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영도 다리 밑에서 주워 온 아이
난 영도다리 밑에서 주워온 아이.
지금은 고인이 된 우리 이 여사의 18번이다. 넌 누굴닮아 말을 안 듣니. 지금도 가끔 어렴풋이 떠오르는 기억이 몇 가지 있다. 그 기억이 왜곡 된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기억으로 남아있다. " 아유 이 돌대가리야, 몇번을 가르쳐줘야 알아 들어" 그리고 머리를 때렸나, 머리에서 피가 난단다. 그리고는 기억이 없다.
그 사건 이후로 난 엄마와 공부를 해 본적도 엄마에게 숙제를 물어 본적은 없는 것 같다. 나 보다 엄마가 좋아하는 그림그리기숙제, 만들기 숙제 등. 내가 필요없는 숙제는 엄마가 내가 되어 대신 숙제를 열심히 했다. 그리고 학교에 게시판에 붙어 있는 엄마의 그림, 엄마가 만든 작품 들 앞에서 만족하며 행복해 했었다. 그 당시 우리 담임도 엄마와 한 통 속 같다. 해도 해도 너무 했다. 숙제를 해 온 걸 보면 어른이 했는지 아이가 했는지 담박에 알 수 있을 텐데 천연덕스럽게 모르는척 하며 그걸 잘 했다고 교실 뒤 게시판에 붙여 놓는다. 난 속으로 쪽 팔리고 부끄러웠다. 난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내 작품은 늘 최고라는 칭찬을 받았다.
내가 그린 그림은 한번도 없다. 난 그림을 그릴 이유도 없다. 처음부터 엄마가 나니까 두말 할 것도 없다. 엄마 한테는 난 성에 차지 않는 아이이다. 우리엄마는 예쁜게 아니라 잘 생겼다. 미인이다. 못하는게 없다. 노래도 샹숑, 가곡을 좋아하고 춤도 잘춘다. 심지어 자기 여동생과 5살 차이가 나는데 동생 교복을 만들어 학교에 입혀 보냈다고 한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정말 팔방미인이다. 돌아가신 육영수 여사 배 기능대회에서 대상까지 받았다. 난 그런 엄마 앞에서 늘 주눅이 들 판이다. 단편소설 중에 아이가 태어났다. 한 군데도 닮은 곳이 없어 발가락이 닮았네라는 소설처럼, 나 역시 엄마의 외동딸인데 엄마를 한 군데도 닮지 않았다. 엄마는 목소리도 예쁘다. 어린시절의 사건도 있고 해서 엄마에게 숙제를 부탁한 적이 없었다. 이번에는 엄마의 도움이 필요하다. 엄마의 고운 서울 억양의 말씨가 필요하다. 고등학교 화학시간 이었다. 화학 선생님의 별명이 살무사로 수업시간에 딴짓을 했거나 졸거나 화학식을 외우지 못하는 날은 죽었다. 우리반 전체가 기합을 받는 날 기합은 안 준다. 그 대신 장기자랑 하나씩 준비해오라고 한다. 누구를 지명할 지 모른단다. 원소기호와 함께 죽었다. 난 노래도 음치, 춤도 몸치 공부도 그럭저럭 내 세울게 하나도 없다. 누가 지명될지 모르겠다. 나에게 친구들이 시를 하나 낭송하란다. 우리분단의 총대를 메란다. 엄마에게 내가 좋아하는 시를 읽을 테니 한번만 들어 달라고 했다. 엄마가 해 보란다. 서울억양과 경남억양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지금도 그 때 엄마에게 얼마나 혼이 났는지 그림책 낭독을 할 때도 한번씩 그 때의 아픈 기억이 떠오른다. 엄마의 말은 너무 매몰차고 무섭다. " 넌 따라 하는 것도 똑 같이 못 하니, 넌 이해가 안돼, 앞에는 올리지 말고 앞에는 내려 그 다음에 올리라고" 뼈속까지 경상도 사람의 억양이 몇번 가르쳐 주었다고 바로 바뀔 수 있을까? 이러다 엄마와 다툴 수도 있겠다 싶어 이 정도만 할래. 어린시절의 기억이 또렷이 떠오른다. 엄마가 속상 할 때 나에게 넌 영도다리 밑에서 주워온 아이라고 말했다.
어린마음에 난 진짜 엄마를 찾아 가고 싶었다. 동네 언니에게 영도 다리에 우리 엄마가 살고 있는데 나 좀 데려다 달라고 말 했든 기억도 있다. 그 당시 영도는 너무 멀어 갈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그래서 엄마는 자기 속상함을 어린 딸에게 풀었나 보다. 두 엄마를 두고서 영도 다리 엄마는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얼굴도 예쁘고 마음도 고운 그런 연예인 같은 사람이라고 가슴에 묻었든 기억이 난다.
참 미안하게도 난 우리 엄마의 외동딸이 맞다. 발가락 조차 닮지 않았지만 고고한 이 여사의 딸이 맞다.
엄마가 나에게 화를 내거나 막막을 할 때는 여자로서 살기가 힘이 들 때 아버지와 다툰 날은 엄마의 비수가 나에게 날아오는 것이었다. 말이 칼이 되어 나를 향해 날아 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