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서 여자라서 울고 웃고 5
또다시 이삿짐을 싼다. 이번에는 열여덟 시간 비행 끝에 도착할 아프리카 대륙. 해외이사팀 담당자들은 짐을 담은 박스마다 딸의 이름이 새겨진 빨간 스티커를 붙였다.
‘맞아, 딸아이 회사였지’
일주일 후, 남은 짐을 보낼 때는 남편 회사에서 그의 이름 스티커를 붙이겠지.
‘칫, 이름이 뭐 그리 중요하다고?’
셋 맘, 쌍둥이 맘,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 한동안 나를 부른 이름이었다. 결혼 후, 내 이름은 언제나 남편과 아이들의 이름 뒤에 조용히 따라붙었다.
“김지나 선생님!”
결혼 15년 만에 영어학원에서 내 이름 석 자로 계약서를 작성했다. 누구 엄마도 아내도 아닌 내 이름으로만 불리던 그날, 생경하면서도 감격이었다. 온전히 나 자신을 위해 이름을 사용한 순간이 얼마 만인지. 이름으로 맡은 반을 책임지고, 이름으로 계약한 통장에 월급을 받았다. 이름이 불리고 새겨질 때 작용하는 소유하는 힘은 작용하기 시작한다. 그 힘은 이름을 가진 사람을 움직이게도 한다.
언제부터인가 자녀들 이름 스티커를 주문할 때면 내 것도 제작했다. 소유가 분명한 내 물건 여기저기에 이름표를 붙였다. 노트북, 다이어리, 볼펜, 텀블러까지도. 3센티 너비 작은 은박 스티커에 새겨진 까만 세 글자가 예뻐서 엄지로 쓰다듬어 보았다. 작은 스티커 한 장이 영역을 구분해 주고 소유자를 분명하게 만든다. 작지만 큰 힘을 가진 녀석!
'나다운 게 뭘까?, 나답게 사는 삶이 도대체 뭘까?'
삶이 지루하고 외로울 때, 나 자신이 초라해질 때면 무심코 한숨을 쉬며 중얼거릴 때가 있다.
얼마 전 친정엄마와 떠난 전주 한옥마을에서 한복 물결을 보았다. 댕기 따고 한복을 입은 외국인 무리가 고와 보여서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한참이나 쳐다보았다. 오히려 평상복 입은 내가 주변을 살펴야 할 분위기였다. 나도 한 번 빌려 입어 볼까 싶어서 대여점 앞을 기웃거렸다.
기와 얹은 한옥 카페는 젊은이들로 북적이고, 전통찻집에는 대추차와 쌍화차가 많이 팔렸다. 전통적인 명소를 여행하면서 자꾸만 눈에 띄는 외국인의 경이로운 눈빛에 내 어깨와 입술은 잘난 체하고 싶은 미소가 자꾸만 씰룩댔다. 한옥마을이 이어진 태조로 골목을 걷다 보니 “신토불이” 사자성어와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허스키한 외침이 떠오른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고 말한 임권택 영화감독의 표현도.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군. 나도 나다울 때 가장 멋지겠구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 있을 때, 생각과 의견을 힘주어 표현할 수 있다. 나만의 기준과 생각이 견고할 때 자존심 아닌 자존감으로 내 안에 자리할 수도 있었다. 제대로 나를 알아야 가능한 일이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살피기도 하고 새로운 배움을 시도하면서 자신을 발견해 가려한다. 내 인생은 나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기에.
경주 구석에 있는 외딴 동네에서 최근 2년을 지냈다. 오랜 훈련 덕분인지 고립된 상황을 원망하지 않았다. 무엇이든 하고 싶은 것을 찾아내서 지속했다. 동료 작가들과 글을 써 책을 만들고, 오일 파스텔 그림을 그려 그림 우측 하단에 내 이름을 새겼다. 주말농장 기회에 손을 들었고, 장롱 속에 방치된 아들의 플루트를 꺼내 독학으로 2년 내내 소리를 만들어 연주했다.
오십의 문턱을 넘으니 정착하는 곳마다 어디든 호기롭게 비집고 앉을자리는 드물었다. 자존감도, 용기도 절반쯤 줄어든 듯하다. 기억력과 순발력도 딱 절반.
단조로운 삶의 나를 가여히 여겨 스스로 내건 삶의 타이틀은 ‘아무튼, 그냥!’
'아무튼, 산책', '아무튼, 15분', '아무튼, 글쓰기', 아무튼....
책을 출간하고 브런치 작가 ‘Jina 가다’라는 이름으로 아무튼 계속 글을 썼다. 내 이야기를 꺼내고 생각을 글로 표현하면서 나의 모습은 좀 더 구체적으로 변해갔다.
2년간 매일 15분 연습을 지속한 플루트 실력으로 작은 악단과 공연했다. 스스로도 알지 못했던 나 자신의 장점을 찾아간다. 텃밭에서 고구마 넝쿨을 들어 올려 열매를 수확하듯 즐겁게 살아갈 내 삶의 이유들이 하나씩 고개를 내밀었다.
주변을 배우고 경험하면서 나만의 속도로 걷고 뛴다.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언제 시작하고 멈출지도 내가 결정한다. 나다운 모습으로 자신을 만들어갈 때 서두르지 않고 주변에 휘둘리지도 않는다. 내가 내 인생을 결정할 수 있을 때가 가장 멋진 순간이다. 그렇게 변해가는 나 자신이 좋다.
"인생이 당신을 통해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지에 귀 기울여라." 파커 J. 파머의 말을 기억하며 내 인생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한국을 떠나기 전, 시간을 내어 창덕궁과 창경궁에 들렀다. 왕과 왕비의 침소인 아담한 통명전과 대비의 침전인 양화당 둘레를 거닐었다. 작은 연못과 뒤뜰 그리고 후원이 활동 영역이었을 왕궁 그녀들의 일생. 그런 중에도 어떻게든 이름 모를 그녀들은 삶을 살아갔겠지?
자유롭게 경주와 서울을 오가면서 세월을 누리는 이 시간, 이 세상이 다행이라고 생각 중이다. 고된 세월을 건너 중년에 이른 지금이 감사하고, 적당한 주름과 흰머리도 만족한다. 여자로 출생해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현재가 위로다.
나는 누구로 태어나 누구의 아내가 되고 누구의 엄마가 되었지만, 그다음 이름은 내가 만들어간다. 그 누구도 내게 강요하지 않고, 덧입히지 않은, 나만의 이름. 남은 인생은 내가 원하는 나로 살기 위해 즐겁게 새로운 세상에 자꾸만 뛰어든다. 남은 기회는 이번 생, 이뿐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