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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졸업지망생 Feb 14. 2024

드디어, 가사노동 해방

남편의 육아휴직

  열 달의 육아휴직을 끝내고 복직한 지도 한 달이 훌쩍 넘었다. 내가 쓸 수 있는 육아휴직 기간이 2개월 정도 더 남아있었기에 아이의 겨울방학기간 동안만 휴직을 연장하고 싶었지만 남아있는 동료에게 짐이 될 것 같아 마음을 접었다. 대신 돌봄교실에 보내고 이른바 학원 뺑뺑이를 돌려도 귀가 시간이 3시 또는 5시라서 조퇴를 자주 써야 할 것 같다고 양해를 구했다. 

  처음에는 남편이 주 2일, 내가 주 3일을 일찍 퇴근하기로 약속을 했기에 무리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거듭되는 남편의 행사 동원, 실종자 수색, 폭설 야근, 당직 근무 등등 때문에 혼자 거의 주 5일을 매일같이 조퇴를 써야 했다. 경영지원실장의 "근태 관리 좀 하라"는 지적도 여러 차례 들었지만, "네 신경 쓰겠습니다"라고 답변 후 자리로 돌아와 조퇴신청을 하는 날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ㅜㅜ 설 연휴만 끝나면 남편이 육아휴직을 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빨리 설이 오기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연간 일정이 2개월이나 빨라져 평소보다 일거리가 상당히 쌓여있음에도 불구하고, 매일 조퇴를 해야 했던 나날은 꽤 요란한 사건들의 연속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날 어김없이 남편은 출근을 했고, 아이는 아팠다. 지참을 쓸 수 없어 아이를 마스크만 씌우고 돌봄교실에 보냈다. 눈치를 보며 조퇴 신청을 하려고 했는데, 한 명뿐인 내 동료이자 상사인 센터장이 경영지원실장에게 불려 가 "근태 관리" 지적을 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아프고 너무 어지럽다고 울먹이는 아이의 전화를 받았고 어렵사리 조퇴....라는 말을 꺼냈을 때, 센터장이 병원 진료를 위해 오후반가를 먼저 신청했다고 말했다. 남편에게 조퇴할 수 있냐고 전화를 했는데 행사 경비근무에 동원되고 있고 4시에 끝난다고 했다. 결국 아이에게 조금만 참고 점심도 학교에서 먹으라고 달랜 뒤,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학교로 달려갔다. 아이를 데려오고 해열제를 먹인 후 영화를 틀어주고 다시 사무실로 복귀하려고 하는데 원청으로부터 왜 어제까지 완료하라고 한 업무가 감감무소식이냐는 전화를 받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3일 연속으로 출장을 다니면서 까마득하게 잊어버린 일거리가 하나 있었던 것이다. 부랴부랴 회사로 복귀하는 길에 갓길에 주차되어 있는 차를 사이드미러로 긁어버렸다. 내 10년 무사고 경력에 흠집이 나는 순간이었다. 급히 내려서 사진을 찍고 차주에게 전화를 걸어 사진을 전송한 후 거듭 사과하고 변상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리고, 복귀하자마자 급히 일처리를 하는 내내 아픈 상태로 처음 혼자 집에 남겨진 아이와 상대 차주의 전화를 번갈아 가며 받았다. "차 긁고 그냥 가시면 어떡해요.." "엄마, 리모컨이 어딨는지 모르겠어요." "보험 처리하지 말고 50만 원 정도로 합의하시는 건 어때요?" "엄마, 큰일 났어요. 열이 더 올랐어요." "그럼 그냥 25만 원 정도는 어떠세요?" "엄마 너무 아파요ㅠㅠ" "저도 보험 끼는 게 귀찮아서, 그럼 20만 원은 어떠세요.." "엄마, 영화가 끝났는데 리모컨을 아직도 못 찾았어요" "엄마 다른 영화 틀어주세요." "엄마 영화가 또 끝났는데 이제 뭐해요?"......

  그 와중에 원청에 6시까지 처리하겠다고 말한 일을 4시 전에 완료했다!!!! 와우 정말, 스펙터클하지 않은가? 


  이어서 갑작스레 불려 간 ceo와의 면담. 1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 왜 하필 그날 일어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 살고 있냐, 어떻게 살았냐는 그녀의 질문에 답변하기를 반복하다 보니 40분의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그녀가 미소 지으며 했던 말이 아직도 가슴에 남아있다. 그래도 할 건 다 했네...

  원하는 전공으로 석사를 마치고, 결혼도 했고, 아이도 낳아서 8살까지 키웠고, 그 와중에 박사수료 했고, 공공기관 근무 경력도 쌓고 있고,,,,, 할 건 다 했네. 할 건 다 했어. 고생했네... 경력단절 기간이 길었지만 5살까지 아이와 애착도 잘 형성했겠다, 석사 전공을 살리지는 못했지만, 전업과 재취업에 성공했고, 공부해 둔 거는 어디 안 가, 그때 배운 거 지금도 써먹고 있겠지만 앞으로도 써먹을 일 많을 거야. 전공을 바꾼 것도 일찍 바꿔서 다행이고,, irb 승인받아서 논문 쓰고 있고... 잘하고 있는데? 아주 좋군, 좋아...


  "그... 그런가요?" 

  이 나이 들어서, 누군가에게 이런 진득한 칭찬과 격려를 받아봤었나 생각해 보았다. 없었던 거 같다. 아이 낳고 키우느라 고생했다는 말 말고는, 아이 키우면서 일하느라 고생한다는 말 말고는... 여전히 공부 중이라는 말에 힘들겠다는 말 말고는, 없었던 거 같다. 상상해 본 적도 없었다. 20대 중반을 지나던 어느 날 "나이는 먹었고, 이룬 것은 없고, 철은 들지 않았다"라고 고백한 적이 있었다. 나는 여전히 나를 "나이는 먹었고, 이룬 것은 없고, 철은 들지 않은" 사람으로 바라본다. 그런 나에게, 할 건 다 했다니...


  집에 오니 남편이 행사 근무 끝나자마자 조퇴를 해서 집에 와 있었다. 아이는 열이 내려서 컨디션이 돌아왔고, 병원에도 다녀왔다고 했다. 저녁도 남편이 차려줬다. "이제 당신은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말아요. 사실상 오늘 퇴근한 순간부터 나는 육아휴직이에요~!" "그리고 차 긁은 거 다 잊어버려요, 20만 원으로 해결한 거는 진짜 땡잡은 거예요."...


아픈데 엄마 어디 갔냐는 아이의 울음과 할 건 다 했네 라던 ceo의 말에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20만 원을 송금했다는 사실은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아깝다는 느낌도 들지 않고, 그냥 올해도 힘차게 잘 살 수 있을 거라는 이유 모를 자신감만 들었다.


"나 진짜 집안일 안 해도 돼요?"라는 질문에 남편이 "당연하죠. 휴직기간 동안 내가 다 할 테니, 일이랑 공부만 열심히 해요"라고 말했다. 그날의 소동이 남편의 육아휴직과 나의 가사휴직의 시작을 알리는 팡파르 같았다. 남편에게는 10년의 공직생활 끝에 얻은 길고도 짧은 휴식, 나에게는 10년의 주부의 삶 끝에 얻은 길고도 짧은 가사노동, 주양육자로서의 돌봄 노동 해방의 시간이다. 


나에게도 드디어 "아내"가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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