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로, 도시락을 싸야 하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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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은, 아이가 현장체험학습을 가는 날이다. 즉, 내일은 도시락을 쌀 장을 봐야 하는 날이고, 모레 아침은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서 도시락을 싸야 한다. 나는 오후부터 *튜브에서 도시락 싸는 법을 검색해 보고 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닐 때에도 소풍 도시락을 싸는 건 부담스러웠다. 지금은 육아휴직 중이지만 당시에는 매일 아이 등원을 챙기고 출근을 해야 했기에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서 피곤함을 온몸으로 느끼며 음식을 해야 하는 일 자체가 두려웠다. 게다가 나는 요리에 자신이 없다. 물론 그런 부담에 걸맞을 정도의 결과물을 완성시킨 적도 없다. *튜브에 나오는 도시락과는 거리가 먼 그저그런 평범한 도시락이었다. 왜냐하면 어차피 아이가 잘 먹는 것은 주먹밥이나 볶음밥 정도였기 때문이다. 보통 예쁜 도시락의 정석은 눈, 코, 입(가끔 귀도)이 붙어 있는 아기자기한 모양의 주먹밥(또는 다양한 김밥)에 문어나 미니언즈 모양의 비엔나 소시지, 꼬꼬닭 모양의 메추리알, 방울토마토나 포도, 거봉, 딸기 등의 과일이 아니던가. 여기에 좀 더 신경을 쓰면 예쁜 장식이 달린 포크를 꽂은 샌드위치롤 뭐 이런 것이 들어있는 것도 보긴 하였다. 그런데 울집 아이가 먹는 것은 고작 소시지나 메추리알조림 정도였기에 나는 평소에 자주 만들어 먹는 소시지볶음밥에 메추리알조림을 찬으로 넣어서 도시락을 만들었었다. 많이 먹는 편도 아니어서 도시락통을 따로 구입하지도 않았다. 스테인레스로 된 작은 반찬통 하나가 내 아이 도시락의 전부였다. 거기에 간식으로 초코우유와 빼빼로 정도를 같이 넣어서 보냈던 것 같다. 내 아이 도시락이, 다른 아이들의 아기자기한 도시락과 비교당할까 걱정되는 마음은 애써 무시하고 쿨한 척 평범한 도시락을 싸왔는데도 불구하고 어김없이 소풍날이 다가오면, 거의 제사나 명절을 맞이하는 마음처럼 부담감이 몰려온다.
특히, 올해는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간 첫 해이고, 이번이 첫 현장체험학습이기도 하다. 1학기 현장체험학습날은 독감에 걸리는 바람에 결석을 했기에 반친구들과 함께 야외에서 옹기종기 모여앉아 저마다의 도시락을 꺼내 먹을 수 있는 첫 번째 기회인 것이다. 아이에겐 그 자체로 설레고 기쁜 날이겠지만, 이상하게도 도시락을 예쁘게 싸지 않으면 그 설레는 마음이 사라져버릴 것 같은 느낌에 괜히 걱정이 되었다.
어린이집 다닐 때보다는 먹는 양이 늘어서 적당한 도시락통이 있는지 살폈다. 예전에 블록 장난감을 살 때 사은품으로 받은 마블 도시락이 있었다. 그 안에 들어갈만한 적당한 양의 도시락 메뉴로 무엇이 좋을까를 고민하며 '소풍 도시락'을 검색해 보았다. 어차피 뱃속에 들어가면 모두 한데 어우러져 소화될 음식을 왜 이렇게까지 예쁘게 만드는 걸까 싶은, 아기자기를 넘어 휘황찬란한 도시락들이 검색되었다.
슬라이스 햄으로 만든 꽃(예쁘긴 한데, 다소 크다. 저걸 통째로 먹는 건가?), 비엔나 소시지에 치즈와 김을 잘라서 붙인 이웃집 토토로(토토로의 수염을 표현하기 위해 이쑤시개를 X자로 꽂았다. 위험해 보이는데..). 여러 장의 김을 잇고 달걀 지단을 여러 차례 올려 말아 만든 달팽이 모양의 김밥도 있다(달랑 햄과 달걀, 치즈만 있고, 아이가 먹기엔 너무 크다. 한 입에 넣으려다 턱이 빠지겠는데..). 달걀 옷에 가늘게 자른 김을 두르고 주먹밥을 만 후, 완두콩을 이쑤시개에 꽂아 만든 꿀벌 모양의 주먹밥도 있다(이것도 이쑤시개가 위험해 보인다). 유부초밥에 치즈로 귀를 만들어 붙이고 김 쪼가리로 얼굴을 만든 리락쿠마도 있다. 이제보니 꼬꼬모양 메추리알은 유행에 뒤떨어진 아이템인가 보다. 이런 도시락을 만들려면 다양한 표정의 눈, 코, 입과 동물 입을 찍어내는 도구가 필수품이다.(어디서 파는 걸까? 이름은 뭐지? 검색 결과 '김펀칭'이라고 한다). 내가 지나치게 실용주의자인지, 아니면 그냥 김밥도 잘 못 싸는 사람이라 그런지 당췌 마음에 드는 도시락이 없었다. 단지 만들 자신이 없었을 뿐이지만, 너무 커서 먹기 불편하지 않을까? 이쑤시개가 위험하지 않을까? 생각보다 야채종류가 부족하고 탄수화물이랑 단백질 덩어리인데? 등등 부정적인 생각으로 내가 만들 평범한 도시락에 합리성을 부여하고 있었다.
요리조리 머리를 굴려보다, 한 입에 먹기도 좋고 서툰 젓가락질로도 잘 집을 수 있는 꼬마김밥을 말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아이가 좋아하는 비엔나 소시지로 까짓거 문어를 만들어 보려고.... 했지만 치즈를 작고 동그랗게 자른 후 검은깨로 눈을 만들어 붙이는 수고스러운 작업을 하는 것이 귀찮기도 하고,, 또 요거 몇 개 만들려고 검은깨를 사기도 그렇고 해서 그냥 소시지는 소시지 모양대로 몇 개 넣기로 했다. 그리고 바나나를 제외한 각종 과일을 거부하는 아이라 갈변될 위험이 있기는 하지만 바나나를 썰어넣고, 부족하게 느껴지는 야채를 보충하기 위해 꼬마김밤에 오이나 당근은 꼭 넣기로 했다. 뭐 사실 점심에 야채 조금 못 먹었다고 큰일나는 건 아니다. 아침과 저녁 등 평소에 야채 반찬을 충분히 먹으면 되니까. 생각이 정리가 되어 내친김에 미리 장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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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도시락 싸는 연습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지만.... 귀찮아서 그만 두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그래도 걱정이 되어, 메모지에 김밥을 말기 위한 순서를 적어보았다. 그리고 매일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남편에게 6시 경에 깨워달라는 부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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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연속으로 밤에 책을 보지 않고 일찍 자서 그런지 새벽 기상이 힘들지는 않았다. 다만, 전날 설거지를 다 안 끝내고 잤나 보다. 열심히 설거지부터 하고 싱크대를 깨끗하게 정리한 후 도시락 싸기를 시작했다. 김밥은 살면서 두 번 정도 싸본 거 같고, 꼬마김밥을 싸는 것은 처음이었다. 전날 *튜브에서 본 내용을 복기하며 밥을 먼저 떠서 양념을 했다. 예전에 밥을 제일 마지막에 떴다가 열기가 남아있어서 김이 아주 쪼글쪼글해지고 질겨진 적이 있었다. 게다가 밥도 질어서 분식집에서 사먹던 김밥과는 질감이 영 다른 결과물이 나왔다. 물 없이는 삼키기 힘들고, 치아에 뭔가 잔뜩 달라붙는 그런 질감 말이다.
그런데 이번에도 밥이 질게 되어 깨소금과 참기름을 넣고 섞었더니 밥이 또 질퍽하게 되어버렸다. 스팸을 가늘게 썰고, 당근도 잘게 채를 썬 후 기름에 각각 볶아 키친타올에 올려 기름기를 흡수시켰다. 김밥용으로 파는 단무지와 우엉을 다 가늘게 썰고 길이도 스팸 세로 길이로 잘랐다. 김밥용 김을 4등분하고, 한 장씩 위에 밥을 떠서 펴고, 스팸과 단무지, 우엉, 당근채를 올리고 손으로 꼭꼭 누르면서 말았다. 재료 준비를 7시에 끝냈고, 김밥 6개를 말고 시계를 보니 7시 30분이었다... 한 개당 5분이나 들었다는 뜻인가? 그럴 리가 없는데..
시간이 조금 남는 듯하여, 그 중 두개는 달걀물을 입혀서 달구어진 프라이팬에 몇번 굴려주었다. 3등분을 하니 도시락통 깊이에 딱 맞아 떨어졌다. 비엔나 소시지 3개에 2번씩 칼집을 낸 후 다시 프라이팬에 굴리고, 도시락통 깊이에 맞게 한쪽 끝을 잘라 준 후 도시락통에 담았다. 나름 비주얼도 괜찮아 보였다. 달걀물을 입히지 않은 두 개의 김밥을 썰어서 아침밥으로 주었더니 아이가 연신 맛있다고 얘기하며 잘 먹었다. 도시락도 보여주었더니 너무 좋아한다.... 아이고, 그럼 되었다. 오늘도 미션 완료이다.
아이를 등교시키고 돌아와서 부엌을 보니, 꼬마김밥 마는 데에 온갖 조리도구들이 총 출동을 하였다. 자잘하게 남은 재료들로 김밥을 몇 개 더 말고, 그래도 남은 것은 보관용기에 담에서 냉장고에 넣었다. 몇 개 입에 넣어 우물거리면서 한바탕 설거지를 하고 나니 10시가 지나 있었다.
김밥 몇 줄 싸는 데 총 3시간 정도가 소요되었다. 최저시급을 적용해도 인건비만 3만원이다(물론 요리에 숙달된 사람은 한 시간도 안 걸릴 것이다). 그래서 나는 평소에 김밥은 싸먹는 것 보다 사먹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아이 도시락은 엄마인 내가 싸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일년에 몇 번 없는 기회라서? 요리는 엄마의 몫이고, 아이의 도시락을 싸는 것은 엄마의 역할이라는 생각, 그리고 직접 싼 도시락이 더 정성스럽고, 그러한 도시락에 아이에 대한 사랑이 담겨있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매우 수고스러운 일이기에 직접 만드는 것이 더 정성이 들어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수고로움 이꼬르 정성이지만, 정성을 생각하면서 수고로움은 건너띄는 경우가 많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수고로움을 감당하는 주체가 엄마이기 때문이다. 엄마가 아이에게 하는 모든 것은 수고로운 게 아니라 사랑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를 사랑한다. 밥을 할 때도, 밥을 하지 않을 때도, 언제나 사랑한다. 사랑하는 마음이 매 순간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내 삶에 스며들어 있는 것이다. 소풍 도시락을 만드는 순간에도 다음 차례가 뭐지?를 고민하는 시점에도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늘 거기 있던 곳에 있었을 것이다. 다만 도시락을 만드는 일은 하나의 과업이었다. 요리를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이, 여자이고, 아내이고, 엄마여서 해내야 하는 과업 말이다. 도시락을 만드는 중에도 사랑이 늘 있는 것처럼,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 도시락을 만들지 않고 아이와 두시간 더 뒹굴면서 잠을 잤어도 사랑은 늘 거기에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참,,, 그렇지가 않다.
도시락 가게에서 소풍도시락을 사왔다면, 아이를 보내며 나는 또 죄책감과 미안함에 얼마나 시달렸을까.
이제 또, 저녁은 뭘 먹을지 고민해야 하는 시간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