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kg 쌀가마니를 차에 싣기 위해 아들을 불렀는데 응답이 없다. 친척에게 나눠주기 위한 쌀가마니를 옮기느라 남편 말고 아들을 부리고 싶었다. 노트북 화면에 집중하고 있는 아들은 잠시 눈을 맞출 뿐 도통 움직이질 않는다.
남편은 괜찮다며 웃으면서 쌀가마를 들어 올리지만 괜히 속상하다. 당연히 달려와서 도움 줄 거라 생각했는데. 트렁크에 짐을 옮긴 후, 장대비를 뚫고 떠나가는 남편에게 손을 흔들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아들 방을 한 번 쳐다보았다. 미동 없이 여전히 바쁜 아이는 엄마가 속상했는지도 모르는 눈치다. 묵묵히 거절당하는 일이 속상한 일이구나.
잠시 일렁이던 마음을 추스르고 나니 몇 주 전 시어머니와 일이 기억났다. 정기검진 때문에 몸이 불편하신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다녀왔다.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아주 작은 목소리로 어머니는 손톱 좀 깎아 달라하셨다. 눈을 감고 있던 나는, 저녁식사 후 손톱을 깎아드리리라 생각하고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었다. 한 번 말씀하셨던 어머니는 더 이상 조르지 않으셨다. 그런데 저녁식사 후에도 무엇에 바빴는지 그다음 날까지도 어머니의 손톱을 깎아드리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숙제를 하지 못한 것 마냥 며칠 동안 마음 한편이 내내 불편했다.
아들에게 거절당한 입장에서 섭섭함을 곱씹다 보니, 거절했던 내 행동이 선명하게 되살아난다. 어머니도 마음은 복잡하셨지만 그냥 입을 다무셨나 보다. 아들도 이 순간을 기억하며 미안해하는 순간이 올 수 도 있겠지. 아니면 말고. 어머니처럼 나도 입을 다물고 다시 철든 어른으로 행동하련다.
요양사 아주머니께서 손톱을 깎아주셨을까? 혹시 어머니는 주간보호센터 선생님께 부탁하셨을까? 오늘따라 거절당한 이의 마음이 생각나면서 한쪽 마음이 저리다.
거절 잘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할 수 없다고 정확하게 얘기하는 편이다. 몇 년 전 사업하는 시각장애 아들을 위해 어렵게 입을 열어 돈을 빌러 오셨던 이웃 할머니가 생각났다. 두 차례는 몇 백만 원을 빌려드리고 되받았지만, 그다음은 어렵게 거절했다. 옆에서 보기에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돈 때문에 그분을 향한 내 마음이 어렵기도 했고, 거절하기 잘했다고 생각했다. 부산에 내려온 지 이 년 후, 이웃 할머님 부고를 전해 들었다. 장례식장에 찾아가지는 못했다. 서글픔이 몰려왔었다. 70대 후반까지 부동산 전화홍보로 소일거리로 하셨던 분이다. 보험 소장 경력을 살리셨던 이웃할머니에 대해 내 마음을 굳게 닫았기 때문이었다. '마음만은 열어두었으면 좋았을 것을...' 후회되었다.
처지는 바뀌기 마련이다.
'부탁을 좋아하지 않는 나도, 언젠가는 부탁해야 할 날이 오겠지.'
부탁과 거절에도 기술이 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부탁을 할 때에는 상대가 들어줄 수 있는 부탁인지 먼저 생각해 보고 시간과 상황의 적절성도 따져봐야 한다. 부탁할 일에 대한 내용을 잘 전달하고 도움의 필요성을 간단하고 적절하게 설명해야 한다.
거절할 때는 믿고 부탁한 것에 감사를 표현하면서도 충분히 들어줘야 한다. 거절할 때는 사과의 말과 거절의 이유를 미안함과 함께 말해준다.
나는 아들에게 상황을 묻거나 부탁의 필요성을 표현하지 못했다. 그저 아들이 흔쾌히 내 부탁을 들어줄 것으로 혼자서 착각했었다. 먼저 상황을 묻고 부탁했으면 내 마음이 상할 일은 없었을 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