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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졸업지망생 Dec 29. 2023

밥 하는 자의 권력

"밥은 언제 먹는다?"

"밥 먹어~"

4살쯤이었나? 장난감 놀이를 하느라 엄마의 부름에도 꿈쩍하지 않는 아이에게 새로운 구호를 가르쳐줬다. 

"밥은 언제 먹는다?"

"....."

"줄. 때. 먹는다. 알았지? 밥은 엄마가 줄 때 바로 와서 먹어야 해. 식으면 맛이 없어~"


그 이후에도 종종 밥 먹으라는 부름에 반응이 없을 때는 늘 이 구호를 선창했다.

"밥은 언제 먹는다?"

그러면 아이는 자동으로 "줄. 때. 먹는다!"라고 대답하며 식탁 의자에 앉곤 했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밥도 더 잘 먹는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구호는 꽤 쓸모가 있었다. 아이에게 서귀포 할머니 댁은 제 집만큼이나 편한 곳이 되어 버린 탓에 밥상을 다 차려놓고 불러도 식탁에 잘 앉으려고 하지 않는다. 아이는 집에서 오래 보지 못하는 TV를 실컷 보느라 늘 정신이 팔려있다. 이 녀석의 할미, 할아비 즉 나의 엄마 아빠는 아기들은 다 그렇다며 아이를 나무라지 않으시는데 그때 이 구호를 선창하면 아이는 TV에서 눈을 떼지도 못한 채 "줄 때 먹는다~"라고 말하며 식탁 근처로 온다. 


아이가 태어난 후로 내 삶보다 아이의 삶이 더 중요하게 느껴질 정도로 모든 것을 아이에게 맞추며 살고 있는 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주도권을 내 줄 수는 없는 법이다. 그렇게 밥을 먹이는 일 중에서는 '해 준 음식은 군말 없이 먹는다, 그리고 줄 때 즉시 와서 먹는다'를 요구할 정도의 권력은 쥐고 있으려고 노력한다.


가사노동이나 돌봄 노동에 관한 책을 읽다 보면, 가사노동은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위계가 낮은 여성들이 수행하는 노동으로 설명된다. 1980년대 영국에서 여성들의 음식노동(foodwork)을 연구했던 Murcott은 당시 여성들을 인터뷰한 결과 배우자의 귀가시간에 맞춰 저녁을 먹는 등 음식을 하는 일이 배우자 중심성을 보인다고 한 바 있다. 특히 당시의 여성들은 식사 메뉴나 재료, 조리법 등에서 배우자의 선호를 가장 많이 고려하였는데, 이는 남편이 집 밖에서 고된 노동을 하는 것에 대한 감사와 존경의 표현이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1983년에 쓰여진 Murcott의 논문의 제목은 "‘It's a pleasure to cook for him’"이다. 그 후 1990~2000년대 미국과 호주 등지의 여러 연구에서는 음식노동의 의미가 '좋은 어머니'의 모성실천으로 변화되고 있음을 밝혔다. 기존의 연구 자료에서나 내가 제주에서 직접 수행한 예비 조사와 본 조사에서도 식사 준비는 배우자나 자녀의 취향과 일정에 맞춰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이를 수행하는 여성들은 자신의 취향을 배제하거나 일과를 변경하는 등 철저하게 가족들에게 자신을 끼워맞춘다.


한편, 여성들은 가사노동 기술과 육아 능력 등으로 스스로 자부심을 느끼기도 하는데, 공적인 인정은 아니더라도 어질고 지혜로운 어머니로서 자녀들의 감사와 존경을 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자녀들이 아빠보다 엄마를 더 찾거나, 아내가 없으면 세탁기도 못 돌리고 밥도 못 차리는 등 기본적인 생활능력이 부재한 남성이 아내의 빈자리를 느낄 때에는 그 자체가 여성에겐 자부심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자부심은 특히 부엌이라는 공간에서 더 많이 발휘되기에 부엌을 지휘하는 권력자로 여성을 묘사한 사회학자도 있었다. 부엌에서 생산되고 축적되는 지식들은 여성들이 독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남성들은 차려준 밥상을 안방에서 받아먹는 호사를 누리며 밥 하는 일에 대한 책임을 면제받았지만 그만큼 자기 자신을 먹일 수 있는 기술을 습득할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했다. 얼마 전 엄마가 맞벌이를 하는 오빠네 부부를 대신해서 손녀딸의 서울 병원 동행을 자처하셨을 때 보였던 아빠의 반응이 그 단적인 예다.

"그럼 내 밥은 누가 해?"


"차려 먹으라고 해~ 아빠는 손이 없어, 눈이 없어? 칠순이 넘었는데 밥도 못 차려 먹어?"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엄마의 푸념에 나는 소리를 빽~하고 질러버렸다. "내" 밥은 누가 하냐는 질문은 평생 어미와 아내로부터 밥상을 받으며 살아온 아들+가부장의 권력과 엄마 없이는 먹을 것을 해결하지 못하는 어린아이의 간절한 호소가 섞여있었다. 엄마는 "남자들은 다 애기잖니~ 밥이랑 반찬, 국 다 해 놓고 가야지"라고 말씀하셨는데, 뭐랄까. 그 말은 신세한탄 같기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밥도 못 해 먹는 아빠에 대한 나무람 같기도 했다. 


몇 년 전엔가. 남편이 본가에 다녀온 후 내가 차려준 밥을 먹으며 한 말이 있다.

"아부지는 참...... 남자들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진짜 이해가 안 되는 게.. 왜 어무니가 해주는 밥을 받아먹으면서 어무니한테 큰소리를 치시는지 진짜 이해가 안 돼요. 아니, 밥을 받아먹으려면 어무니 말을 잘 듣든가, 어무니 말을 듣기 싫으면 밥 달라는 소리를 말든가 해야지... 어떻게 밥 받아먹으면서 구박하고 잔소리하는 게 가능하지? 논리가 안 맞잖아요." 

그리고서 남편은 

"아내가 해주는 밥을 받아먹으려면 나처럼 아내 말을 잘 들어야지... 아휴 맛있네. 진짜 맛있네."라는 말을 덧붙이며 나를 흘끗 쳐다보았다. 

 

"그죠. 그래야 밥을 주지. 우리 집에서는 내 말 안 들으면 밥 안 해줄 거예요."


나는 이렇게 대답을 하면서도, 스스로 만들어 놓은 "밥을 하는 권력을 손에 쥔 자"라는 허상에 나를 가두고 계속 음식노동을 반복하는 것은 아닌가 자문했다. 당신 말을 내가 더 잘 들을 테니, 집안일이며 밥이며 다 당신이 하라고 말하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남편과 나는 가부장적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 사이의 성별 분업을 설명하기에 성별에 따른 위계와 권력은 설득력이 별로 없다. 



지난 크리스마스 날, 오전에 가족이 크리스마스 행사에 갔다가 1시쯤 설렁탕집에서 점심을 먹고 귀가했다. 그날 당직근무 때문에 6시까지 출근을 해야 하는 남편을 위해 5시에 저녁상을 차리기로 하고, 2시간 정도 짬을 내어 혼자 도서관에 다녀왔다. 최근 남편의 잦은 야근과 회식으로 혼자 아이를 돌보느라 책 읽을 시간이 부족했던 내게 주어진 꿀 같은 휴식이었다. 그날 책을 읽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다가 뒤늦게 시간을 확인하고 부랴부랴 집으로 달려와 저녁을 준비했다. 안방에서 쉬고 있던 남편을 부르자, 바로 나와서 밥을 먹고 있었는데 옆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아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엄마, 지금 4시밖에 안 됐는데 아빠는 왜 지금 저녁을 먹어요?"


아이의 질문에 식탁 위 시계를 보니 4시 10분이다. 아뿔싸, 시간을 잘못 보고 너무 일찍 들어왔다. 1시에 영양갈비탕 한 그릇에 공깃밥 두 그릇을 해치운 남편이 불과 3시간 만에 저녁을 먹고 있었던 것이다.


"아? 내가 시간을 잘못 봤네..ㅠㅠ 4시인 거 알았어요? 알고도 먹는 거예요? 아직 5시 아니라고 말을 해야지. 내가 시간을 잘못 봤나 봐요.ㅡㅜ" 

미안하고 당황스러워 어쩔 줄 몰라 하는 내게,


"밥은 차려줄 때 먹어야죠. 이거 진짜 맛있네요."라고 대답하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저녁을 먹는 남편을 보니, 내가 진정 밥을 하는 권력자가 맞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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