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오만을 바라보며

2026.3.27

by 니콜라테스


무심코 튼 텔레비전에서

장경태 국회의원이 女 보좌관 성 추행 혐의로

검찰에 송치되었다는 언론 보도를 보았습니다


40대 초반의 젊은 나이임에도

구태 정치인과 별 다를게 없는 행태를 보면서

단순한 실망을 넘어

'권력의 오만'이 얼마나 뿌리 깊은 것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높은 산도 그 산 위에 서 있는 작은 동물보다 높지 않다."


권력의 정점에 선 이들에게 오만을 경계하는

칭기즈칸의 이 말은

가슴에 깊이 새겨야 할 진리입니다.




'자기 확신'이라는 위험한 함정


어려운 시험에 합격하거나,

조직에서 승승장구하며 높은 자리에 오른 이들은

쉽게 환상에 도취됩니다.

자신의 판단만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과잉된 자기 확신'은

타인의 목소리를 가로막는 벽이 됩니다.


주변 사람들을 동료가 아닌 발아래의 존재로 내려다보는 순간,

소통은 단절되고 오만이 그 자리를 채웁니다.




특히 민의의 전당이라는 국회 주변에서 들리는 농담은

우리 정치의 민낯을 가감 없이 보여줍니다.


국회 내에는 2가지 부류의 생명체가 존재하는데

하나는 ‘국회의원’이고

다른 하나는 ‘국회의원이 아닌 존재’들이라고 한다.


前者만이 사람이고,

後者는 사람도 아니다.

국회의원의 머슴 내지 노비에 불과한 것이다.


누가 들어도 참으로 서글픈 이야기지요.



국회의원과 '의원이 아닌 존재'로 사람을 가르고,

보좌진이나 국민을 인격체가 아닌 도구로 여기는 행태는

국민의 법적인 '대리인'의 위치를 벗어나

'상전'으로 군림하려는 뒤틀린 특권 의식의 산물입니다.



멀리 볼 것도 없이

강선우, 김병기 의원이 확인시켜 주었고

이혜훈 전 의원도 이에 빠질세라 거들었습니다.

앞으로도 잊힐만 하면 퍼레이드가 이어지겠지요.




자만심을 제어하는 일은

야생의 사자를 제압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합니다.



지방선거를 앞둔 지금,

'저들만의 리그'에서 벌어지는 소란스러운 풍경을 보면서


그들에게,

그리고 또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봅니다.


오만에 사로잡혀 눈이 가려진 사이,

놓치고 있는 본질은 무엇인가?


'국민'이라는 존재는 그들에게 어떤 의미이며,

정치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선거 시즌 정치권에 편승해

지켜오던 신념은 아랑곳하지 않고

국민을 위한다고 떠들어대는 정치인들을 흉내내며

자리를 탐하고 있지는 않는가?




철학자 몽테뉴는 자만심을 경계하며

자신의 집 들보에 이런 글귀를 새겼다고 합니다.


"네가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는 것이 마침내 너를 파멸로 이끌 것이다."




지금 누리는 권력과 지위가 영원할 것이라는 착각,

그리고 그것이 오직 자신의 능력 때문이라는 자만,

그것이 결국 스스로를 무너뜨리는 독이 됩니다.


높이 오를수록 낮게 살피고,

귀를 열어 마음을 듣는 '겸손의 정치'가

그 어느 때보다 그리운 계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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