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서 여자라서 울고 웃고 4
“엄마!”
새까만 눈망울에서 눈물 한가득 떨어뜨리며 집안으로 뛰어든 일곱 살 아들.
“아고, 울 아들 왜 울어? 무슨 일이야?”
토요일 오후, 소파에 기대 잠시 눈을 붙였던 나는 아이의 울음소리에 스프링처럼 일어섰다.
아파트 놀이터에서 함께 놀던 아이가 울면서 집에 갔는데, 이내 그 아이 할머니와 엄마가 놀이터로 출동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아들을 향해 소리를 지르고 눈을 부라렸단다. 거센 파도처럼 밀려오는 속상함을 우선 힘 다해 눌러 내렸다. 가슴과 머리는 차갑게, 목소리는 더 차분하게 만들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네가 그 아이에게 잘못한 게 있어?”
“욕 안 했어요. 제가 욕을 했다고 자꾸 그 할머니가 화를 냈어요. 아니라고 해도 안 믿어요.”
아들에게 좀 더 자세한 상황을 들은 뒤, 아이 손을 잡고 놀이터로 향했다. 평소라면 아이들 사이 작은 다툼쯤은 조용히 넘기곤 했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억울함에 몸을 떨던 아이를 위해 소방관처럼 뛰쳐나가야 했다. 아이 옆에 단단히 서 있어주고 싶었다.
화려한 패턴 홈드레스를 입고, 구르프 말아 정수리가 봉긋한 할머니는 손자를 앞세운 채 당당히 서 있었다. 붉은 립스틱은 백설공주의 것처럼 선명했다.
“안녕하세요. 제 아이가 너무 속상해서 울고 왔네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이들 상황을 정확하게 들어보면 좋겠어요.”
“아니, 우리 외손주가 다른 지역에서 놀러 왔는데 욕을 들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조금 혼냈어요."
나는 할머니 손을 붙잡고 있는 그 집 아이에게 다가갔다.
“안녕? 할머니 집에 놀러 왔구나. 이 친구가 욕한 거 확실해? 우리 아이는 욕한 게 아니라고 하던데. 뭐라 했는지 말해줄 수 있어?”
아이의 시선을 떨어뜨리고 발끝으로 모래를 긁었다. 주춤거리는 모습에 다른 아이들이 변호를 시작했다.
“인성이가 욕 안 했어요. 우리가 모래놀이하는데, 쟤가 우리 삽을 맘대로 가져갔어요. 그래서 은상이가 ‘야~!’ 하고 크게 말한 거예요.”
다른 아이들 증언이 이어지자 팔짱에 도끼눈을 뜨고 있던 모녀는 슬그머니 접은 팔을 풀었다. 상황을 아이들에게 묻지도 않고, 손자 말만 믿고 화를 내며 달려온 그네들. 젊은 엄마는 아이를 다그쳤다.
“그니까 상황을 제대로 말했어야지!”
그녀는 아이의 팔을 세차게 잡아끌며 앞장서 사라졌다. 외할머니도 뒤따랐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사라진 세 사람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지켜보았다.
아들은 억울함이 풀렸는지, 꼭 붙들고 있던 내 손을 스르륵 놓았다. 두려움은 사라지고 오히려 통쾌하다는 눈빛. 엄마가 옆에 있어 든든하다는 표정.
“억울한 일이 생겼을 땐 서글퍼도 울지 말고, 먼저 차분하게 상황을 설명해. 아무리 어른이라도 똑똑하게 말해주면 귀를 기울일 거야. 알겠지? 이제 가서 놀아. 엄마는 집에 가도 괜찮겠어?”
아들은 몇 번이나 고개를 힘주어 끄덕였다. 흙놀이 중이던 친구들에게 세차게 달려갔다. 친구를 부르는 목소리와 뒷모습에도 힘이 실려 있다.
이십 년이 지났어도 그려지는 아이의 눈빛과 현장 그리고 내 목소리.
뒤돌아 집으로 가는 길, 어깨는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올랐다. 속으로 혼잣말을 외치며 씩 웃었다.
‘무슨 일이 생기면 달려와, 엄마가 지켜줄게!’
나는 원래 싸움이라는 모든 것에 서툴렀다. 두 살 어린 동생의 거친 말에도 져주고 주춤하던 사람. 불편한 상황에도 먼저 참는 편이고, 틀어진 감정에는 먼저 사과를 건네는 사람이다. 그런데 아이 일에는 달랐다. 억울함에 울고 있는 아이를 보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엄마'라는 견장은 두 팔 걷어붙이고 황소처럼 돌진하게 만들었다.
초등학교 4학년이던 딸이 여학생들 괴롭힌 남자아이를 울린 일도 있었다. 딸의 이야기를 자세히 듣고 보니, 다툼 속에서 딸은 끝까지 울지 않았을 뿐이었다. 상대는 이웃이자 자주 교류하던 언니의 아들. 만나자고 연락한 지인과 전후사정을 나누며 차분히 들어주니 아들의 소문 때문에 속상했단다. 등을 토닥이며 마음을 위로했다. 그녀는 아이들 앞에서 소리 먼저 지른 것이 미안하다며 사과했다.
아이들의 실수와 상처를 통해 성장하는 우리 둘. 자녀를 끔찍하게 사랑하는 엄마들이었다. 이 날로 나는 아이를 지키는 한 가지 전술을 더 익혔다. 정보를 정확히 수집한 자, 마음 넓은 자가 전쟁에서 이긴다는 사실을. 급하게 분을 발하면 큰 실수를 한다는 것도.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더니 세 아이를 키운 내게는 끊임없이 무슨 일들이 많았던 것 같다.
예상치 못한 별의별 일을 다 겪었다. 함께 운동하다 다친 아이의 치료비를 대신 지불한 일도 있고, 아들이 울린 여자 아이 집에 찾아가 사과를 시킨 적도 있다. 축구하다가 쇄골뼈가 부러진 아들이 스스로 119에 신고해 응급실에 입원한 일, 학교를 그만 다니겠다고 부모인 우리에게 선포한 일까지도.
자녀들을 키우면서 돌본다는 것은 참으로 예기치 못한 일의 연속이다. 자녀들과 함께 울고 웃으면서 나도 어른이 되고 있었다.
부모이기에 때로는 잘못 없이도 고개를 숙여야 하는 순간도 있다. 억울하고 부끄러워도 그냥 자식을 위해 감당해 내는 것. 그 모든 순간을 지나치면서 아이도, 부모도 함께 성숙해 가는 게지.
“엄마는, 잘못 없이 사과해야 하는 일이 제일 싫어. 그런 일은 없었으면 좋겠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아이들에게 몇 차례 부탁했던 일이 기억난다. 그 이후로도 사랑 때문에 고개를 숙였지만 말이다.
사랑 때문에 나는 끝없이 강해졌지. 아이들에게 어떤 어려움이 생긴다면 다시 황소처럼 달려갈 수 있으리. 나는 약하지만, 강해져야 하는 사람이다. 눈물 뒤에 서 있는 엄마이기 때문에.
“우리가 성장한다는 것은 어머니의 몸으로부터 조금씩 떨어져 나가는 의식이기도 하다.”
이어령 선생은 어머니를 ‘환상의 도서관'이라, '시이며 드라마’라고도 표현했다.
자녀들을 향한 사랑 때문에 살고, 사랑 덕분에 살아지는 사람. 그렇게 나는 눈물 뒤에 서 있을 수 있는 강한 엄마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