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10년 전 딸을 머나먼 미국으로 시집보내고 딸네집 다니러 갈 때면 나는 소질도 흥미도 없는 집안일을 뼈 빠지게 하였다.
그래도 살아온 세월이 있으니 딸보다는 내가 좀 나으려니 싶어 딸 사위 출근하면 구석구석 먼지도 털어 내고, 이불 빨래도 하고, 어질러진 서랍 속 물건들을 차곡 거리며 종일 딸이 내놓은 구멍 메꾸느라 잔걸음을 치다 딸 사위 퇴근해 올 시간 맞춰 냉장고 뒤적거려 국도 끓이고 나물도 무치며 한껏 솜씨 좋은 주부 흉내를 냈었다.
그렇게 몇 주 지내다 돌아 올 날이 닥치면 찹쌀 맵쌀 반씩 넣어 찰지게 밥을 하여 짭짤하게 양념한 볶은 쇠고기로 소를 넣어 주먹밥을 뭉치고 쇠고기 몇 시간 푹 고아 낸 국물로 육개장이다 미역국이다 국도 몇 가지 끓여 작은 통에 담아 냉동실 한켠에 얼려두고 공항 배웅 나온 딸에게 행여 서운한 표정 들킬까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한 채 아무리 바빠도 굶고 다니지는 말아라. 냉동실 주먹밥 한 덩이라도 꺼내 녹여 먹고 다니거라.
비록 얼었다 녹인 밥이라도 포장해 사 들고 온 바깥 밥보다는 나을 것이다. 작별인사 대신 밥얘기만 실컷 하다 헤어지곤 했다.
내가 아무리 신신당부해 보아도 대부분 그것들은 대여섯 달 후 내가 다시 딸네집 갈 때까지 냉동실 한켠에 돌덩이같이 땡땡 얼어붙은 상태 그대로 자리 차지를 하고 있었고 음식 버리는 것을 유난히 싫어하는 내가 내손으로 그 아까운 것들을 죄다 내다 버리며 툴툴거리는 짓을 서너 번쯤 더한 후에야 나는 그 쓸데 없는 짓을 멈출 수 있었다.
방학되어 다니러 왔던 손녀들 쫓아 뜨거운 여름날 어바인 사는 딸네집 갔다가 서늘한 가을 다 되어서야 내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기 전날, 한인마트 들러 홍두깨살 한팩 사다 핏물 빼고 진간장과 설탕을 넣고 약한 불에 고기가 말랑해지고 짠맛 밸 때까지 오래오래 조려 장조림을 하였다.
먹을 것 귀하던 시절 먹고 큰 내입에나 맛있지 이틀이 멀다 하고 굽고 튀긴 고기를 흔히 먹는 요즘 아이들 입에 짜디짠 간장에 조려 놓은 고기가 무슨 그리 입맛 당기는 음식일 것인가... 기껏 해 넣어 두고 가봤자 한두 번 상에 오르면 금세 천덕꾸러기 신세 될 것인데.... 뻔히 알면서도 나는 온 집안에 진간장 냄새를 진하게 풍기며 아침나절 장조림을 하여 결대로 찢어 냉장고 한켠에 고이 넣어 두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음식 하는 걸 좋아하지도 않을뿐더러 남다르게 음식솜씨가 좋은 편도 아닌 내가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해 놓고 와봐야 아이들 잘 먹지도 않는 음식을 꾸역꾸역 하는 것은 곧 헤어지는 서운함을 달래기 위한 나만의 방식이었는지도 모른다.
입으로는 이제 너도 어른이니 이 에미는 다 잊고 김서방만 믿고 잘 살아라 하였지만...
냉동실 주먹밥을 꺼내 녹여 먹으며 나 굶고 다닐까 걱정하는 우리 엄마가 있지... 가끔 이 엄마생각이 딸에게 힘이 되기를....
손녀들, 어쩌다 반찬 없을 때, 지 에미가 꺼내주는 장조림을 먹다가 우리가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자라길 바라는 할머니가 저 멀리 계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