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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티카 Stica Sep 24. 2023

73일차, 누군가를 응원하는 일

운행을 멈추지 않을 연료가 됩니다

어제 유튜브 <핑계고>를 봤다. 소비 컨텐츠가 다양한 남편 덕에 나도 여러가지를 보게 되어 좋다. 개그맨 유재석이 하는 채널인데, 어제 본 편에는 지석진, 하하, 송지효가 나왔다. 송지효가 언젠가 <런닝맨> 하차 논란이 있었다고 한다. 프로그램에서의 퍼포먼스가 부진해서 그랬을까. 시청자들의 비난과 격려의 영향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니, 유재석이 말했다. 사실 그런 부정적 평가 때문에 더 열심히 하게 되지는 않는다고. 오기로 더 잘해내려는 마음이었다면 이렇게 오랫동안 하지 못했을거라고. 반대로, 더 잘 하고 싶고 오래 할 수 있도록 해준 것은 응원해준 사람들 덕분이었다고 했다.


건설적인 비평이 개선과 성장에 기여하는 몫도 상당하기는 하지만, 추진력의 직접적인 원료가 되는 것은 아무래도 응원이다. 그리고 이제 막 시동을 걸었다면 이미 주행중인 때보다도 더욱 큰 동력을 필요로 한다. 내가 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지켜봐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내려앉았던 가슴의 무게를 덜어주는 일. 




전 직장 건물은 최근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하면서, 지하 매장들이 모두 철수했다. 그 중 하나가 와인샵이었다. 그 와인샵에는, 와인을 잘 모르기도 하고 구매력도 대단치 않은 내가 처음 와인을 마시기 시작했을 때, 저렴한 와인을 다양하게 소개해주고 본인이 마셔본 소감을 솔직하게 이야기해주던 직원이 있었다. 만원대 와인 한 병만을 사 가는데도 늘 친절했다. 그녀 덕분에 어느덧 내 취향에 꼭 맞는, 그래서 지출이 아깝지 않은 오륙만원짜리를 사게 되기도 하고, 특별히 축하할 일이 있었을 때는 십만원이 넘는 와인을 사기도 했다. 그러다 다시 만오천원짜리를 사러 가도 한결같은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가 본인의 가게를 열었다고 했다. 사업이라니! 나보다 세 살 어린 그녀가 기특하기도 하고 멋져보였다. 얼마나 큰 용기가 들었을까. 여전히 와인 구매력은 신통치 않지만, 내가 쓸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그녀를 응원해주고 싶었다. 추석세트가 잘 팔리지 않는다고 의기소침해하는 것을 보고 두 세트를 주문했다. 금주 중이므로, 와인을 마시는 사람들에게 적당히 선물로 줘야겠다, 고 생각했던 것이다. 결국 참지 못해 주변인들에게는 비밀로 하고 내가 다 마셔버리는 참혹한 사태가 벌어졌지만. (금주 중이라 술은 못 마셔요, 했던 분들께 조심스레 고백합니다. 그래요, 마셔버렸어요.) 




회사를 다닐 때는 남편과 내가 각자 유튜브 프리미엄 계정을 썼다. 그의 계정에는 과학, 시사, 경제 컨텐츠가 주를 이루고, 내 계정에는 여행, 책, 자기계발 컨텐츠가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각자 취향대로 보는 게 편했다. 그러나 계좌로 입금되는 금액이 0에 수렴했을 때, 별도의 계정은 사치가 되었으므로 내 유료 멤버십은 취소해버렸다. 그래서 중간 광고 없이 컨텐츠를 보기 위해 종종 남편 계정으로 로그인하다보니 최근 발견한 사실이 있다. 검색기록 최상단에 항상 내 채널명이 올라 있는 것이다. 내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휴대폰을 확인한 후 구독자가 늘었어! 댓글이 달렸어! 외칠때마다 별다른 반응이 없던 양반이. 내가 안보는 곳에서 혼자 핸드폰으로 내 영상의 조회수와 댓글을 확인해보곤 했을 그가 귀엽기도 하고 고맙기도, 미안하기도 하다.  


남편 만이 아니다. 내가 창피해할까봐 내게 먼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지만, 내가 브런치에 쓴 내용이면 이미 모두 읽어 알고 있는 친구도 있다. 그런 일 있었던 것 알고 있어, 를 표정만으로 말하는 사람이다.




좀 더 많은 응원을 나누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덜 포기하고 더 힘을 낼 수 있도록. 잘 하고 있습니다. '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 같은 건 신경쓰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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