 둥지에서 알을 품는다. 식음 전폐하면서 도둑들로부터 알을 지켜내는 것이다. 그중 최고는 남극의 황제펭귄이다. 영하 40도에 달하는 추위 속에서도 알이 얼지 않도록 발등에 올리고 65일간 먹지도 쉬지도 못한 채 참고 견딘다. 눈물겨운 부성을 엿볼 수 있다. 자신의 새끼를 위해 온갖 관심과 애정을 쏟는 동물들을 보면서도 감동하게 된다.
우리 중에도 해마, 가마우지 그리고 황제펭귄 같은 사랑 많은 아빠들이 존재한다. 자녀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아빠들 모습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는 요즘이 참 좋다. 가끔은 부성이 눈물겹도록 아름답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