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레퀴엠 EP #2
왕 회장의 굴욕과 몰락
금강산 레퀴엠 EP #1
이 글에 언급되거나 묘사된 인물, 회사, 단체, 지명, 그리고 모든 고유명사는
일부 사건을 모티브로 했지만, 실제와는 일절 관계가 없이 허구적으로 창작된 것이며, 만일 실제와 유사한 경우가 있더라도 이는 우연에 의한 것임을 밝힙니다.
굴욕과 분노
서울 종로, 태산그룹 본사 15층. 1995년 8월 19일 늦은 오후.
진태양 명예회장은 홀로 집무실에 앉아 입가에 분노 가득한 비웃음을 띠며 독하게 내뱉었다.
“공식 화해? 개나 줘라 그래!”
그의 말은 집무실의 공기를 차갑게 가라 앉혔다. 방금 비서가 놓고 간 조간신문의 헤드라인이 눈앞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김영찬-진태양, 마침내 손을 잡다. 재계와 정치권 ‘공식 화해’』
“정치하는 놈들… 우리 장사꾼보다 훨씬 더 비정한 족속들이야. 오늘만 해도 그래. 정치하는 놈들이 손을 내밀 때는 항상 등 뒤에 칼을 숨기고 있어.”
‘왕 회장’이라는 별칭으로 수십 년간 대한민국 재계를 쥐락펴락했던 사나이. 그는 방금 청와대에서 돌아왔다. 그에게 오늘 청와대는 전장(戰場) 그 자체였다.
끓어오르는 화를 삭히려 냉수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차가운 물이 사포처럼 식도를 긁고 내려갔지만 속은 시원하지 않았다. 오히려 쓰라렸다.
오늘, 그는 억지로 고개를 숙였다. 인간 진태양은 솟구치는 짜증을 주체할 수 없었지만, 태산그룹의 주인으로서 그는 기꺼이 개처럼 엎드렸다.
“내가 가고 싶어서 갔나? 이렇게라도 안 했으면… 우리 태산은 지금쯤 공중분해 되고 있었을거야.”
커다란 창문 너머로 여름 해가 힘없이 뉘엿뉘엿 기울고 있었고, 동시에 그의 얼굴에도 만감이 교차하는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졌다.
며칠 전, 진태양 회장에게 낭보가 들려왔다. 광복 50주년 기념 특별사면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암흑 속에서 나날을 보내던 그는 신문에 실린 사면자 명단에서 분명하게 자신의 이름을 보았다. ‘진태양’이란 세 글자가 심장을 두드렸다. 고요한 어둠 속에 묻혀 있던 이름이, 다시 세상의 틈새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신문을 내려놓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한동안 멈춰 있던 시계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입술을 굳게 다문 채 그는 천천히 이를 악물었다. ‘죽으란 법은 없구나. 아직, 내 운은 끝나지 않았다.’
그는 묵직한 몸을 일으켜 책상 앞에 앉았다. 다이어리를 꺼내 펼치고, 펜을 들었다.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써내려갔다.
‘오뚜기는, 다시 일어난다.’
그 문장은 단순한 다짐이 아니었다. 무너졌던 시간이 할퀴고 간 상처 위를 덧씌우
는 새 살이었고, 멈춰 있던 심장의 고동을 다시 울리는 신호였다.
그는 곧바로 청와대에 구원의 손짓을 보냈다. ‘대통령 각하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겉으론 겸손한 의례였지만, 실제로는 다시 일어서려는 기회를 굳히려는 진태양의 절박한 항복 선언이었다.
8월 19일 오전 9시 50분 청와대 본관.
의전수석이 엘리베이터로 안내했다.
“통상적으로는 계단을 이용하지만, 오늘은 특별히 회장님의 건강을 배려한 조치입니다. ”
진태양은 속으로 경멸 가득한 웃음을 삼켰다. ‘배려? 나를 노쇠한 늙은이로 보이게 하려는 정치적 연출이라는 걸 모를 것 같아’
2층 대통령 집무실 앞. 언론의 사진 촬영이 5분 가량 진행되었다. 수십 개의 플래시가 터지고, 셔터 소리가 공간을 채웠다. 진태양의 얼굴은 단 한 점의 흔들림도 없었다. 미소는 얼음처럼 굳어 있었다. 그것은 살아남기 위해 모든 걸 삼키고 있는 한 남자의 훈련된 얼굴이었다.
문이 닫히고 비공개 회담이 시작되었다. 그는 김영찬 대통령에게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대통령 각하, 사면이라는 큰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지난 대
선 과정에서 누를 끼친 점 깊이 사과드립니다.”
날개 꺾인 경제 권력이 기세등등한 정치 권력 앞에 내밀 수 있는 카드는 항복과 인내, 그것 뿐이었다.
“진 회장!”
혹시나 예상했던 ‘앞으로 잘 해 봅시다’와 같은 의례적인 답은 나오지 않았다. 대통
령의 목소리는 차분하게 낮으면서도 시퍼렇게 날이 서 있었다.
“다시는 정치판에 기웃거리지 마시오.”
방 안 공기가 얼어붙었다. 냉기가 온 몸을 휘감았다.
“한 번만 더 정치판에 발을 들여놓았다가는… 태산그룹은 지구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질 거요.”
협박을 뛰어넘는 최후 통첩. 극단의 모멸감과 불쾌감에 머릿속이 새하얗게 비워졌지만, 그는 애써 정신줄을 놓지 않고 참아냈다.
청와대는 이날의 만남에 대해 ‘모두 힘을 합쳐 경제발전을 이루어 일류국가의 토대를 마련하기로 했다’는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언론은 이를 두 팔 벌려 받아썼고, 대중은 그 표면만을 받아들였다.
‘진태양’이란 이름, ‘왕 회장’이란 별명이 대한민국 재계를 풍미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그 시작은 남루했다. 세간이 부러워한 그 권세가 처음부터 존재했던 건 아니었다.
1930년대 서울 뒷골목, 주인에게서 인수한 밀가루가게. 좁은 가게 안엔 낡은 저울과 밀가루 포대 몇 개, 배달용 자전거 한 대가 전부였다. 그는 매일 아침 자전거에 밀가루 포대를 실으며 수천 번을 다짐했다.
‘담담한 마음을 가지자. 담담한 마음은 나를 바르고 굳세고 총명하게 만들 것이다.’
그 다짐이 그의 삶의 원칙이 되었다. 타고난 직감과 성실함으로 장사를 익혔고, 그렇게 수십 년을 지나 태산이라는 이름의 제국을 완성했다.
권력의 문은 그에게 웃으며 열렸지만, 그 웃음은 대가를 요구했다. 정치인의 청탁, 검은 돈, 외면할 수 없는 압력들. 그는 견뎌냈고, 감내했고, 응했다. 하지만 곧 한계가 왔다.
1991년 말, 국세청의 1,300억원 추징 고지서. 대치동 은마아파트 32평짜리 650채를 살 수 있는 거액이었다. 그는 아연했다. 이건 경고가 아니라 명백한 사형선고였다.
‘이대로 있으면 죽는다. 반격할 방도를 찾아야 한다.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 그동안 갖다 바친 돈이 얼마인데? 이럴 바엔 내가 직접 돈을 써서 정치를 하는 게 백번 낫지 않겠는가!’ 오래전부터 켜켜이 쌓여 있던 분노와 결의가 쇳덩이처럼 무겁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도전, 배신, 그리고 몰락
1992년, 진태양은 77세의 나이에도 불구, 대한기업당을 창당하며 직접 정치에 뛰어들었다. 모두가 무모하다고 했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지금 아니면 다시는 기회가 오지 않는다.’
선거운동 내내 그는 정치와 자본, 국민과 언론이 교차하는 한가운데를 걸었다. 그의 말은 투박했지만 설득력이 있었고, 손짓은 단호했다. 국민은 경청했고, 정치권은 긴장했다. 결국 총선에서 무려 30석을 넘는 돌풍을 일으키며 3당에까지 올랐다.
정치권은 술렁였고, 그를 향한 시선은 ‘그저 돈만 많은 기업가’에서 ‘무시할 수 없는 정치인’으로 바뀌었다. 그는 그 여세를 몰아 대통령에까지 도전했다. 누군가는 그를 과소평가했고, 누군가는 비웃었지만, 그의 자신감은 절정에 달해 있었다.
‘정치? 막상 해보니 별거 아니구만. 해 볼만 해!’
정치권과 언론에서는 기업만 경영해 봤을 뿐이지 정치, 사회, 행정 경험이 전무하고 특히,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외교, 국방 분야에는 문외한이라며 날 선 비판을 쏟아냈다. 한쪽에선 설사 대통령이 된다 해도 나이가 많아 직무를 수행할 수 있겠냐며 난도질을 해댔다. 그래도 자신있었다.
‘당원만 1,200만명이나 되고, 태산그룹 직원과 그 가족까지 합하면 표가 얼만데...’
그는 모든 것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굴러가고 있다고 믿었다. 현장을 누비며 환호하는 사람들의 손을 잡을 때마다, 그는 오랜 세월 가슴속에 묻어둔 상처들이 회복되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고, 실패란 단어는 그의 마음속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조금씩 이상한 기류를 감지하기 시작했다. 동원했던 조직들 사이에서 피로감이 흘렀고, 일부 언론에서는 은근히 김영찬, 김대진 후보를 지원하면서 자신에게는 대놓고 등을 돌리고 있었다. 그럴수록 그는 더 소리를 높였고, 더 강한 말로 지지자들에게 호소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군중의 눈빛은 흐려졌고, 박수 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그는 마음속의 불길함을 애써 지우려 했다. "괜찮아, 아직 시간이 있어. 마지막 한 주면 충분히 뒤집을 수 있어." 그렇게 그는 자신을 설득했고, 때로는 피곤이 극에 달한 밤중에도 홀로 앉아 과거의 성공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러나 내면은 점점 불안의 진흙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개표가 시작되던 날, 그는 아무 말 없이 TV 앞에 앉았다. 숫자들이 자신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냉혹한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그것은 단순한 패배가 아니라, 지난 수십 년을 바쳐 쌓아올린 세계가 한 순간에 무너지는 무음의 붕괴였다
역사는 그를 냉정하게 시험했다. 1992년 대선에서, 그는 낙선했다. 김영찬과 김대진에 밀려 3위. 400만 표에도 미치지 못한 결과 앞에서 그는 허탈했지만, 그것보다 더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믿었던 이들의 침묵과 배신이었다.
‘그 많던 당원과 그룹 직원들, 그리고 그 가족들은 다 어디에 투표했단 말인가?’
그 믿음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건 공허뿐이었다. 그 공허함이 가슴팍을 냉기처럼 휘감았고, 그는 그 밤을 온몸으로 견디고 있었다.
개표가 끝나고 김영찬의 대통령 당선 발표가 있던 새벽, 진태양은 홀로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창밖으로 간간이 달리는 자동차 소리가 들렸고, 사무실 안은 적막에 잠겨 있었다. 의자에 등을 깊숙이 기댄 채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가 믿었던 사람들의 배신은 날카로운 칼보다도 더 깊게 폐부를 찔러왔다.
그 이후, 몰락은 순식간이었다.
검찰은 그를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하는데 그치지 않았다. 칼날은 그의 가장 아픈 고리로 향했다. 작은 아들 진명훈, 분신처럼 아끼는 후계자였다. 그룹 임원들과 함께 명훈이 소환 조사를 받기 시작했다. 며칠 밤낮을 검찰청사에서 보내고 나왔음에도 명훈은 애써 당당한 태도를 보여주었지만, 눈빛은 깊은 상처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진태양에게 아들의 영혼이 꺾이는 모습은 심장이 타들어가는 고통을 안겨주었다.
선거법 위반으로 징역 3년 실형. 진태양의 정신은 무너졌고, 건강도 따라 무너졌다.
더 치명적인 것은 금융권이 태산그룹에 등을 돌리고 자금줄을 조이기 시작한 것. 국내 자금줄이 모두 막혔다. 유일하게 손을 내민 곳은 미국계 컨트리은행. 그러나 그것은 바늘구멍에 불과했다.
명동 사채시장을 전전하며 회사채 만기를 연장하는 하루 하루가 피가 마르는 심연이었다. 벼랑 끝에 밀려 있는 게 아니라 벼랑 끝으로 떨어지는 중이었다. 그냥 태산을 죽이겠다는 것이었다.
1993년, 의원직 사퇴, 정계 은퇴. 이듬해 그룹 경영에서도 완전히 손을 뗐다. 그 후, 그는 죽은 듯 살았다. 건강은 삐걱거렸고, 정신은 수시로 깜빡였다. 하늘은 멀고, 땅은 무거운 나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오늘, 굴욕적인 청와대 방문으로 그 몰락의 정점을 찍었다.
진태양 회장이 청와대 본관을 떠난 지 두 시간이 지났지만, 김영찬 대통령의 집무실에는 여전히 냉랭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대통령은 의자 깊숙이 등을 기댄 채, 창 밖으로 펼쳐진 8월의 푸르른 녹음을 말없이 응시했다. 시계는 오후 3시.
“정치가 그렇게 만만한 게 아냐…”
그가 나지막이 내뱉었다. 비서실장이 조용히 듣고 있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각하, 언론의 반응이 좋습니다. 공식 화해와 경제 협력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국민들은 진 회장이 각하께 머리 숙인 모습을 각하의 강력한 통치 능력으로 평가하는 분위기입니다.”
대통령은 미소를 짓지 않았다. 대신, 차가운 논빛으로 시계를 쳐다보았다.
“통치 능력? 그건 겉모습만 본 거고, 중요한 건 왕 회장이 완전히 꺾였다는 것이지. 그는 기업을 키우는 데는 천재였지만, 정치를 이해하는 데는 백치였어.”
정무수석이 거들었다.
“지난 총선에서 30석 넘게 얻었을 때만 해도 모두들 두려워했습니다만 대통령 후보로 나선 순간… 스스로 무덤을 판 셈입니다.”
김영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돈의 힘으로 국회의원 몇 명쯤은 모을 수 있었겠지만, 국민들의 마음은 돈으로 살 수가 없어. 그가 착각한 건 바로 그 지점이야. 게다가 우리 국민들은 노회한 재벌이 권력을 쥐는 것을 원하지 않아.”
대통령은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집무실을 나서며 조용히 말했다.
“왕 회장의 시대는 끝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