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서, 여자라서 울고 웃고 3
"어, 또 꽃을 들고 왔네?”
“응, 당신이 안 사주니까 내가 들에서 꺾어오는 거야.”
일부러 볼멘소리를 했더니 얄밉게 웃기만 하는 그이.
4월에는 하얀 불두화, 5월이면 보라색 수레국화와 새빨간 양귀비, 6월이면 분홍 달맞이랑 노란 루드베키아, 여름엔 범의꼬리, 가을이면 코스모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들에서 한 두 송이 꽃을 꺾어 집에 들였다. 음료를 비운 예쁜 병을 씻어두었다가 꽃 한 송이씩 꽂아 식탁에 늘어놓곤 했다. 못 말리겠다는 표정의 딸과 남편의 웃음.
"응, 말리지 마!"
내가 이런 사람이었던가. 길가에 핀 작은 꽃 하나에 마음을 뺏기고, 그것을 집으로 데려가고 싶어 하는 간절한 탐심. 아름다움에 끌리고, 그 아름다움을 곁에 두고 싶어 하는 이기적인 마음. 욕심쟁이!
작고 사소한 아름다움을 눈으로 좇으면서 발견해 내는 자신이 신기했다. 조용한 시골 마을로 이사하면서부터 시작된 일이다. 2년간 작은 주말농장을 일구면서 채소보다는 오히려 꽃에 심취한 기간이었다. 텃밭의 샛노란 호박꽃은 화려하고, 하얗고 조그만 고추꽃은 고귀하고, 안개처럼 몽글거리는 고수 꽃길은 경이롭기도 했다.
텃밭 주변 모든 들꽃이 자연의 순리대로 그냥 피어난 줄 알았다. 나중 알고 보니 그 씨앗들을 뿌린 이가 따로 있었다. 무덥던 어느 오후, 오랜만에 텃밭에서 일을 마친 이웃 할머니를 차에 태워드렸다. 그날도 꽃 한 송이 챙겨 집에 가던 길이었다.
“수레국화인데 예쁘죠? 식탁에 한 송이씩 올려놓으면 기분이 좋아져요.”
“즐겁다니 다행이네요. 우리 딸이 꽃씨를 보내줘서 뿌리고 가꾼 거예요.”
“정말요? 전혀 몰랐네요.”
강원도 말씨의 그분은 내가 꽃을 즐긴다는 사실에 오히려 기뻐했다. 아무도 꽃이 피고 지는 것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정성 들여 꽃을 가꾸면서 잔소리를 한두 마디씩 하게 되니 싫어하는 이들이 있다며.
할머니를 아파트에 내려 드리고도 어르신이 반복해 사용한 ‘가꾼다'라는 말이 계속 뇌리에 남았다. 자녀들도 그냥 자란 것 같지만 사랑과 돌봄으로 씨 뿌리고 마음을 쏟았기에 꽃을 피우고 있는 거겠지. 만날 아기 같던 우리 집 삼 남매는 어느새 쑥쑥 자라서 엄마보다 훨씬 키가 큰 어른이 되었다. 내가 요리하던 대로 김치를 볶다가 찌개를 끓이고, 올리브 오일에 마늘을 끓이다가 파스타를 볶는 아들. 빨래 개는 방식도 내가 하던 그대로 작은 네모를 만들어 서랍에 넣는 딸. 사람을 대하는 법, 어투, 삶의 방식까지도 닮아가는 자녀들. 뿌린 대로 자라난 아들딸의 모습에 흐뭇하다가도 때로는 단점까지 빼다 닮았을까 두렵기도 하다.
비가 많이 내리던 5월 어느 날, 우리 집 창밖으로 보이는 물 가득 담은 논과 밭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그렇게 좋은 토양으로 준비되어 꽃과 열매를 풍성하게 맺으면 좋겠다고. 잘 가꾼 삶으로 행복을 누리면 좋겠다고.
때로 가족들을 향한 내 사랑이 차갑게 식어버릴 때도 있었다. 언젠가 사춘기 심했던 아이를 위해 매일 기도했던 기억이 난다.
“하나님, 제발 이 아이를 사랑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얼굴을 스치거나 숨소리만 들어도 미운 마음이 일어났던 시간들. 처음에는 아이에게 문제가 있다면서 거칠어 보이는 자녀를 원망했다. 결국은 사랑이 바닥난 나 자신에게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모성은 저절로 솟는 감정의 갈래가 아니었다. 사랑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기르고 훈련하는 것이었다.
겨울 추위를 견디고, 봄날 싹을 틔워 올리고, 여름날 폭염을 지나 가을에야 열매 맺는 식물처럼, 엄마 마음도 계절을 거치는 것이었다. 무언가를 심어야 열매를 거두는 해마다의 반복이었다.
부모의 사랑은 한 철 피어났다 지는 한해살이 꽃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사계절 내내 꿋꿋이 살아남아 봄날 또다시 피어나는 다년생 꽃처럼 견디고 기다려야 한다는 이치도 깨달았다.
해를 더할수록 내 안에는 엄마와 여자로서 색을 더하고 향을 입힌다. 이것도 멈춤 없는 연습이다. 가족 안에서 내 사랑은 매 계절마다 훈련을 심화하는 중이다.
꽃 분홍에 꽃문양이 들어간 옷과 가방, 문구를 좋아하게 된 나를 보며 딸이 장난스레 말한다.
“우리 공주님이 어련하시겠어요?”
꽃이 좋아지는 나이라 꽃 중년인지 꽃처럼 예뻐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꽃을 가꾸듯 나를 돌보고 가족을 살핀다. 꽃처럼 아름다운 말과 행동으로 씨앗을 뿌리고 거두는 중년이고 싶어라. 나는 엄마와 여자의 이름으로 오늘도 꽃처럼 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