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서 여자라서 울고 웃고 1
“다음 예약일은 유월 이십 일입니다.”
잇몸 치료 후 남은 마취로 입술은 감각이 없다. 연고 바른 우측 어금니는 거즈를 물어 살짝 비틀어졌다. 엄지와 검지로 윗입술을 살짝 들어 올려 튀어나온 거즈를 덮었다.
부산에서는 어렵다던 앞니 신경 치료. 서울 어느 치과에서 기적처럼 살려낸 대문니 덕분에 나는 해마다 한두 번 서울을 찾는다. 치료를 핑계 삼아 아들 자취방에서 며칠씩 머물며 짧은 서울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혼자 이름 지어 본 ‘서울 치료 여행’.
진료를 마친 뒤 종각역에서 마을버스를 탔는데 경복궁 역 정류장은 궁에서 꽤나 멀어진다. 주변 간판에 반복되어 보이는 이름이 ‘서촌’.
‘북촌 말고, 그 서촌이로군. 그래, 오늘은 궁 대신 한옥 마을이다.'
서촌 골목은 기대 이상으로 즐길 거리와 볼거리 가득이다. 스콘이 맛있다는 작은 카페, 땀이 날 때쯤 들르기 좋았던 유럽풍 젤라토 숍, 박노수 화백의 고택 미술관, 그리고 예상치 못한 인왕산의 위용까지. 돌아오는 길엔 통인시장과 상촌재도 덤으로 따라왔다.
옥인동을 한참 걷다 보니 마을 곳곳에 숨겨진 역사를 찾아볼 수 있었다. 세종마을, 진경산수화길, 안평대군, 윤동주, 이중섭… 학문으로만 배웠던 이름을 골목에서 발견하며 따라 걷는 길은 단순한 관광이 아닌 탐방이 되었다.
우연히 걷다 들어간 상촌재에는 일본인 부부가 관광통역사의 설명을 들으며 한옥 구조를 살피고 있었다. 그곳은 한옥의 온돌 시스템을 투명 창으로 상세히 보여주는 곳이었다. 조금 전에 보았던 박노수 가옥의 높은 굴뚝 네 개를 떠올렸다. 그중 절반이 온돌용이었던 설명을 기억했다. 치료 때문에 불편했던 입 안을 잊은 지 오래. 정글을 탐험하듯 두 눈과 발을 쉴 새 없이 움직였다.
나는, 무엇이든 여행으로 만든다. 치료엔 보상 여행, 이사엔 적응 여행, 마음의 상처에는 위로 여행, 출장은 틈새 여행. 힘든 일이 생길 때면 더 멋진 코스를 만들어낸다. 이왕 겪는 일이라면 잘 견디며 기꺼이 즐기자고 다짐한다.
시부모님 한꺼번에 입원해 보호자로 병원에 머무를 때도 나는 그렇게 했다. 짬 날 때면 병원 근처 시장을 걷고, 장미축제가 열린 동산을 거닐고, ‘펭귄마을’이라 불리는 작은 동네를 사진 찍으며 돌아다녔다. 탄식 대신 호기심을 채우려 했다. 그 소소한 기쁨이 병원 생활을 하루하루 버티게 했다.
남편의 지방 발령으로 낯선 곳에 이주할 때면 당황하지 않고 여행을 시작했다. 그 지역 박물관과 미술관, 작은 카페, 이름난 맛집을 누렸다. 천천히 그 지역을 사랑하게 될 때까지. 떠날 때면 아쉬워할 때까지.
출장길에도 북카페나 전통시장, 지역 음식을 찾아 특별한 선물로 여겼다. 그러다 보면 뜻밖의 덤이 따라온다. 맛있는 커피 한 잔, 깊은 문장 하나, 인상적인 사진 한 장. 그리고 때로는 좋은 사람과의 대화까지도 축복의 노래가 된다.
이틀간 치과에 오가는 동안 1호선과 6호선 역사 투명창에서 여러 편 시를 사진 찍었다. 그중 김민자 씨의 「가족」이라는 시가 마음에 길게 남는 날이었다.
"세상 편한 의자다
부대끼고 삐거덕거리면서도
앉혀주고 받아주고
서고 등 기댈 자리 내주는 의자
...
산다는 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의자가 되어주는 일이다"
아들에게 저녁을 해주려 서둘러 자취방을 향하면서 두 손 가득 장을 보고 문자를 보냈다.
“아들, 언제 도착해? 난 집 가는 중이야.”
“동아리 운동 끝나고 10시 넘어 들어가요.”
늦게 돌아와 식탁에 앉은 아들은 요즘 사는 이야기를 한참 동안 풀어놓는다. 나는 작정한 듯 가만히 그리고 끝까지 경청했다. 자정이 넘도록 이어지는 청년 아이의 이런저런 이야기. 그것도 사랑스럽고 진지한 표정. 몸을 이리저리 비틀면서도 내 눈과 미소는 여전히 반짝였다.
'엄마는 지금 네 얘기가 너무 재미있거든.'
지하철에서 만난 시구 덕분에 의자에 기대앉은 허리와 골반의 통증도 잠시 잊었다. '세상 편한 의자'가 되어주고 싶은 엄마 마음은 지하철 역사에서 선물로 얻은 것이었다.
중년이 되면서 갱년기와 작은 질병들로 움츠러지는 때가 있었다. 그 터널을 지나면서는 그냥 긴 여행으로 여기기로 했다. 저항할 수 없는 세월의 혹들을 친구 삼아 새로운 여행을 꾸렸다. 비정상적인 체력, 빈혈, 퇴행성 관절염, 이명, 불안과 염려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여기게 되었다. 삶의 박자를 늦추고 욕심을 비우게 되자, 일상은 어느새 좀 더 여유로워졌다. 고행이 아닌 여행이 되어갔다.
매일 아침 짧은 산책을 통해 니체가 했던 것처럼 사유의 시간을 만들었다. 시골 발령지는 소로우의 '월든'처럼 여기며 자연과 벗하기 좋은 여행지로 생각하게 되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 비로소 진정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을 때, 그때가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터키 시인 나짐 히크메트가 감옥에서 쓴 시 한 구절을 떠올린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한 순간이 진정한 여행의 출발점일지도 모른다. 그때야말로 새로운 꿈을 꿈꾸고, 도전하고,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시간일 수도.
나는 무엇이든 여행으로 만들어 낸다. 그래서 나의 하루하루는 새롭고, 가벼우며, 다정하다.
두 달 후 아프리카로 향하는 이사조차도 나는 즐겁고 긴 여행이라 여긴다.
아마 나는, 일생을 여행자로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