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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연 Oct 15. 2023

금쪽같은 내 동생

예순셋 할머니의 콩고물 수다

저기 가서 둘 중 하나만 집어와 보거라.

어머니는 멀찌감치 국자와 주걱을 놓고 막 걸음마 시작한 막냇동생을 연신 채근하셨다.

여자가 시집가면 아들 하나는 턱 낳아야 제 할 일 다 한 것 같았던 오십여 년 전 그 시절,  우리 어머니는  한 두 살 터울로 내리 딸 넷을 낳는 끔찍한 일을 당하시고 말았다.


주걱을 들고 뒤뚱거리며 달려오는 동생을 짝짝짝 좋아라 손뼉까지 치시며 안아 주시던 우리 어머니의  배꽃처럼 환하였던 그 미소....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 보이셨던 그 미소... 주걱은 아들인가 보다. 이번엔 어머니 아들 낳으시려나 보다. 쓰디쓴 한약도 마다 않고 드시고 아들 낳은 친한 친구의 고쟁이도 빌려다 입으시고 용하다는 점쟁이 찾아 가 부적도 쓰셨다더니 이번에는 기필코 귀한 남동생 낳으시려나보다.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던 1968년 7월, 막냇동생이 주걱을 집어 온 덕분이었는지, 어머니 친구 고쟁이가 효험이 있었던 것인지, 을지로 어느 병원에서 그리 바라고 바라던 아들을 낳아 품에 안으시고 세상 무서울 것 없어지신  어머니는 홍수로 범람한 홍제천을 겁도 없이 당당하게 건너 금의환향하셨다.

그리고 사나흘 장대비 쏟아지는 마당에 광목천막 치고 종일 동네방네 기름냄새 진하게 풍기며, 지나가던 사람 아무나 들어와 먹고 가는 동네잔치를 벌였다.


미군부대에서 누군가 빼돌린  유리병에 서양 아기 얼굴 그려진  거버 이유식을  먹으며 만두만 한 발에 일제 가죽구두를 신고 걸음마를 배웠던 남동생의 타고 난 부모복은 딱 거기까지였다.


동생 세 살 되던 해 아버지가 세상 뜨시고 국민학교도 채 들어가기 전 어머니마저 돌아 가시자 졸지에 어머니의 금쪽같은 아들은 덜렁 어린 누이 넷과 남겨진 천하의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고 말았다.



생각지도 않게 어미가 된 누이 넷은 맛난 것 생기면 죄다 남동생 입에 넣고, 빌어 먹러 갈 때도 입성이 깔끔해야 잘 얻어먹는 다시던 생전 어머니 말씀대로 동생옷도 싹싹 빨아 입히며 애면글면 어머니 흉내를 내었다.


나이가 들어 시집을 가고 내 새끼 둘을 내 배 아파 낳아 길러 보고 나서야 동생에게 했던 내 어머니 흉내가 얼마나 알량하고 한심했는지 알게 되었지만...

철없던 시절 했던 그 어줍잖은 부모노릇은 세상일 언제나 공짜 없듯이....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것...

고슴도치도 제 자식이 제일 곱다는 것...

자식 길러봐야 부모 사랑 안다는 것...

그리고...

부모는 자식 절대 이길 수 없다는 것...


세월은 유행가 가사처럼 덧없이 흘러...

이제는 다 늙어 빠져 할머니 되어 버린 누이 넷은 똑같이 가는 세월 피하지 못해 흰머리 성성한 세상의 하나뿐인 남동생이 여전히 내 살처럼 아깝고 귀하다.



사진출처: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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