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가지않았다면 꼴등은 면했을까?
살면 살수록 인생은 쫀득쫀득 입안이 욱신 욱신 거려요. 벽에 붙여다 씹는 껌맛이에요.
고인이 된 우리 시어머니 생각을 하면 이 말이 떠오른다. 제이 하란다. 난 이말이 어느고장 사투리 인가는 잘 모른다. 처음 결혼을 했을 당시 사투리가 심한 시어머니의 말을 잘 알아 듣지를 못해 심부름 하기가 영 성가신게 아니었다. 제이하라 , 이 말은 천천히, 혹은 쉬었다 하라는 말이다.
결혼 후 내 인생을 돌아보니 이건 롤러코스트 인생이다. 복 없는 년은 자빠져도 머리가 깨진다고 정말 지지리도 복이 없는 건 확실하다. 태어날 당시는 3시새끼 밥은 먹을 정도의 가정에 태어났거만 못 난 부모를 만나서 아니면 너무 잘난 부모를 만나서 고생길이 훤했다. 그 고생길은 결혼하면 끝이 나야 하는데 두 녀석이 태어나면서 하루가 멀다가고 사고쟁이 아들들 인생 바람잘 날이 없다. 이건 풍전등화 의 인생이다.
큰 녀석은 대학병원 프로젝트에 참여 한 후 제법 온순한 양+ 강아지 처럼 꼬리도 흔들며 마지막 중학교 시절도 마쳤다. 엄마의 욕심은 끝이 없다. 이제는 다른 욕심을 부리기 시작한다. 바로 고등학교 진학문제로 골이 빠개 질 정도로 푹푹 섞어 들어갔다. 거주지역에서는 들어갈 학교가 없단다. 중학교 3학년을 공부를 한 적도 없고 출결일수도 겨우 채웠으며 나머지는 병가로 병원에 보냈다. 시험을 치지 않아 성적은 역시 전교 꼴등이었다. 그 때 인문계는 50% 정도의 성적이어야 갈 수 있었다. 그 당시 노는 아이들은 인문계를 못 갈 아이들이 제법 많았다. 그 당시 있는 집 아이들은 중국, 다른 나라로 유학을 보내기도 하며 가정의 우사를 막기에 급급했었다. 나 역시 특성화 보내기에는 자존심이 허락 하지 않았다. 아직 우리 집안에 이렇게까지 공부를 못한 아이는 나오지 않았다.
진로를 결정하기전 골머리를 쓴게 고작 시골학교에 입학을 시킨 후 다시 전학을 시키는 방법을 찾아 냈다.
입학원서를 넣기 전 담임에게 내가 꾸민 이야기를 영웅담인야 열심히 지껄이며 추천서를 부탁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3학년 학주(진로담당)가 한 마디를 거들었다. " 아이를 망치는 사람은 아이가 아니라 엄마라니까요. 이 아이 성적에 부모가 돈을 싸들고 가서 보결로 학교에 넣었다고 칩시다. 이 아이가 학교 수업을 따라 갈 수 있겠습니까. 괜한 짓 하지 마세요. " 부모도 없고 친한 친구 한명 없는 시골학교까지 가서 이 아이가 적응을 하겠느냐 하는 말이 담겨 있었다. 학주의 마음 속에는 이 어마이야 정신 좀 차려 니 아이가 지금 달라지겠냐. 엄만 짓 그만 하고 아이가 원하는게 무엇인지 부터 정확하게 알아 봐. 교무실을 들어갈 때는 의기양양하게 나의 진학모의전략이 먹힐것이라 생각을 했지만 나올 때는 부끄럽고 패잔병이 된 기분이었다. 담임은 다시 생각하고 오면 그 때는 어머니의 의사에 따르겠다고 했었다. 나 개인은 부끄러운 짓을 안 했는데 왜 아이로 인해 벽에 붙여 놓은 오래된 껌을 씹는 기분일까? 씹을수록 딱딱하고 이빨이 아프다. 욱신 욱신 거리는 젤리를 씹는다.
엄마 우리집 거지 아니었어 돈이 어디서 났어.
남편과 나는 아이의 결정에 따르기로 했다. 엄마가 꾸민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엄마 이야기 들어봐 "너는 일단 시골학교로 가는거야. 그 곳에서 하숙을 하면 돼, 그리고 1학년 겨울방학에 다시 거주지로 오면 되는거야." 모든 문제는 엄마가 알아서 할거야. 어떻게 할래.
엄마 우리집 거지 아니었어 무슨 돈이 많다고 나를 시골학교에 보내고 그 곳에서 하숙까지 시켜. 아이는 거절을 했다. 난 공부 못해도 되고 실업계(특성화고)에 가서 마음 편안하게 지내고 싶어. 인문계(일반고)에 가서 공부 잘하는 아이들 사이에서 주눅들고 숨도 못 쉬고 야자(야간자율학습)하면서 다니면 내가 죽을 지도 몰라.
그냥 그 돈으로 엄마 좋은 옷 사 입고 다녀. 그렇다. 엄마인 나의 욕심이 너무 지나쳤나보다.
큰아이보다 6살 적은 동생의 일기장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 우리 형아는 고등학교에 갔다. 입학했다. 그런데 아빠도 엄마도 말했다. 형이 다니는 학교는 제일 안 좋은 학교(똥통학교)라고 그리고 학교가 어디에 있는지 찾기도 어렵다고 했다. " 한번은 아이가 지각을 할 판이라 남편에게 부탁을 해서 아이 학교에 한번 태워 주라고 부탁을 했었다. 남편은 큰 아이를 태워서 학교 주변을 몇번이나 돌았지만 계속 제 자리 였단다. 가득이나 지각을 할 것 같은데 학교 교문을 찾을 수가 없어 나중에는 그냥 너 알아서 찾아 가라며 내려 놓고 왔단다.
아이도 남편도 기분이 안 좋기는 마찬가지 였을 것이다. 남편은 아이 학교 정문 앞에 데려다 주고 싶었지만
학교는 산 언저리에 있고 유명한 학교도 아니요. 눈에 띄지도 않는다. 난 또 속상했다. 마음 속으로 "네비게이션이 그 학교 하나 못 찾냐" 남편과 작은 큰 아이의 학교가 어디에 있는지 아직도 모른다.
그래도 그 녀석이 운은 있나보다 그 녀석이 졸업하기 2달 전 그 학교는 일반고(인문계)고등학교로 승격하였다. 그 아이는 인문계고를 나왔다고 말을 한다.
가지 적은 나무 바람잘 날 없네. 또 한번의 위기와 롤러코스트
큰 아이는 대학도 겨우 턱걸이로 특성화 전형로 대학에 붙었다. 특성화고 학생은 학교 성적과 특별 전형으로 대학교 수시로 입학을 해도 문제는 문제다. 대학교 수업을 따라 가기도 벅차다는 것이다. 일반고 학생들은 성적보다 자리에 앉아 있는 습관화가 되어 있고 공부하는 법은 알고 있다. 특성화 고 학생들은 공부하는 습관에 익숙치 않아 대학교 수업은 보통 연강 3시간, 2시간이다. 큰 아이는 상업계 고등학교 였다. 공대 공부를 하기에게는 역 부족이었다. 대학공부를 따라 가기 위한 학원이 있다는 사실은 금시초문이었다. 알았다면 대한민국의 엄마는 극성이라도 나도 극성을 부려 보았을 텐데 아이도 나도 몰랐었다. 아이는 1학기 휴학계를 군 입대를 하였다. 큰 아이는 육군이라는 나라가 재워줘 먹여줘 쥐꼬리 만큼 월급도 줘 안심 하면 되었다.
큰 아이는 군 제대 후 학교는 휴학계를 내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배워기로 했다.
영화를 보면 이렇게 말을 하잖아요. " 나도 이렇게 행복해도 될까요. 너무 고요하고 조용하지 않아요."
올 것이 왔다. 작은 아이가 학교를 그만두고 싶단다. 그 중요한 시기 일반고 2학년1학기 말에. 공부를 죽을 만큼 해도 대학까기가 어려운데 . . . . . . .
작은 아이는 크게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학교생활도 잘 하는 착한 아이였다 . 고등학교 이과반 반장 2학년 2학기 시작 후 얼마되지 않아 학교를 자퇴하고 싶단다 . . . . . . .
이미 그 학교 2학년 1학기 마치며 문과반 반장 한명이 학교를 떠난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