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훈련된다

8. 마음

by Jina가다

마음을 내 마음대로 넣고 꺼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마음이란 녀석은 좀처럼 내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훈련을 하고, 수련도 한다.

마음이 흔들릴 때면 두 손으로 붙잡아 균형을 맞춰본다. 거울처럼 서로 비추는 마음이 조심스러워 조용히 단장도 하고 말이다. 오늘도 나는 사람과 환경 속에서 마음을 훈련하는 중.




수많은 정보는 마음을 흔드는 돌멩이와 같다. 한국 여행을 2주 앞두고 중동 전쟁 소식을 들었다. 이스라엘에 살던 교민들은 육로를 통해 이집트로 피난 왔다. 중립국인 이집트는 오래전부터 주변국의 피난처가 되어 왔다고 한다.

예약해 둔 비행기와 가족의 안위를 걱정하던 마음은 전쟁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이리저리 흔들렸다. 중동과 가까운 북아프리카에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불편해졌다. 듣고 보는 정보들은 마음속으로 빠르게 스며들어 던져진 돌처럼 파동을 만들었다.


먼저, 한국으로 출국한다는 기대를 비워냈다. 그러고 나니 항공편 취소 연락에도 마음이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한인회 단체방에 올라오는 계속된 소식에도 관심을 내려놓았다. 그저 평소처럼 하루를 지냈다.

3월 초 어느 날 남편은 선물 주듯 말했다. 유럽 항공사로 항공권을 바꾸었고 출국 날짜도 조금 미뤘다는 소식. 기쁜 전개였지만 마음은 의외로 고요했다. 처음 여행을 계획했을 때처럼 조용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마음이 널을 뛰기 시작하면 불안이라는 고통은 붙잡을 길이 없다. 그럴 때 나를 붙드는 것은 중용의 마음이다. 심령을 가난하게, 원래 비었던 것처럼 만들어 간다.




주변 환경에 흔들리지 않고 마음을 붙잡아 글을 쓰는 사람들이 있었다. 부유했던 괴테와 지독히 가난했던 권정생.

독일 항공기를 타고 이집트를 떠나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정지아가 들려주는 이토록 아름다운 권정생 이야기》를 읽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에 경유지인 프랑크푸르트에서 아홉 시간을 머물렀다. 오래전부터 가보고 싶던 괴테의 생가, '괴테하우스'를 방문할 수 있었다. 18세기에 지어졌다는 건물이었지만 놀라울 만큼 아름다웠다. 집 안에는 수도 시설과 벽난로가 있었고, 서재와 책상이 정갈하게 자리했다. 네 개 층으로 이루어진 공간마다 삶의 의미들로 넘쳤다.


괴테의 책상 앞에 한참을 서있었다. 두 팔을 벌린 너비의 책상. 그 위에서 부지런히 글을 썼을 부자 청년. 책상 앞에 서서 사진을 찍다 보니 한 사람이 떠올랐다. 조금 전까지 책에서 만나던 권정생 작가. 책상 하나 없이 아픈 몸을 이끌고 엎드려 글을 썼다는 책 속 이야기 때문이었다.

십 대의 권정생은 가난 때문에 가족과 떨어져 부산에서 홀로 일하며 살았다. 그때 책방에서 빌려 읽은 책이 바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었다. 그가 글을 쓰며 마음속에 품었던 작가가 바로 괴테.

괴테의 집을 관광하고 다시 탑승한 비행기 안에서, 그의 이름을 책 속에서 찾아 밑줄을 그었다.

부유한 가정에서 글을 쓴 젊은 괴테 그리고, 병든 몸과 혹독한 가난 속에서도 글을 써낸 권정생. 삶의 조건은 너무 달랐지만 글 쓰는 열정만큼은 닮아 있었다.


글을 쓴다는 일은 부유함이나 건강과는 별개의 문제인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자신의 생각을 세상에 남기고 싶은 마음. 그들에게 그것은 글이었고 책이었다.

괴테의 세계문학은 사상가들을 깨웠고, 권정생의 동화는 어린이와 어른들에게도 감동을 남겼다. 권정생이 인공으로 내세운 강아지똥과 민들레는 사랑과 희생을 보여준다. 자신과 닮은 몽실언니를 통해 전쟁 속에서도 버텨내는 단단한 삶을 말해주었다. 권정생의 마음은 늘 가장 낮은 곳에 있었다. 책을 읽는 동안 그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해 보려고 애썼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했을 그 마음을 닮아 보고 싶어서.




마음은 거울과 같아 서로의 마음을 비춘다. 한국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막냇동생이 내게 돈을 보내왔다. 한국에 왔으니 먹고 싶은 것 마음껏 먹고 가라는 말과 함께였다. 놀랄 만큼 큰 액수였다. 잠시 망설였지만 고맙다는 이모티콘과 함께 그 마음을 받았다. 지금도 통장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동생의 마음.

마음은 이렇게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카카오톡의 짧은 문장에도 마음이 담긴다. 그래서 나는 문자를 보내기 전 한 번 더 읽어본다. 혹시라도 내 마음이 거칠게 전해질까 봐서다. 사랑하는 마음은 자연스럽게 전달되지만 마음이 복잡할 때는 문장도 잘 써지지 않는다. 그럴 때는 짧은 문장에 이모티콘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마음을 감추는 데는 이모티콘이 꽤 유용하다.


한국에 머무는 동안 이집트에서 알게 된 지인들에게서 문자가 도착했다.

"봄날의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우리 지나 님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233 스트리트 근처에서 힘차게 걸으시던 모습이 떠올라요. 함께 웃던 시간이 그립습니다.”

짧은 문장이었지만 그 안에 마음들이 담겼다. 앞으로 누군가 멀리 떠난다면 나도 진심을 담아 문자를 보내야지. 마음을 보여주는 일이니까.




세월이 흐르면서 마음을 다스리는 요령이 조금씩 늘어 간다. 부모라는 이름이, 중년이라는 시간이 나를 훈련시켰다. 다른 것은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마음만은 조금 자란 것 같다.

흔들릴 때 붙잡는 법을 배우고 혼자 있을 때도 누군가의 앞에 설 때도 마음을 깨끗하게 유지하려 애쓴다. 결국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에. 그래서 오늘도 나는 마음을 훈련하고 단장한다. 좀 더 아름다운 어른이 되기 위해.



괴테의 책상


권정생 이야기

마음이라는 것이 꺼내볼 수 있는 몸속 장기라면, 가끔 가슴에 손을 넣어 꺼내서 따뜻한 물로 씻어주고 싶었다. 깨끗하게 씻어서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해가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널어놓고 싶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마음이 없는 사람으로 살고, 마음이 햇볕에 잘 마르면 부드럽고 좋은 향기가 나는 마음을 다시 가슴에 넣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겠지.

최은영 《밝은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