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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연 Oct 31. 2023

산나물과 경로당

예순셋 할머니의 콩고물 수다

언젠가 남편이 하도 속 터지게 굴기에 푹 한숨 쉬며 옆에 딸 있는 줄도 모르고 혼잣말로 투덜거렸다


머리 깎고 산속으로 들어가 버리든지 해야지 원. 골머리 아파 살 수가 없네.


엄마, 산속으로 들어가 봐야 소용없어.

보나 마나 산나물 따 들고 내려올 텐데... 여기 맛이 아주 기막힌 산나물이 있네. 먹어보면 다 들 좋아할 것이네. 이거 포장 잘해 팔면 불티나게 팔릴 것이네.

아마 한 달도 채 못돼 다시 내려올걸?

그냥 사시던데서 사슈.


오래전 친구에게  이일저일 머릿속 복잡해 죽겠다. 시골에 가서 푹 박혀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싶다 하소연했을 때도 내속 들어갔다 나온 듯 속속들이 아는 친구 비슷한 소리를 했었다.


아서라, 너 또 보나 마나 거기서 새마을 운동 시작할 텐데... 경로당 문 여는 시간이 너무 늦네. 마을버스가 너무 드문드문 다니네... 뭐라도 잘해보겠다 굴러 들어간 돌이  오지랖 떨고 다니다 박힌 돌들한테  미털 박혀 쫓겨나서 다시 돌아오게 게 뻔하니... 그냥 살던데서 골 아픈 채로 살다 가는 게 어떻겠냐 농을 했었다.


젊은 날 나는...

무엇이든 다 해 낼 수 있다고 믿었다.

펄펄한 열정과 패기만 있다면...

넘어지고 자빠져도 다시 일어 나 뛸 용기만 잃지 않는다면...

지치지 않는다면... 죽을힘을 다한다면...


그러나 살아오는 동안 나는...

세상 일 대부분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다.

아무리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 보아도...

젖 먹던 힘까지 다 꺼내어 쓰 기를 써 보아도...

도처에 내 노력이나 의지만으로 되지 않는 일 천지였다.


하여 내가 잔뜩이고 지고 있던 욕심들을 하나둘씩  덜어 내게 되고 내려놓게 되어 나이 60줄 들어서서야 갖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이루고 싶은 것도 별로 없는 대체로 편안한 상태가 되었다.


선선한 바람에 이끌려 밖으로 나와 정처 없이 걷다가 거리 곳곳에 찾아온 가을을 만났다.

높아진 하늘... 식어가는 바람... 곱게 물든 나뭇잎... 떨어진 낙엽....


나의 가을도 이처럼 가을다워야 하리라.

여름 뙤약볕처럼 뜨거웠던 열정 다 내려놓고 서서히 식어 가야 하리라.

식어진 바람으로 시들고 빛이 바래어... 어느 날 조용히 떨어져 흙으로 돌아가 하리라.

그리고...

땅속 깊은 어딘가에서 다가올 새 봄 푸릇하게 피어날 모든 생명을 응원하리라.


여리디 여렸던 나의 봄은 찬란하였으며...

데일듯이 뜨거웠던 나의 여름은 또 그대로 아름다웠다.

지금 지나고 있는 나의 가을 또한  덥지도 춥지도 않은 알맞은 온도로 식어가며... 적당히 욕심을 떨궈 버리고 어설프게나마 세상 사는 이치를 깨달아 가며 깊어가는 중이다.


이 가을,

산나물도 경로당도 더는 관심 없어진 내가..

뜨겁지도 푸르지도 않은 내가...

나는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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