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의 여름 장마와 출근길

우산과 자전거와 우비

by 엔PD

도쿄의 여름은 비가 잦습니다.

한국보다 일본의 더위가 더 강하게 느껴지는 건 습도 때문이라고들 합니다. 높은 습도와 금방이라도 물이 되어버릴 것 같은 공기 중 수분. 장마철이 시작되면 도시는 더 이상 햇빛 아래서 반짝이지 않습니다. 회색빛 구름이 짙게 깔린 하늘 아래, 사람들은 한 손에 우산을 들고 걷거나, 또 누군가는 자전거를 타고 조용히 지나갑니다.

비가 내리는 아침, 사무실 근처 횡단보도 앞에서 멈춰 섰을 때, 반쯤 젖은 셔츠와 배낭을 멘 채 우산을 들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페달과 함께 바퀴는 고인 물 위를 소리 없이 미끄러졌습니다.

image.png?type=w773

비 오는 날의 자전거는 조용합니다. 자동차가 물보라를 일으키며 지나가는 길 위에서, 사람의 힘으로 움직이는 자전거는 어쩐지 더 단단하고, 더 위태로워 보였습니다.

도쿄에 처음 왔을 때, 우산을 들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이 조금은 놀라웠습니다.
불편할 텐데. 위험하지는 않을까.
그런 생각이 먼저 들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 풍경이 이 도시의 장마철을 말해주는 하나의 장면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조금은 불편하지만, 아름다운 모습.

그런데 이제 그 모습도 더는 보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2026년부터 일본에서는 우산을 쓰고 자전거를 타는 것이 법으로 금지된다고 합니다.

이유는 명확합니다. 위험하니까요.
자전거를 타고 한 손으로 우산을 들면 시야가 좁아지고 균형을 잃기 쉽습니다. 누군가는 그 탓에 사고를 당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저는 잠시 멈칫했습니다. 우산을 한 손에 쥔 위태로움과 흠뻑 젖은 셔츠만이 주는 풍경을 저는 저도 모르게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image.png?type=w773

요즘은 자전거용 우비를 입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몸 전체를 덮는 망토 형태의 레인 케이프. 투명한 모자가 달려 있어 얼굴이 보이고, 손은 자유롭습니다. 페달을 밟을 때마다 천이 바람을 받아 천천히 퍼지는 그 모습도 제법 멋있습니다. 아마도 다음 장마부터는 그게 새로운 ‘도쿄의 여름’이 되겠지요. 낭만은 형태를 바꾸며 살아남는 법이니까요.

이제는 우산 대신 우비를 입고, 조금 더 안전한 방식으로 비를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게 될 겁니다.

자전거가 지나간 뒤 젖은 바닥에 남은 바퀴 자국처럼, 익숙함은 늘 그렇듯 갑작스러우면서도 천천히 우리 곁을 떠나고, 그 뒤엔 새로운 물결 자국이 남듯 말이에요.

작가의 이전글일본 잡지사에서 유일한 한국인으로서 산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