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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졸업지망생 Nov 22. 2023

아빠는 경찰인데, 그럼 엄마는 뭐예요?

엄마는....?

 눈만 뜨면 쭈쭈를 찾고 자거나 먹는 시간이 아니면 울음으로 하루를 채우던 아기가 자동차 장난감을 좋아하게 되었을 때, 바퀴 달린 장난감을 바닥에 댄 채 이리저리 밀어보고 심각한 표정으로 바퀴를 돌리며 놀았던 때, 아빠의 직업이 경찰이라는 점은 아이에게 꽤 흥미로운 사실이 되었을 것이다. 텔레비전 유아 프로그램에 수많은 자동차들이 등장하지만 그중에서도 삐뽀삐뽀 소리를 내며 경광등을 반짝이는 경찰차와 소방차는 보통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차종이기 때문이다. 남편은 아이에게 진짜 경찰차를 보여주기 위해서 순찰 중간에 집 근처를 지날 일이 있으면 미리 나에게 아이와 함께 밖에 나와 있으라고 전화를 하기도 했다. 아이는 아빠가 아닌 경찰차를 기다렸고, 경찰복을 입은 아빠보다 경찰차를 향해 손을 뻗었다. 경찰차는 아빠가 타고 다니는 자동차였기에, 할 수 있는 말이 엄마, 아빠, 쭈쭈, 뚜뚜 정도였던 때 아이는 경찰차를 '아빠차 삐뽀삐뽀'라고 불렀다. 소방차나 구급차는 경찰차가 아니라는 이유로 '엄마차 삐뽀삐뽀'가 되었다.


 물론 아이는 엄마가 소방관이나 구급대원이 아니라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엄마는 눈을 뜨고 있으나 감고 있으나 항상 제 옆에 함께 있었던 사람이니까 말이다. 16개월쯤 되어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한 이후에도, 5살 여름 내가 재취업을 한 이후로도 아이에게 나는 '집에 있는' 사람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자신을 챙겨주고, 어린이집까지 데려다주는 엄마. 그리고 어린이집 놀이 시간이 끝나면 찾아와서 집에 데려오고, 집에서도 항상 함께 있었던 엄마. 그러니 "엄마~ 아빠는 경찰인데, 그럼 엄마는 뭐예요?"라고 묻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나는 아이에게 엄마도 직업과 직장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회사에 아이를 데리고 간 적이 있다. 아이 어린이집이 여름방학이었고, 취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연차를 쓰기 조심스러웠던 나를 대신해서 남편이 여름휴가를 써서 아이를 돌봐줬던 때였다. 엄마 회사를 구경시켜 주러 데려간 회사에서 아이는 도리어 좋은 구경거리가 되어버렸다. 회사에서 함께 일하는 분들 중에 자녀가 있는 경우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5살 난 하얗고, 조그마한 남자아이는 금세 신기한 생명체가 되어 사람들에게 둘러싸였다. 간식, 뽀로로 펜 등을 선물로 받은 아이에게 엄마의 회사라는 곳은, 자신을 반겨주는 어른들이 많은 소란스러운 곳으로 기억되었고 '엄마의 일터'라는 의미는 이미 사라져 버렸던 거 같다. 작년 겨울, 7살이었던 아이가 "엄마~ 아빠는 경찰인데, 그럼 엄마는 뭐예요?"라는 질문을 또 하는 걸 보니 말이다.


 사실, 그동안 나는 출장 때문에 일 년에 한두 번은 외박을 했고, 종종 야근을 하거나 주말에 회사를 나갔던 적도 있다. 그때마다 남편은 혼자 아이를 돌보며, "엄마는 회사일 때문에 나중에 오실 거야."라고 설명해주곤 했다. 엄마는 뭐냐는(?) 질문에 "엄마 회사 다니잖아~"라고 말했더니 아이가 "아 맞다. 엄마 회사 다니지."라고 대답했다. 서로 마주 보고 웃는 중에 아이가 5살이었던 어느 날 잠자리에 들면서 내게 했던 취침인사가 떠올랐다.


 나와 남편은 지금까지도 평소에 아이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포옹이나 말로 많이 표현해 주는 편인데, 그 당시 잠자기 직전에 아이에게 "내 사랑, 귀염둥이, 잘 자"라든가 "귀염둥이, 이쁜아, 사랑해" 등 세 음절로 인사를 하는 습관이 있었다. 정확히 어떤 인사말을 선택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날도 "내 사랑, 귀염둥이, 잘 자"라고 인사를 했을 것이다. 그러자 아이가 조그마한 목소리로 내게


  "요리사, 이쁜아, 잘 자"


라고 답사를 했던 것이다. 나는 이 작은 생명체가 보여주는 언어 모방과 변용에 깜짝 놀라며 "엄마가 미눔에게는 요리사이고, 이쁜이야?"라고 환호하며 물었다. 그러자 아이가 "엄마는 매일 맛있는 걸 많이 만들어 주니까"라고 답하는 게 아닌가. 


 이 아이에게 나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쭈쭈를 물려 달고 따뜻한 모유를 주었던 사람이자, 맑은 미음부터 이유식까지 직접 떠 먹여주고, 작은 식판에 밥과 국, 갖가지 반찬들을 만들어서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아 이거 먹어 봐, 저거 먹어 봐 채근했던 사람이었다. 재취업을 하기 전 틈틈이 강의나 연구 용역에 참여를 했고, 문제집을 만들어 출판을 하기도 했지만 아이에게 나는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였던 것이다. 


 "아빠는? 아빠는?" 옆에서 자기에게도 인사해 달라고 조르는 아빠에게, 아이는 잠깐 생각하는 듯하더니 


 "경찰, 웃긴아, 사랑해"


라고 답을 했다. 엄마는 이쁘니까 이쁜아 라고 했고, 아빠는 웃기니까 웃긴아 라고 했단다. 5살 아이의 조어법에 또 한 번 감동하며,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그날을, 아이의 그 말을, 그 감동을 나는 3년이 지난 지금도 잊지 못한다. 엄마라는 존재가 저를 밤낮으로 '먹이는 사람'이라는 걸을 알고 있다니. 다른 엄마노릇은 어찌어찌 하겠는데, 밥을 하는 일은 너무 버겁고 힘들었던 내게 엄마로서의 정체성보다 밥 하는(먹이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이 더 선명하게 다가온 그날을 평생 잊을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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