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엄마 꿈은 성악가였어

엄마라서 여자라서 울고 웃고 2

by Jina가다

어릴 적 엄마 꿈은 무엇이었을까 궁금하지?

오늘은 레이스 두른 까만 드레스를 입고 광장에서 버스킹을 했어. 공연 전 집 앞 미용실에 들러 머리에도 정성을 들였지. 5월 중순인데 비바람이 분다는 기상 예보가 있어 걱정이 되었거든. 공연 전에 마침 비가 멎어 다행이지 뭐야. 내 또래로 보이던 미용사는 그런 재능 있어 좋겠다면서 자연스러우면서도 우아한 스타일을 완성해 줬단다.


울산 큐빅 광장 오후 4시 공연이었는데, 두 시간 전부터 리허설을 시작했어. 생각보다 긴장도 안 하고 마이크도 자연스럽게 다룰 수 있어 다행이었단다. 텀블러에 담아 간 뜨거운 물을 마시고 목에 스카프를 둘러서, 남은 시간 동안 쉬면서 무대를 기다릴 수 있었지.


드디어 조명이 켜지고 관객석에 사람들이 모이면서 공연은 시작되었어. 사르르 떨려오는 긴장감을 떨치려 눈을 감고 악보를 떠올렸어. 합창단 노래 두 곡이 금세 끝나고 내 순서가 되어버리더구나. 긴 드레스를 두 손으로 살짝 들어 올려 무대로 오르는데, 예식장에 입장하던 그 사각거림이 문득 떠올랐단다. 배를 꾹 눌러주는 허리 니퍼 덕분에 두근거림이 덜했지 뭐야.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화내지 마. 슬픈 날들을 참고 견디면 즐거운 날들 오리니”

바람 부는 날에도 관중석을 지켜준 이들과 스쳐 지나며 발길을 멈춘 이들 위해, 배꼽 아래 소리를 끌어내 최선을 다해 불렀단다. 혹 지금 슬프거나 화난 이들에게 작은 위로라도 되었으면 싶어서.


"힘든 날들을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 꼭 올 거야"

이 부분은 제일 정성 들인 부분이야.

박수로 환호하는 이들에게 고개 숙여 감사를 전하고 무대를 즐겁게 내려왔어. 무거운 짐을 벗은 듯 속이 시원하고 그제야 신이 나더라. 오랫동안 꾸었던 꿈을 결국 성취해 낸 감격이었어.


성악을 가르쳐준 선생님이 버스킹을 처음 권했을 때 좀 더 흔쾌히 받아들일 걸 그랬나 봐.

내가 말했었나? 엄마 꿈이 성악가였다고. 사실, 몇 차례 노래 배울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용기 있게 선택하지 못하고 포기했어. 어른이 되어서야 그런 욕심과 여유를 누리지만 말이야.



중학교 1학년 때, 키 작은 중년의 음악선생님은 수업 시간에 나를 자주 세워 노래를 시켰어. 음악실을 가득 울리던 그분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아직도 기억나. 진분홍 립스틱을 바른 두툼한 입술까지도. 매일 음악 수업을 받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지.

아마 5월이었을 거야. 교내 합창단 창단 소식을 들었어. 물론 오디션을 통해 단원을 선발한다는 공고도 친구들과 눈여겨봤어. 나는 당연히 합창단원이 될 거라고 친구들과 신나 있었지. 그런데 한 가지가 더 있었어. 단원들은 합창복을 맞춰야 한다는 거야. 당시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았어. 외할머니에게 합창복 이야기를 솔직하게 말할까 몇 번이나 고민했어.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단다. 오디션에 가지도 않았지. 나중 선생님이 합창단에 들어오라 몇 번이나 권했지만 마땅한 핑계를 찾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했어. 우리 학교 대회 수상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는 많이 서글프더라. 속상해서 혼자 울었던 것 같아.

고등학교 시절에는 단짝 친구가 성악 입시를 준비했어. 우리는 석식 후 음악실에서 함께 노래를 부르곤 했지. 피아노 잘 치던 걔는 내 노래에 반주며 화음도 넣어주었단다. 결국 그 친구는 음대에 진학했지. 지금쯤 그 친구는 멋진 재능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을지 궁금해지네.


네가 다니던 고등학교 어머니 합창단 모집 공문에 엄마가 단숨에 이름을 적은 거 기억나니? 나중 보니 분당에서 노래 꽤나 하는 엄마들이 모였더구나. 폰 앨범을 열어 보니 핫핑크 드레스를 입은 열다섯 명 엄마들의 공연 모습이 봄날처럼 아름답다. 네 덕분에 좋은 사람들과 어울려 수준 높은 합창을 공연할 수 있었어. 당연히 그때도 공연 전에 집 앞 미용실에서 머리를 말고 속눈썹을 붙였더란다.

맞다. ‘오즈의 마법사’ 공연! 수원 여성 회관에서 영어뮤지컬 지도자 과정을 수료하면서 두 차례 공연했던 일을 잊을 뻔했어. 오프닝 무대 때, 민트색 롱 원피스에 화려한 검정 벨트를 매고 커다란 귀걸이도 했던 기억이 선명해. 그때 부른 노래가 <캣츠>의 “Memory”였어. 시간이 흐르면서 가사를 잊어버리긴 했지만 캣츠 뮤지컬 공연을 본 이후로는 그 노래가 더 기억나더라.

어릴 적 간절함 때문이었을까? 노래를 배우거나 공연할 기회가 주어지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먼저 가. 꿈이라는 게 그런가 봐. 이루지 못하면 아쉬워서 계속 기웃거리게 되는 그런 아련한 꿈같은 미련.



너도 어릴 적 꿈이 참 많았는데 말이야. 드라마 속 장금이처럼 한의사가 되겠다고 진맥 짚는 흉내를 내기도 했다가, 조수미 소프라노처럼 프리마돈나가 되겠다고 노래를 따라 하곤 했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서는 반기문 총재처럼 UN에서 일하겠고 선언해서 아빠와 한바탕 웃었어. 지금 너는 실제로 국제기구에서 여성과 어린이 돕는 길을 걷고 있구나. 너를 보면 부럽고도 대견해. 젊은 네가 꿈을 향해 외길로 걷는 걸음이 너무나 견고해서 말이지.


엄마도 계속 꿈을 꾸고 만들어갈 거야. 기회 닿는 만큼 계속 배우려 해. 가능하다면 무대 기회도 거절하지 않고 다시 설 생각이야. 꿈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이 이렇게 재미있을 줄 몰랐네. 항상 엄마를 응원하는 네가 고마워.

언젠 네가 엄마가 되는 날, 여전히 꿈을 꾸고 그 꿈을 향해 걸음을 내디디길 바라. 꿈을 잃지 않는 삶이란, 결국 자신을 사랑하는 삶이니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